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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un 02. 2021

말을 싹수없게 하는 사람의 심리

몇 년 전, 세상을 놀라게 한 이슈가 있었다. 바로 세기의 스타 이효리 씨가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결혼 소식보다 더 놀라운 소식은 그 남편이 재벌가, 사업가가 아니라 잘생기지 않은(?) 일반인이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 등에 등장한 남편의 모습에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되려 여성분들은 부러워했다. 자신도 저런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 했다.


이효리 씨가 남편 이상순 씨와 결혼한 이유는 ‘말하는 게 재미있어서’라고 한다. 그 사람과 결혼한 이유가 ‘평생 재밌게 말하기 위해서’다. 조금은 놀랍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부부 사이가 아니라 연인관계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할 말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하물며 10년, 20년 같이 생활한 부부관계는 어떻겠는가. 말수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서로 짜증만 내기 바쁘다. 서로가 대화가 안된다면서 아예 대화를 차단한다. 서로 대화를 잔소리라 여기고, 대화가 길어지면 잊혀질만도 한 과거의 일들을 들먹이면서 싸우게 된다. 예전에 카페에서 일했던 친구가 해준 우스개이야기가 생각난다. 진짜 부부들은 말없이 바깥 풍경만 보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커플이 있다면 백퍼센트 불륜이라는 것이다. 웃픈 현실 이야기다.


결혼 관련해서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씀이 있다. ‘얼굴, 몸매 뜯어먹고 사는 거 아니다. 그런 것들은 다 익숙해진다’라는 말씀이다. 겉모습이나 조건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마음 씀씀이나 인성을 보라는 말씀이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옛 성인들도 포기했다. 열 길 물길은 알아도 한 사람의 마음은 못 들여다본다 했던가.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그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유심히 들어보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손 아랫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혼자 있을 때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를 들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직급보다 아랫사람이나 식당 아주머니께 하는 말뽄새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특히, 조금 더 나아가면 그의 부모님께 어떤 말투로 대화하는지 가만히 들어보면 그 사람을 거의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다. 그들에게 말을 막 한다던지, 듣는사람의 기분은 상관없이 자신의 말만 한다던지, 사람을 무시하는 투로 말한다면 확실히 문제가 있다.


그들이 말을 막 하고, 예의 없게 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이 말을 예의 없게 하는 이유는 불만족스럽고 불안정한 자신의 마음 때문이다. 불안정한 마음은 유년기의 경험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유년기의 상처들이나 부모에게 들은 말들 때문에 불안정한 마음이 생기고, 특별한 교정없이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기 스스로에게도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도 응원과 희망의 말을 하지 않는데, 하물며 남들에게 좋은 말이 나갈 수가 있겠는가. 물론 말을 막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그날 기분따라 말이 막나갈 수도 있다. 꼭 유년시절 부모님탓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박한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믿던 사람의 배신이 그를 그렇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이라고 해서 자식이 알코올중독이라는 법은 없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하다가 접시를 깨트리면 부모님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크게 화를 내시거나, 괜찮냐고 걱정해주는 것이다. 화를 크게 내는 부모님은 ‘왜 이렇게 덤벙대니?, 설거지도 제대로 못하니?, 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일을 하니’처럼 아이에게 상처되는 말을 한다. 아이는 주눅 들고, 부모에게 칭찬받으려고 한 일이, 되려 꾸중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다. 스스로를 자책한다. 반대로 접시가 깨지자마자 아이가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살피고,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라며 꼭 안아주는 부모도 있다. 이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될 것이고, 덕분에 말도 예쁘게 나올 것이다. 즉, 말을 막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릴 적부터 꼬여있을 경우가 높으며, 그 영향은 부모나 가까운 사람들의 말버릇에서 온 것이다.


사회도 비슷하겠지만 군대에서는 특히 막말하는 상황이 흔하다. 군대는 계급사회이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는 직관적으로 그 사람의 계급이 눈에 보이고, 상명하복이라는 규칙이 있다. 덕분에 군대에서 높은 계급으로 올라갈수록, 자신의 아랫사람들에게 막대하기 쉽다. 대놓고 욕하거나 모욕하지 않는 이상 문제 삼지도 않는다. 그저 아랫사람들은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 윗사람의 눈밖에 나면 남은 군생활이 더 힘들어질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군대에서는 각종 불합리한 명령과 지시, 비난이 난무한다. 특히 관련해서 사건사고도 뉴스에 자주 나온다. 나도 군생활 시절 악독한 맞선임이 있었다. 선배가 잔소리라도 시작한다 싶으면 차라리 옛날의 군대처럼 한 대 맞고 끝내고 깔끔하게 끝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는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사이코패스 환자 같았다. 잔소리를 일발 장전하고 시작하면, 불 같이 화를 내다가도 갑자기 웃으며 따뜻한 이야기도 했다. 롤러코스터도 그런 롤러코스터가 없었다. 본인은 신나서 롤러코스터를 운전하지만, 거기에 타고 있는 나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하루는, 자신에게 보고를 빨리 안 했다면서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한 적도 있다. 정말 듣고 있는데 귀가 아픈 것이 아니라 다리가 아픈 적은 처음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 선배는 후배의 의견을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자기가 해야 될 이야기만 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그분이 전역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명령과 지시만 있을 뿐이었다. 선배는 스스로에게 불만이 있어 보였다. 마음은 항상 불안정해 보였고, 그의 유년시절은 듣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그분 덕분에 군생활 초반에 힘들었다. 자책도 많이 하고, 자주 한숨짓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선배에게 잔소리를 듣고 생긴 짜증을 나도 모르게 후배들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선배는 확실한 나의 반면교사가 되었다. 다른 의미로 롤모델이었다. 적어도 그 선배처럼 말을 싹수없게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물론 군생활을 하면서 짜증 나는 순간이 있었고, 후배에게 잔소리를 할 상황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배를 떠올렸다. 후배가 틀린 것에 대해서 지적은 할 수 있어도, 절대 후배 마음에 생채기는 내지 말자고 몇번이고 다짐했다. 모두 그 선배 덕분이다.

 


언어는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과 곤충들도 사용하는 것이다. 동물과 인간이 다른 것은 인간은 언어로 생긴 상처 때문에 자살까지도 한다는 것이다. 다람쥐 선배가 후배 다람쥐에게 도토리가 이것밖에 없냐며 뭐라해도 다람쥐가 높은 나무에 올라가 자살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인간들의 악폐습, 내리 갈굼 등을 통해 자살까지 시도하는 뉴스는 이때까지 수도 없이 봤다. 언어는 양날의 칼이다. 상담사는 언어로 사람을 살리고, 지독한 선배의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유년시절 부모의 짜증 섞인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는 평생 자존감을 갉아먹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말을 일부러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도 퍽퍽한 삶을 살기 때문에 말이 예쁘게 안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가 되었건 말은 예쁘게 해야 한다. 예쁘게라도 못한다면 상처를 주어서는 안된다. 말이 싹수없게 튀어나오는 이유는 자신의 어린시절 상처때문이거나, 지금 심리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유년시절이 문제라면 책을 읽고, 관련 영상을 찾아보면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마음먹지 않는 이상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물가에 말은 데려갈 수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금은 답답한 결론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조금은 뻔한 결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뻔하다는 것은 본질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말을 예쁘게 하려 노력해야 한다. 명령과 지시가 아닌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는 상대방의 말이 오고 가는 것이다. 대화는 골프가 아니다. 탁구이다. 나혼자 공을 계속 치기보다는 공을 왔다 갔다 해야한다는 뜻이다.


 혹 말을 막하는 이유가 부모때문이라면, 부모와 화해해야 한다. 유년시절의 상처 받은 스스로를 꼭 안아주어야 한다. 나의 상처가 남들에게 예의 없게 말하는 것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성인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지금 자신의 마음상태가 불안하다면, 불안한 것이 무엇인지 체크하고 하나씩 없애나가야 한다. 산책이나 명상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나부터 스스로 조금씩 바뀌고 고쳐나간다면 어쩌면 듣기 좋은 말들만 세상에 가득하고, 살맛 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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