특전사 출신의 진우 작가가 말하는 공수부대 이야기

ROK Army Special Warfare Command

by 지누gpt

단결!!


비행기 문이 열린다.
강한 바람이 기내로 밀려 들어오고, 발 아래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이 펼쳐진다.
그 순간 인간의 본능은 뒤로 물러난다.
그러나 공수부대원은 그 바람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나간다.


나는 20대 초반, 특전사 제3공수특전여단 ㅇ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당시 부대는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있었고, 특수전사령부와 같은 부지 안에서 함께 공간을 사용하던 곳이었다.


내가 속했던 3공수 특전여단 ㅇ대대는 매년 10월 국군의 날 행사에서 대통령 앞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대대로 지정되어 있던 부대였다.

다른 부대가 아닌 3공수 ㅇ대대원들만 그 시범을 설 수 있는 부대였고, 그래서 대대 전체에는 자연스럽게 특별한 자부심과 프라이드가 있었다. ㅇ대대는 하나의 대대에 200명이 넘는 인원이 소속된 부대였다.

대대장을 중심으로 중대장들과 간부들, 그리고 하사관과 일반 병들까지, 전체 200명이 넘는 대대원들이 함께 생활하던 조직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막 들어온 신병이였다


부대에 들어와 처음 마주한 훈련 중 하나는 약 7~8미터 높이의 외줄을 두 손의 힘만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훈련이었다.
그때 상황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200명이 넘는 대대원들이 지켜보는 자리였다. 그 앞에서 외줄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기록을 측정하는 훈련이었다.
나는 그 훈련에서 세 번째 기록을 냈다.
그 순간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고참들이 크게 혼이 났다.
“후임병도 저렇게 하는데 너희는 짬밥이 몇 년이냐.”
군대에서는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전체 분위기를 바꿔 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날의 장면도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특전사의 하루는 체력으로 시작한다.
아침마다 한 시간 이상의 구보는 기본이었다. 훈련이 없는 시간에도 평행봉, 철봉, 헬스장에서 몸을 단련했다. 특전사에게 체력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훈련은 역시 공수훈련이다.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훈련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두렵다. 인간의 본능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특전사에는 하나의 상징이 있다.
강하 경험이 1000회 이상이 되면 군복에 금색 독수리 마크가 달린다.
낙하산을 펼치며 하늘을 나는 독수리 모양의 휘장이다. 경험 많은 공수 요원에게만 허락되는 상징이다.
나는 어느 날 그 금색 독수리 마크를 달고 있는 상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이 정도면 이제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게 편하지 않습니까?”
그 상사는 웃지도 않고 말했다.
“무슨 소리냐.
천 번을 뛰어도 느낌은 똑같다.
항상 죽을 각오로 뛰어내리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공수부대의 본질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알면서도 몸을 던지는 선택이라는 것을.

특전사의 훈련은 하늘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천리행군도 했다.
강원도에서 서울 송파구 거여동 부대까지 걸어오는 장거리 행군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어오는 훈련이다. 발은 부르트고 어깨는 짓눌리지만 결국 모두 함께 도착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전우애가 만들어진다.

ATT 전투력 평가와 생존훈련도 받았다.
ATT는 무장 강하 이후 전술 운용 능력을 평가하는 종합훈련이다.
생존훈련은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는 훈련이다. 혹독한 산악 환경 속에서 생존 능력과 전술 수행 능력을 동시에 키운다.
특전사는 단순히 싸우는 군인이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병력이기 때문이다.


해상 훈련도 있었다.
강원도 삼척에서 약 한 달 동안 진행된 해상훈련이었다.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에서 다양한 훈련을 수행했다.

또 한 번은 한라산 상공에서 공수 강하하여 제주도 훈련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때 등반하던 한 학생이 산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 부대는 밤새 산을 뒤지며 수색에 나섰다. 다행히 그 학생은 며칠 뒤 스스로 산을 내려와 구조되었다. 우리 부대의 실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특전사 생활은 분명 힘들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묘한 전우애가 있었다.
선임과 후임 사이에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혹독한 훈련을 견디다 보면 사소한 문제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작은 일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특전사에는 또 하나의 상징이 있다.
검은 베레모다.
처음 그 베레모를 머리에 썼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단순한 군모가 아니라 특수부대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이었다.


또 특전사에게는 특식도 있었다. 그리고 공수 강하를 할 때마다 생명수당이 지급됐다. 당시 한 번 강하할 때 약 4만 5천 원 정도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큰돈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 시절 병사 월급이 몇 만 원 수준이었으니 꽤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 돈의 의미는 단순한 보상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돌아오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는 군인에게 국가가 주는 책임의 표시였다.

나는 제대 후 사람들에게 군대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군대 이야기를 자랑처럼 꺼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특전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드럼을 배우는 수강생들 중에서도 대부분 모른다.


얼마 전 잠실역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특전사 관련 책을 발견했다. 베스트셀러 옆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다. 특전사를 지원하려는 사람들에게 부대의 특징과 준비 방법을 설명하는 책이었다.
그 책을 보는 순간 잠시 20대 초반의 나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검은 베레모, 금색 독수리 마크, 천리행군, 공수훈련, 삼척의 바다, 한라산의 하늘.
그 모든 장면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런데 얼마 전 뉴스를 보며 마음이 복잡해지는 장면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논란 당시, 공수부대가 출동한 장면이 화면에 비쳤기 때문이다.
의원들과 시민들에게 공수부대원들이 밀리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같은 공수부대 출신으로서 그 장면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대한민국 군인으로서의 모습이라기보다, 우리가 기억해 온 강인하고 믿음직한 부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공수부대는 혹독한 훈련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단련된 부대였다.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산과 바다를 넘나들며 훈련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TV 속 그 모습은 ‘물공수’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힘없이 비춰졌다.
강하고 멋진 부대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공수부대가 의원들과 시민들에게 밀리는 장면은, 같은 출신으로서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란과 같은 불미스러운 상황을 무조건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군인으로서 상황에 휘둘리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어설픈 모습으로 비춰진 점은 안타까웠다.
물론 올바른 시각을 가지고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은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군인의 의식이 진보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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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20대 초반 그 시절의 경험은 내 인생의 중요한 에너지가 되었다. 혹독한 훈련과 극한의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 삶의 체력이 된다.
사람은 과거를 굳이 크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어떤 경험들은 평생 조용히 등을 밀어 준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바람이 몰아치는 순간처럼.
인생에서도 그런 순간이 온다.


뒤로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한 걸음 앞으로 나갈 것인가.
공수부대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두려움이 있어도, 뛰어내린다.


"안되면 되게하라"

"No mission is im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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