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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ul 09. 2021

그림 한 번 야무지게 그렸다가 사장실 불려간 썰

삶은 해야 하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로 얽히고 설켜있다. 해야만 하는 것들만 한다는 것은 인생이 의무감과 책임감으로만 가득 찼다는 뜻이다. 이런 삶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하고 싶은 것만 가득 찬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부모님이 부자거나,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아르바이트를 하든, 어떤 형태로도 돈은 벌어야 한다. 밥벌이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인의 역할을 못하는 것이요, 자기 삶에 가장 기본적인 책임조차 지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다.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산다고 해서 행복하리란 보장도 없다. 물론, 하기 싫은 것을 하는 삶보다는 만족스럽고 즐겁겠지만, 결국 권태의 시간은 찾아온다. 마치 매일 소고기만 먹고살 수는 없는 것과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마음을 어떻게 내느냐인 것 같다. 내가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일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열심히 집중해서 하다 보면 재밌게 느껴질 때도 있고, 뜻하지 않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회사 내 월간지에 웹툰을 그려줄 사람을 뽑았다. 평소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여 나도 모르게 지원 버튼을 눌렀다. 웹툰 내용이 거창하지는 않았다. ‘회사 내 고운 말을 써야 하는 필요성’, ‘직장에서 자존감을 지키는 법’ 등을 다루는 웹툰을 그렸다. 8컷 정도의 그림을 그려주길 원했고, 나도 금방 그릴 것 같아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웬걸, 내용의 흐름을 정하고,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컷은 다시 그리고를 반복하니 8컷 그리는 데 2,3주가 훌쩍 갔다. 물론, 전업으로 하지 않고 퇴근하고나 주말에 그리니 속도가 더디긴 했다.


좋아서 시작한 프로젝트이지만, 서서히 힘에 부쳤다. 좋아하는 일이 해야만 하는 일로 바뀌었다. 예전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패드에 전원을 켜면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 찼지만, 이제는 빨리 한 컷이라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에 피로감이 찾아왔다. 좋아하는 일만 한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않았다. 결국 해야 하는 일로 바뀐 웹툰은 반년 정도 시달리다가 끝을 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또 다든 문제점과 고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월간지가 윗사람들의 눈에 들어갔나 보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칭찬도 받고, 프로젝트에 대한 보상도 많이 받았다. 다른 웹툰을 그려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도 들어왔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유명해지기 위해서도 아닌 오로지 좋아서 한 것인데 말이다. 열심히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기회도 생긴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앞으로는 무엇을 맡든 내 안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겠다는 소심한 다짐을 했다.

웹툰의 일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뭐가 되었건 간에 잘 살고 있다는 느낌만 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남들에게 인정도 받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내 뜻대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연예인들도 외모에 비례해서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언제 어떻게 올지도 모르는 남의 인정을 갈구하기보다는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싶다.


목표가 크고, 원대하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목표를 위해 행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고, 목표라는 허상의 모습을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끊임없이 지금의 모습을 부정하면 문제가 된다. 또한, 이뤄지지도 않았으면서 언젠가 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매일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되고 싶은 것이 많고, 욕심이 많은 것 자체는 되려 좋다. 다만, 조바심과 조급함을 느껴 스스로 화내고, 자책하다가 지레 포기하는 것은 문제다.


인생의 목표가 있다는 것은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고, 방향성이 있는 사람들은 잠시 샛길에 빠진다 한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방향성이 없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다. 되려, 매일 해야 하는 것들에 둘러싸이지 않고, 그때그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되니까 말이다. 오히려 오늘 하루,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펼쳐질까 설렘을 가지며 살기도 한다.


목표가 있으면 있어서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좋다. 모든 것은 변한다. 내 마음도 변하고, 내가 처한 상황도 바뀐다. 바뀌는 세상을 인정하지 않으면 꼰대가 된다. 그래서 술만 마시면 자신이 잘 나갔던 과거의 이야기만 되풀이하여 말하는 것이다.


항상 목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목표가 사라진 삶은 불안하다. 뭔가 계속하고 있어야 마음 편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은 오히려 불편하다. 그들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을 해도 뭔가를 한다. 이때까지 바쁘다고 미뤄왔던 것들을 한다. 딱히 인생에 목표를 가지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목표, 방향성이라는 단어는 답답하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뭔가 계속하는 친구를 보면서 대단하다고도 여기지만,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강아지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 위함이다. 돈을 많이 버는 이유도, 인기를 많이 얻으려는 이유도 다 자기 좋으라고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행복한 삶은 지금 행복한 것과 죽을 때 큰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찌 후회 없는 삶이 존재하겠냐만은 크리티컬 한 후회만 없다면 성공한 삶이라 생각한다. 후회 없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큰 인생에 걸쳐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해 본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 스스로 자부심이 넘치는 삶이다.


큰 인생의 목표와 방향성을 잡으니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살고, 1년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힌다. 매일 꾸준히 해야 할 것들이 보이고, 천천히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공부들이 생각난다. 대신, 수요일 저녁과 주말은 푹 쉴 것이다. 휴식계획도 야무지게 잡을 것이다. 결국 노후에 편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함 아닌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하기보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니까 하는 것이다.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다. 좀 더 윤택하게 살기 위해 지식을 집어넣고, 활발하게 살기 위해 러닝머신을 뛴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나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운동이 아니다. 그러니, 억지로 할 필요도 없고, 무리할 필요도 없다. 딱, 보기 좋은 몸 정도면 만족한다.


꾸준히 글 쓰는 연습도 한다. 사실 책 읽기나 글쓰기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나에게 큰 만족감을 준다. 그림을 그릴 때면 몰입을 경험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틀어놓는 것만큼 요즘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 그때 가장 행복하다.


지루하면 핸드폰을 자꾸 꺼내게 된다. 볼 것도 없지만, 계속해서 꺼내본다. 뭐라도 본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핸드폰을 찾게 되는 경우는 잘 없다. 신기하다. 핸드폰을 꺼내냐 마느냐에 따라 일의 재미와 필요성을 판단하고 있다. 지금은 핸드폰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 안에는 이미 인생에서 성공해야겠다는 압박감이 보인다. 성공이란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라 스스로 규정했다. 심지어 빨리 얻고 싶은 요령이 궁금한 것이다. 그런 것은 없는데 말이다. 그저,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을 매일 꾸준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스스로 만족하는가에 대한 답은 오로지 자기 안에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게 하려 할 때 부자연스러워지고, 사고가 발생한다. 자기를 되돌아보고, 남들의 눈치는 신경 쓰지 말자.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되, 대신 빠르게 결과물을 바라지 말자. 과정과 지금 인생에 집중하면서 살아보는 것을 목표로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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