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day Oct 14. 2021

에잇, 한 잔 하자 하려다가

서른다섯의 내가 스물여덟의 나를 보면 어떨까?
그렇게 애쓸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
 과연 이게 원하는 일일까라는 불안은 없다.
 다만, 더 잘하고 싶을 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자꾸 더 높은 곳만 보며 나를 괴롭혔을까.
스무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나면 아마 울 것 같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중에서-



 누구나 매일 같은 감정일 수는 없다.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라는 생각은 일하다가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지만, 주말에 누워있다가 불현듯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무기력증은 누구는 주기가 짧아 자주 찾아오고, 드물게 찾아오기도 한다.


나의 경우 두세 달에 한 번씩은 꾸준히 오는 편이다. 정신을 못 차리고 무기력해진다. 그래도 대학교를 다닐 때나 일한 지 1,2년 정도 됐을 때는 좀 덜했다. 그땐 하고 싶은 것도 많을뿐더러 세상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크고 작은 이벤트가 쉴 새 없이 생겼다.


선배들이 술자리에 부르는지도 하고, 해야 되는 업무가 산더미였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오면 다음 날 아침이고, 출근 준비하고 정신 좀 차려보면 금방 주말이 돌아온다.

당연히 나를 되돌아볼 시간도 많이 없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면 무기력함이나 번아웃 등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조금 센 강도로 찾아와서 정신과 상담을 받는 사람도 있는 반면, 자신만의 방법으로 훌훌 털어버리는 이도 있다.




가끔씩 나 자신이 미워지고 무너질 때가 있다. 예전에는 진짜 인생 망한 줄 알고 슬퍼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늘어난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 빨리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현타가 세게 왔을 때는 독서, 운동도 하기 싫다. 그저 쉰다. 그리고 밥 세끼라도 잘 챙겨 먹으려 노력한다. 아무래도 일상이 무너질 때 몸에 안 좋은 음식들이 당긴다. 덩달아 술도 당기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몸은 본능적인 것에 만족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중에 하나가 식욕이다. 이때까지 다이어트한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 되는 순간이다.


몸에 안 좋은 튀김이나 피자 같은 고칼로리 음식은 먹다 보면 계속 당긴다. 폭식이나 야식은 잠깐 만족은 줄 수 있지만 그 만족감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먹다 보면 주체할 새도 없이 몸무게는 2~3kg 찐다. 그래서 아무리 심리적으로 무너진다 한들 한 끼 정도는 정상적인 식사를 하려 노력한다.


시간이 허락하면 걸으려고 노력한다.

일상이 무너지면 밖에 나가기도 귀찮다. 아니, 옷을 입기도 귀찮다. 그럴 때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눈에 보이는 옷을 주워 입는다. 그리고 하염없이 걷는다.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질러졌던 마음이 정리될 때도 있고, 다시 삶의 의욕이 날 때도 있다. 확실히 산책은 효과가 있다.


가끔씩 응급 치료가 필요할 때도 있다. 바로 샤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소를 하면서 효과를 많이 보지만 개인적으로 힘이 나지 않을 때 청소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포기하고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 그리고 꽤 오래 한다. 평소에 바르지 않던 제품들도 발라보고 최대한 구석구석 씻는다.


피날레로 수도꼭지를 찬물로 바꾼다. 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효과가 좋다. 너무 차가운 물이 아니고 시원한 물을 가만히 맞고 있으면 기분은 차분해지지만 삶의 의욕이 돌아올 때가 있다. 그리고 상당히 개운하다. 샤워가 끝나고 나면 몸이 열을 내서 살짝 에너지도 난다. 억지로 에너지를 짜내는 나만의 방법이다.



어차피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 인생이다. 실제로 인생이 그렇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들을 인정하면 그래도 마음은 편해진다. 안 그래도 나를 괴롭히는 것이 많은데 나 스스로를 괴롭혀서는 되겠는가.


조급한 마음을 조금 버리고, 긴 호흡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다시 공책에 써보자. 그리고 마법의 주문을 마음속으로 외쳐보자.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좋으나 슬프나 지금 이 시간도 소중한 내 인생의 일부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에게 편한 의자는 없다. 나에게 맞는 의자만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