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총량의 법칙

The Law of the Total Amount of Madness

by 지누리즘


내 에너지를 미래로 이끄는 여정, 그 결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정된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마치 평생 동안 써야 할 어떤 총량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에너지는 결국 어디론가 흘러가고, 반드시 발산됩니다.


속된 말로 말하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표현도, 어쩌면 이 현상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이 개념은 거창한 학문적 이론이라기보다, 삶을 관찰하면서 사람들이 체감적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통찰에 가깝습니다.
네이버 같은 곳에서 검색해보면 가볍게 등장하지만, 그 안에는 꽤 본질적인 인간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그 에너지를 마음껏 표출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흔히 말하는 ‘중2병’ 시기에 반항과 감정의 폭발로 그것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어린 시절 내내 조용하고,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사고 한 번 치지 않은 채 얌전히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렇게 억눌려 있던 에너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류될 뿐입니다.
그리고 그 보류된 에너지는 30대, 40대, 심지어 50대가 되어서도 어느 순간 반드시 분출됩니다.
그때는 오히려 더 통제되지 않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을 떠올립니다.
겉으로 조용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강하게 튀어 오르는 모습, 그것이 바로 억눌린 에너지의 반작용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연애 경험이 거의 없던 사람이 가장 먼저 결혼을 선택하는 모습에서도, 삶의 에너지가 특정 시점에 응축되어 터지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에너지가 ‘언제’ 나오느냐보다 ‘어디로 향하느냐’입니다.
에너지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방향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로 그 에너지를 풀어내고, 음악을 하는 사람은 소리와 리듬으로 그것을 표현합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몸을 통해, 또 누군가는 일과 관계 속에서 그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적재적소에 사용된 에너지는 성취와 기쁨, 그리고 삶의 깊이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방향을 잃은 에너지는 쉽게 주변 환경에 휩쓸립니다.
친구의 분위기에 이끌려 술자리를 반복하거나, 순간적인 자극과 쾌락에 끌려 나쁜 습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결국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종종 본능에 가까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더 쉬운 길, 더 즉각적인 만족, 더 자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 모습은 어쩌면 동물의 본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동물은 배고프면 먹고, 생존을 위해 움직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 없이 반복되는 선택을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인간적인 가능성을 좁히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자각’입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본능에서 한 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에너지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이끄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어려움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어떤 방향이 최선인지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늘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래서 방향을 정하는 일은 언제나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은 계획을 세우면 그 계획대로 흘러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변하고,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끊임없이 끼어듭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느끼고, 흔들립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익숙한 선택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유연함입니다.
방향은 ‘정답’이 아니라 ‘가설’처럼 설정해야 합니다.
일단 선택하고, 걸어가면서 수정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찾아가게 됩니다.


결국 삶은 거대한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아주 작은 선택들의 축적입니다.
오늘 무엇에 에너지를 쓸 것인지, 누구와 시간을 보낼 것인지, 어떤 생각을 붙잡을 것인지.
이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삶 전체를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언젠가 사라질 존재입니다.
지금의 성취도, 관계도, 결국은 시간 속에서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선택하고, 노력하고, 방향을 고민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방향이 아니라, 의식적인 방향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그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
그것이야말로 한정된 에너지를 가장 의미 있게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내 에너지를 미래로 이끄는 여정은 이미 시작되어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내안에 남아있는 에너지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당신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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