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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ul 02. 2021

달리다 보면  왜 달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항상 불평불만인 친구가 있다. 어느새 그와 같이 일한 지 2년이 지났다. 입사 초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지만, 1년 정도 전부터는 항상 ‘ㅅㅂ, 짜증 나네, 아니, 왜 이런 걸 시켜..’등 갖가지 짜증을 혼자 털어낸다.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불평불만을 말하고 있다. 그와 있으면 나도 모르게 회사의 부정적인 면만 보게 된다. 나도 모르게 가끔씩 그의 의견에 동조하게 된다. 그와 함께하는 티타임의 끝은 항상 기분이 좋지는 않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부부가 대화하는 장면을 보았다.


-오빠는 일어나자마자 혼자 욕하면서 일어나는 것 알아?

-응? 내가 그렇다고?

-, 자기도 모르게 하나 네…



무의식 중에라는 표현이 있다.  장면을 보고 섬뜩했다. 텔레비전에서 남편은 매일같이 욕과 부정적인 말을 자신의 무의식에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인생을 옆에서 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짐작이 갔다.. 물론, 여러 가지 책임질 것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남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갈지의 태도는 본인 스스로 정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떻게 살지에 대한 정답은 없고, 본인의 선택의 영역이지만


평소에 욕을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정말 맛깔나게 욕을 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딱 한번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있었고, 그녀와 결혼을 생각했다. 그래서 여자 친구. 부모님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그 친구가 식사자리에 가기 전에 전화해서 ‘장인, 장모님 뵙고 올게’라면서 신나게 웃으며 말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제는 ‘무의식’이었다. 식사 중에 젓가락질을 잘못해서 반찬이 와이셔츠에 튄 것이다.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아.. 이런 ㅆ..’하면서 와이셔츠를 툭툭 털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뭔가가 잘못됐음을 인지하고 앞을 보았을 때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무의식은 이렇게 무섭다.

결국 무의식이 나의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대로 살아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의식은 무의식에 비해 빙산의 일각이다. 의식은 말 그대로 생각한 대로 나오지만, 무의식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튀어나온다. 나는 아침마다 어떤 단어와 마음가짐을 무의식에 집어넣는지 생각해봤다. 최근에는 억지로 감사와 만족을 집어넣는 중이었다. 긍정적인 마음과 부정적인 마음이 동시에 마음에 존재할 수는 없다고 한다. 화가 날 때 즐겁지가 않고, 즐거울 때 화내기가 어렵지 않은가. 그래서 최대한 즐거운 마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다. 부처님, 예수님이 아니고서야 하루 종일 어찌 즐겁기만 하겠는가. 그래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괴롭지만 않으면 행복한 거지’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기쁘고, 즐거운 상태가 계속될 수는 없다. 그것을 억지로 계속 끌고 가는 방법은 음주나 마약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음주나 마약은 부작용이 크다. 더 많이 마실수록 저녁에는 즐거웠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비례해서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프다. 마약을 한다면, 언젠가는 어른들이 가는 학교에 갈 것이다. 하루에 즐거움과 기쁨만 있는 것도 사실 바라지 않는다. 웃는 것도 잠깐 웃어야 좋은 것이지, 1분 이상 웃으면 그것도 나름대로 힘들다.


사람은 습관대로 산다. 작년에 살을  뺐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저녁에 배고픈 것이 습관이었다. ‘야식은 안돼, 얼른 잠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맛있는  먹자라고 다짐하면서 일찍 잠에 들었다. 물론, 거짓말처럼 아침에는 식욕이  사라진다. 운동도 습관적으로 했다. 당연히 일어나면 아침에 헬스장에 가서 3km 뛰고 나서 샤워를 하고, 망고향이 나는 바디로션을 발랐다.   정도 꾸준히 하니 그게 습관이 되었고, 하지 않으면 어색했다.


뛰다보면 숨이 터지기 전에 고통스러운 지점이 온다. 배는 살짝 아프고, 숨은 거칠어진다. 그 때 달리기를 멈추면 개운함이 없다. 그 임계치를 뚫고 나갔을 때 성취감과 뿌듯함은 배가 된다.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나고 있을 때면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 ‘건강해지기 위해서’라며 스스로를 응원하지만, 결국 나를 뛰게 하는 것은 습관의 힘이다. 그렇게 뛰고 나서 샤워하는 개운함을 알기 때문이고, 나는 당연히 3km를 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자격증 공부를 한답시고 약 3개월을 쉬었다. 공부할 시간도 모자란다며 운동하는 시간을 줄였다. 거짓말처럼 과식과 야식이 습관이 됐다. 공부를 열심히 한 보상을 음식으로 줬기 때문이다. 식비도 늘고, 체중도 비례해서 늘었다. 이제는 많이 먹고, 운동을 안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몸과 뇌는 무섭도록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습관을 어떻게 형성하기 나름이다. 비만인 부모 아래 비만인 아이가 나온다. 식습관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 스스로가 좋아지는 습관들이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감사일기를 쓴다던지, 매일 30분씩 운동을 한다던지, 친한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들 말이다. 매일 조금씩 좋아지면 결국 좋은 삶을 살게 된다.


무의식 중에 나오는 욕을 막기 위해 오늘도 좋은 말을 조금씩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쇼핑몰을 검색하는 손가락을 혼낸다. 무의식 중에 욕하는 친구가 보기 싫어서  친구가 욕할 때마다 나는 혼자 속으로 좋은 점을 중얼거린다. 하루하루 무의식이 쌓여 결국 습관이 되고,  습관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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