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Be a Hungry Socrates
나는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다.
어떤 사람은 배부른 돼지를 원한다.
그리고 나는 또 생각한다.
소식하고, 때로는 간헐적 단식으로 비워내는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다고.
어쩌면 적당히 채우고, 의도적으로 비워낼 줄 아는 삶이
가장 인간다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배고프다.
단지 그 배고픔의 방향이 다를 뿐이다.
어떤 이는 맛과 편안함, 인정과 자극에 배고프다.
또 어떤 이는 이해하고 싶고, 더 깊이 알고 싶고, 스스로를 넘어가고 싶은 갈증에 사로잡힌다.
이 두 배고픔은 서로 다른 길을 만든다.
하나는 지금을 채우고, 다른 하나는 존재를 확장시킨다.
지적인 갈망을 선택한 사람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쾌락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기쁨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책을 읽고, 문장을 붙잡고, 생각을 밀어붙이는 시간.
그 과정에서 오는 만족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회비용이 생긴다.
누군가는 쉬고 있을 시간에, 누군가는 더 깊이 파고든다.
그만큼 당장의 즐거움은 줄어든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결핍으로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더 직접적이고, 더 본질적인 기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몰입, 사색의 깊이, 이해의 순간에서 오는 전율.
이런 사람들에게 세속적인 쾌락은 점점 비중이 줄어든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큰 만족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의 방향성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동물은 본능에 충실하다.
배고프면 먹고, 원하면 취하고, 지금을 채우는 데 집중한다.
그들은 미래를 사유하지 않는다.
자신을 넘어서는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다.
만약 우리가 생각 없이, 그저 자극과 쾌락만을 따라 살아간다면
그 삶은 어디에 더 가까워지는 것일까.
인간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의미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비워내면서 더 깊어질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결핍이 아니라 방향이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의식적인 선택이다.
나는 오늘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기를 원한다.
조금은 부족한 상태로, 다시 질문할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에 배고픈가,
그리고 그 배고픔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