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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속물근성 부활진행중

by 까마귀의발
비오는 바다에 떠다니는 물체

요새 세상이 어떠한 이유에선지 날 자극하면서 내면에서 꿈틀거리던 나의 속물근성이 깨어나려는걸 느낀다. 십대 이후로 나의 사회생활에있어 주요 단점은 너무 착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백석이 말했던 '사람은 모든걸 잃고 얼 하나를 얻는다'는 말이나 동양노장사상의 '내면의 자유'같은 단어에 10대때부터 깊이 매료되어 스스로의 모든 속물근성들을 멀리하려 하였고 야동과 술에 절고 여친의 몸과 마음 모든걸 뺏은뒤 이별도주 등 비록 비난받을 일들을 하긴 했지만 아무튼 큰 흐름에선 자본과 욕망의 사회흐름을 멀리하고 착함과 겉으로 빛나지않되 안으로 빛남을 지향해왔었다. 십대.이십대에 소소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타인의 인정은 나에게 별 의미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자만심을 키울 우려가 있다고 생각되어 상장, 표창장 같은건 종종 불붙일 땔감정도로 사용될 뿐이었다.

땔감으로 사용하려 했던건 종이뿐이 아니었다. 내 지인중 자기사업이 잘 풀리면 나에게 슈퍼카를 선물하겠노라던 분이 있었는데(결국 사업이 잘풀리진 않았고 말로 그쳤지만) 그 무렵 이태원참사에 빡쳐있던 나는 만약 나에게 슈퍼카가 들어온다면 용산에 댓통 퇴근길에 가져가서 댓통이 퇴근하는길목 도로복판에 차량을 불태워 길을막고 시위를 할 생각도 했었다. 괜히 용산으로 댓통실 이전에서 교통혼잡등 엄청난 민폐를 끼치다 결국 이태원참사로 수백명의 꽃다운 사람들이 참변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에 대해 부아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물론 출구전략도 있었다. 가스통과 알콜통을 차에 잔뜩 싣고 담배불로 불붙인뒤 빠져나와서 '람보르기니 용산에서 불타다'기사가 나오고 나는 경찰에 체포되면 '담배피다 실수로 알콜통에 불이 붙었다' '알콜과 가스 모두 알콜램프로 유리관 제작실험하려고 가져가던 중이었다. 나 이과생' '설마 내가 시위하려고 몇억넘는 슈퍼카에 불을 붙였겠냐 실수니까 빨리 풀어줘' 등등)


깨지고 망가진 호박마차

아무튼 그렇게 사회엔 한발짝만 딛고 지내오던 나에게 올해 쯤부터 세상이 가하는 자극의 세기가 심해져오며 속물근성이 발현될것같은 예감이 들었다. 얼마전 방정리하다 떨어트려 깨진 나의 신데렐라 호박마차처럼 스스로 봉인시켜두려 노력했던 속물근성이 봉인이 깨지며 풀려나고있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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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씀

이어서..


최근에 알게된 나의 성향은 실행력이 있는 계획형 INTJ형이었다.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큰 틀에서 맞다고 생각되면 행동으로 옮겼다. 내 주변의 동물들 케이스를 보면 길가다 쓰러져있는 개를 보았을땐 데려와 치료해주고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https://brunch.co.kr/@wordofexecusion/166


반면 예전에 지인네 개가 짖는다고 지인이 자리를 비운사이 몰래 개를 때릴때나 혹은 또다른 지인네 고양이를 납치해서 인근 기차역에 유기시킬때 등 대부분의 행동은 미리 계획하고 실행한 행위였다. 지인네 고양이 납치 유기사건은 시골마당에 노인네가 대충 풀어놓고 키우는 고양이였는데 그 고양이가 나무에 올라가서 새를 잡아먹었다는 얘기를 듣고나서 실행한, 관점에따라 생태계보호 혹은 타인 반려묘 납치후 유기로 볼수도 있는 행위였다. 새들을 무척 귀여워하고 좋아하고있던 나로선 그 얘기를 듣자 감정에 반응이왔고 며칠이안되어 지인이 안보는 사이 또다른 공범자인 운전기사를 대기시킨뒤 재빨리 고양이를 집어서 상자안에 넣고 10킬로쯤 떨어진 기차역에 유기시키는 계획-행동을 감행한 것이다. 귀여운 새들 먹지 말고 기차역에있는 쥐하고 관광객들이 버리고간 음식 혹은 운좋으면 어느 마음착한 사람이주는 사료먹고 살아라. 지금와서 보면 좀 미안하고 반성이되지만 당시는 내가 새들에게 꽂혀있을때라 고양이가 없어졌다고 걱정하고 슬퍼하는 지인이나 납치의 공포속에 상자안에서 역에도착해 풀려나기전까지 앙칼진소리로 울어대던 고양이의 감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학생때 혼자 유럽배낭여행을 갔을때도 엄마의 잔소리를 예상하여 가족들 아무한테도 말하지않다가 현지에 도착해서 계획을 알렸었다. '엄마 나 방금 유럽왔는데 한달 있다 집에 갈께'

지금와서 보면 모두 선계획-후행동을 하여왔던 전형적인 INTJ형이었던 것이다.


다시씀


지난밤에는 팔레스타인 현지인이 온라인으로 또 연락해오며 도움을 요청하여 또 50달러정도를 내어주었다. 내가 지원금을 준다는 얘기가 동료들사이에 돌았는지 하루이틀이 멀다하고 들어오는 참혹한 현지사정얘기와 간청으로 나는 한번에 50~100달러씩을 지원해주었었다. 하지만 요새는 생활비가 바닥나고 있는게 피부로 느껴지는것 같아서 하루이틀걸러 들어오는 이런 지원요청이 서서히 밤마다 섹시한 자태로 나타나 남자들의 정기를 빼앗아간다는 처녀귀신처럼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사람을 쉽게 믿고 자본주의 세상물정 모르던 나는 20대초 외국여행을 다닐때부터 수도없이 소소한 사기를 당해오면서 글로벌호구 노릇을 해왔던터라 지금은 적당히 거절할줄도 알게되었지만, 학살전쟁과 기아의 고통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들어오는 이 지원요청은 매번 차마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아직 자본주의가 아닌 또다른 세상에 살고있는 면모와 착한구석이 남아있는 것이다.


서론이 좀 길었고 올해들어 돈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브런치에 올렸던 나의 고차원적 면모는 잠재우고 어느날 냉정하고 속물적인 호모사피엔스로 변신할 가능성이 생겼다. 이건 고1~고2때까지 수업과 무관한 책을 읽으며 숙제안해오거나 지각하거나 학교땡땡이쳤다고 매일같이 빠다를 맞다가 고3에 들어서며 읽던 책을 모두 치우고 수능기출문제집만 남겨놓은뒤 1년안쪽으로 수능점수를 거의 100점가까이 올렸던 과거의 나에게도 이미 전적이 있는것이다. 한번에 두가지 일을 못하는건 대체로는 단점이긴 하지만 간혹가다 이렇게 장점으로 작용할때도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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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보다도 더 조용한 나의 SNS에서 예전에 내가 계폭했던 닉네임으로 며칠전 외국인여성이 팔로잉을 해서 오늘 맞팔한뒤 말을 걸어보았다.

'당신은 뭘 먹었길래 예쁘냐' '당신이 그 닉네임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꽃의 상징성, 화려한모습, 향기 중에서 무엇이 당신이 좋아하는 것인가?' 둥둥

곧바로 쪽지 답장이오고 미국에서 투자사?FC ?일을 한다는 자기소개와 함께 나의 몇마디에 관심을 보이길래, 비록 예전처럼 '너는 어느별에서 왔니?(외계인취급)'나 '당신이 AI가 아니란걸 증명하기위해 나랑 역할극해보자. 내가 어린왕자할테니 너는 꽃해봐' 등등 당혹스런 장난은 안쳤지만 다소 솔직히 말했다.

'나랑 좀더 친해지면 나는 얼마안있어 당신의 약점을 찾아내서 공격할거다'

'나는 두어달새 팔레스타인에 2000달러쯤 써서 생활비가 바닥났고 빈털털이다. 투자할 돈이 전혀없다'

'내가 미국의 월든호에 갔던 이유는 나같은-오두막짓고 혼자노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었다는걸 확인하고 위안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런얘기를 하자 나에게 엄청난 호감을 보이며 자기얘기를 해왔다. '30몇살이다. 대만이 고향인데 얼마전 태풍으로 피해가있어서 피해복구비용으로 가지고있는 현금 600,000달러를 기부했다. 한국에가면 밥사줄테니 내가 가보고싶은곳 가이드좀 해달라'

작별인사할때는 나와 얘기하는데 빠져서 저녁먹는것도 잊었었다고 말했다.


'꽃뱀일까? 투자유도하려는걸까?' 각종 국제사기를 보아온 나로선 당연히 의심했지만

내가 몇년간 여친없이 개구리, 뱀, 들냥이랑 노는데 지쳐가고있어서인지 커다란 눈을 가진 이 외국여성이 예쁘게 보이고 약간의 진정성도 느껴지는것 같았다. 사실이라면 나보다 엄청난 부자였다.

'응 그래 넌 엄청부자구나. 한국오면 내가 가이드해줄께. 시골땅 팔리면 투자하는법 물어볼께 가르쳐줘'

속물근성이 꿈틀거리는걸 느꼈다. '가이드비용 하루에 500달러씩 받을까?' '꽤 예쁜데..어디 섬같은 데로 같이 여행가서 뱃사공 아저씨한테 몰래 용돈드리고 오늘은 우리 데리러오지말고 내일오전에 데리러 와달라그럴까?'

'나를 집사로 한달만 고용하라고 해볼까?' 둥둥

이렇게 잠재된 속물적 욕망들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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