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지만 세상은 불공평하다. 공평할 수가 없다.
우리가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은 모두에게 다 똑같을 수가 없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가르쳐도 결과물이 똑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기회가 불평등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최대한 공정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콜먼 보고서'라고 있다. 1966년 미국에서 발표한 보고서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생들의 성적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직업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환경보다 부모의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사입장에서는 굉장히 힘 빠지는 결론이다.
콜먼 보고서를 의뢰한 존슨 대통령도 당황했을 것이다.
애초에 인종, 지역, 종교적 집단에 의한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조사하여
낙후된 지역에 교육자원을 더 분배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이것 봐, 교육적 자원, 기회가 불평등해서 이렇게 결과가 다른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막상 결과를 까보니 '국공립과 사랍 간 시설 격차, 교사능력 격차, 지역 간 격차'는 미미할 정도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조사를 했는데 우리는 한술 더 떠서 부모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부모의 학력, 소양 등 문화적 자본이 학업성취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결과를 보고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는 교사로서 바꿀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임용되고 나서 부푼 꿈을 안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1년, 2년이 지나고 나서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이 없구나' 깨닫게 된다. 내가 오만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문제 아동들과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부모도 못 고치는 것을 내가 어떻게 고치랴.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제약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 능력이 전부 결정하는 세상에서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교사까지 포기해 버리면 아예 희망이 없어진다. 내가 이 한국 사회, 우리 학교 모든 반 학생들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반의 기초학력 대상자 학생의 두 자릿수의 나눗셈은 이해시킬 수 있다.
혹자가 말했다. 인생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무기력을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30대가 되면 알 수 있다(어쩌면 더 빨리 깨달을 수도 있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고,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오늘 밤 야식도 내 마음처럼 잘 안되는데 내가 누구를 변화시키고 바꾼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노력하면 나 하나는 바꿀 수 있다. 내 앞의 학생 한 명은 바꿀 수 있다.
허무함과 무기력함을 느끼지만, 그것이 우울하고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고, 그 안에서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혜택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조금의 희망을 주고, 조그만 벽을 치워주고 그다음 해로 잘 올려 보내는 것이 교사의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