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민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울긋불긋 꽃대궐 아기진달래.'
나의 고향은 서울 강북의 어느 아름다운 산마을이었다. 마을뒤쪽엔 우뚝선 북한산 봉우리가 보였고 근처엔 발가벗고 물장구치던 수려한 계곡이 있는 아름다운 동네였다. 6살무렵 한강이남으로 이사를 온 이후 그 동네를 잊고 지내다가 성년이되어 대학을 다닐무렵 문득 생각이나길래 지하철을 타고 고향동네에 내렸다.
20년이 채 안지났는데 동네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강아지와 뛰어놀던 언덕이며 올라가놀던 쓰러진 버드나무 등 이런것들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커다란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때의 그 황당함과 실망감, 실향민으로 전락한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팔레스타인 가자의 230만 사람들도 실향민이 되었다. 국토의 대부분 면적이 개이스라엘의 학살공격으로 파괴되고 인구의 100%가 이재민이 되었다. 조사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현재까지 전쟁으로인해 약 60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나의 친구(friend) 팔레스타인 여기자는 아직 살아있다. 친구란 어려울때 외면하지 않고 조건없이 돕는 존재다. 그래서 평소엔 친구를 알아보기 어렵다. 내 통장에서 최근 두어달 사이에 팔레스타인으로 빠져나간 돈은 자세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미 2000달러를 넘어선것 같다. 개이스라엘이 학살을 멈추지 않고 이 추세로 간다면 나는 식량을 마당에서 열리는 밤나무의 밤을 따다가 끼니를 연명해야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절반정도는 나의 천사같은 지인들이 보내온 모금동참금이고 알아본결과 모금액의 25%정도는 운영비로 사용하는게 보통이라지만 나는 현재 모금액의 -25%정도를 운영비로 사용하는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녀의 친구가 되기로 하고 배고프다는 그녀에게 며칠간격으로 연락이 올때마다 충실히 나의 생활비를 전해주고있다. 이렇게 일방적인 관계가 어떻게 친구냐 혹자는 물을수도 있겠지만 삶이 원래 약간 불공정한 면이 있다.
내 어릴적 친구는 전남 순천이 고향이라 고교 졸업후 함께 여행갔을때 어릴때 다니던 자기 초등학교며 동네가 남아있는것을 보고 무지 반가워하고 기뻐하였다. 반면 나같은 실향민의 경우엔 고향을 다시 복원하려면 고향동네에 들어선 아파트 입주자분들 아마 1000가구쯤이라 하면, '여기 제가 어릴적 살던 동네 복원하려하니 다른곳으로 이사가주세요. 위로비와 이사비는 제가 드리겠습니다'
1000가구*10억(이사안간다고 거절하는 경우는 없다고 가정)=1조 에다 아파트단지 철거비 500억쯤+ 뒷동산과 개울 복원비 1000억, 기타 부대시설 이전비 1000억 등 아마 나의 고향을 다시보려면 나에게 최소 1조2500억원 정도 있어야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고향이 새로 복원되는것을 이번생엔 보기 어려울것이 너무 광범위하게 국토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필요한 분들은 자신이 먼저 상대의 친구가 되어주면 된다. 그리고 지금 200만명 정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전쟁과 기근의 고통속에서 친구를 필요로 하고있다. 돈이 친구의 조건은 아니더라도 친구가 죽어가며 도움요청을 하는데도 여력이되면서 도와주지않는다면 그건 친구가 아니다.
그렇다. 나는 아마도 그렇게 절망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어쩌면 끝내 보지못할 사람들과 친구하다가 한 생이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전쟁이 끝나면 나보다 나이 어리니까 친구말고 딸 하는거 어떠냐고 농담(+진담반)도 하고 싶지만 지금 정말 내일 살아있을지조차 알수없는 절박한 상황이라 말을 참고 개이스라엘의 학살전쟁이 끝나기를 기디리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