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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Jul 15. 2021

우리집 강아지도 자유를 꿈꾼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 집 강아지조차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대문을 열어놓기만 하면 밖으로 뛰쳐나가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동물원의 동물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허벅지 근육을 폭발시켜가면서 사냥을 해야 하는 사자는 권태롭게 자기 앞발만 핥고 있다. 때가 되면 나오는 밥에 익숙해져서 딱히 사냥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이처럼 타고난 본성대로 살지 못하면 부자연스럽고, 자유롭지 못하다고들 한다.


친구와 갑론을박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삶이 권태롭고, 가끔씩 공허함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프리랜서처럼 자유로이(?) 일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의 의견은 달랐다. 되려 출근시간이 맞춰져 있지 않더라면 본인은 주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누군가 정해준 스케줄 때문이라도 사람답게 산다고 했다. 어느 정도의 구속이 친구에게는 안정감을 준다고 했다. 모두가 9 to 6의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 자유로운 삶이라 하면 ‘경제적 자유’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값과 코로나 이후 약 1년 동안 수직 상승한 주식 상승과 맞물려 사람들이 경제에 관심이 늘었다. ‘파이어 족’이라 하여 조기 은퇴를 꿈꾼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시간을 벌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이 무한할 것 같이 살고 있지만, 결국 언젠가 눈을 감고 나만의 시계는 멈춘다. 경제적, 시간적인 자유를 얻게 되면 진정 홀가분해질까? 고민해보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매 순간 거리낌이 없는 것’이 진짜 자유라고 생각한다. 매 순간 거리낌이 없다.. 마치 스님의 삶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아쉽게도 모두가 스님처럼은 살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만 자유롭게 사는 것도 아니다. 나만의 자유를 정의해야 한다. 그래야 홀가분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다. 매 순간 거리낌이 없기 위해서는 크게 ‘욕심’이 없어야 한다. 다른 말로 ‘집착’ 하지 말고, ‘고집’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을 거야라고 고집부리고 집착할 때, 뒤늦게 공지되는 부장님의 ‘삼계탕’ 회식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자유롭다는 뜻은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크게 마음 상태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에 가서 꼭 어머니나 아내가 밥을 차려줘야 한다라고 고정값을 잡는 순간, 싸움이 일어난다.


해주는 사람이 기쁘게 요리해준다면 무슨 요리가 되었든 맛있게 먹으면 된다. 그런데, 요리해주는 사람이 바쁘고 힘들어서 못해준다 하면 스스로 차려먹거나 시켜먹으면 된다. 밥 얼른 간단하게 해 먹고, 운동하러 가거나 자기 할 것 하면 된다. 굳이 ‘나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밥 안 해줄 거냐’라고 말하는 순간 가정의 불화가 시작된다. 이렇듯 고집부리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잘 유지되고, 자유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집착, 욕심’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나 눈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기 맘속에 있는 사람이다. 어릴 때는 문신을 한 사람이나 남자인데도 머리를 길게 기른 사람을 ‘자유로운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개성의 표현일 뿐이고, 자유로움과는 거리가 좀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되려 머리가 없는 스님들이 더 자유로워 보인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안 쓰는 사람은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운 사람은 타인의 신경을 1도 안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보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남들이 모두 캠핑 가서 자유를 흉내 낼 때 집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요즘 많이 거론되는 자유의 종류에는 경제적, 시간적 자유 외에도 ‘공간적 자유’가 있다. 캠핑을 간다고 해서 자유롭다 말하기는 힘들다. 저녁에 보이는 풍경과 밥을 먹는 공간이 바뀌었을 뿐이지, 되려 더 작은 방에서 모기와 사투를 하면서 잠에 든다.


때로는 하루하루 일에 치여서 자기를 되돌아볼 새도 없이 하루가 반복된다. 때로 길을 잃는 느낌도 들고, 조금은 허한 마음도 생긴다. 굳이 ‘자유’ 로워 져야 하는지 의구심도 든다. 왜냐하면 사람은 습관대로 살고, 관성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이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점심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불안하기도 하고, 카페인이 주는 편안함도 있다.


약 2년 동안 열심히 아침에 달리기를 했다. 못해도 3km는 꼭 채웠다. 달리기를 하고 나서는 복근 운동은 5분 정도 했다. 할 때는 괴로움에 몸부림쳐도 샤워하고 나서 보이는 내 몸이 좋았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할 때는 점심 먹고 크게 졸리지도 않았다. 그러다 자격증 준비를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운동하는 시간을 줄였다. 합리화하기 가장 좋기 때문이다. 운동하고, 샤워할 시간에 차라리 글자 한 자라도 더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딱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가슴과 배는 녹아내렸다. 더 이상 전신 거울에 내 몸을 비추기가 싫어졌다.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먹는 야식도 습관이 됐다. 사람은 습관대로 산다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최근에는 다시 러닝머신을 뛰기 시작했으니 3개월은 꾹 참고 해야겠다.


결국 자기가 만든 습관과 패러다임에 갇혀 산다.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면서 살아가고, 그것이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된다. 그런데, 자기만의 기준을 남들에게 똑같이 들이대는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 한다. 스스로 정답이라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 누군가에는 오답이 될 수 있음을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하다고 해서 남들에게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서도 안되고, 자기가 맞는 스타일이 남에게는 안 맞을 수 있으니 강요해서는 안된다.


군대에 있을 때 나의 대대장은 피자를 되게 좋아했다. 그에게 피자는 어릴 적 귀한 음식이었고, 그 여파로 기회만 되면 피자를 시켜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살도 그렇게 찌지도 않았는데 신기하다. 그래서 회식 때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피자를 시켜먹었다. 모든 대대원들이 힘들어했다. 가끔씩 먹어야 맛있지 피자도 자주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대장은 회식 때마다 그렇게 생색을 냈다. 그에게 피자는 마치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 같은 것이었다. 이처럼 내가 좋아한다고 남들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경제적, 시간적, 공간적 자유를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자유로운 삶’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목표’보다는 ‘존재’에 집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존재감이 있는 삶을 사는 것과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삶은 남들이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스스로 존재감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물론, 벌과 나비들에게 잘 보이려고 화려하게 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봄에 필 꽃이 가을에 불쑥 핀다던지, 여름에 져야 하는 꽃이 겨울까지 살려고 버티고 있지는 않다. 이렇듯, 스스로 멋지게 살려고 하는 것이 꼭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자유로운 삶을 표방하려 SNS에 올리려는 사람들이 진정 자유를 느끼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더 좋은 곳, 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곳을 찾아 ‘좋아요’의 노예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목표만 바라볼 때 자신의 지금 존재는 희미해진다.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 그렇지만 ‘미래의 완벽한 나’를 만들고, 지금의 나를 부정한다. 미래의 이상적인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없어진다. 지금의 나와의 괴리 때문에 힘들어한다. 조금은 붕 떠있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이처럼 목표는 존재를 희미하게 하고, 자유로운 삶과 멀어지게 만든다.


사람은 익숙한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한 방, 기적, 대박’ 같은 용어들을 좋아한다. 한 번에 이 지긋지긋한 인생이 바뀌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한 방에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벼락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듯이, 갑자기 찾아온 자유나 대박도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 지금부터 자기 스스로의 존재를 사랑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야 된다. 허상을 바라보기보다 지금 환경에 맞게 내가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 된다.


밥벌이는 위대하다. 누구나 어른이라면 자신의 삶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밥벌이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때로 공허하다.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밥벌이 중간중간에 힘들지만 스스로 빛나게 해 줄 것을 찾아야 한다. 스스로 멋있다고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로운 삶으로 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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