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의 죽음

by 까마귀의발
모닥불을 쬐고 있는 너구리

지난밤 마당으로 찾아와 모닥불을 쬐던 너구리가 오늘 아침에 모닥불 옆에서 죽어있어서 나무 아래 묻어줬다.

그저께 밤에 근처에서 서성이는걸 처음으로 보았는데 어제는 마당안으로 들어와 들냥이밥을 먹고있어서 들냥이들과 나를 놀라게했다. 너구리가 고양이들과 생태계에서 동등한 서열인줄 알았지만 어제보니 사실은 고양이보다 우위에 있었다. 들냥이밥을 빼앗아먹고 있어도 이 구역 알파냥이들 조차 야옹한번 안하고 자리를 피했다. 알고보니 너구리는 늑대, 여우와 마찬가지로 개과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아픈것처럼 보였고 실제로 밤엔 모닥불 곁으로와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너구리홍역'에 걸려서 고열에 시달리는것 같아서 화로에 장작을 더 넣어줬다. 담요도 살짝덮어주려했더니 놀라며 피해서 담요는 놔뒀는데 아침에 와보니 결국 화로옆에서 죽어있었다. 어제가 이 어린 너구리에겐 마지막 밤이었던 것이다. 불쌍했고 근처 뽕나무아래 묻어주며 좋은곳으로 잘가라고 말해줬다.

그저께는 물건살게 있어서 인근 대형마트에 다녀오는데 먹거리들과함께 가전제품중 세일하는 진열상품 하나를 골라서 카운터로 가져갔다. 카운터 아주머니가 상품에 걸려있는 전선같은걸로 묶인 도난방지잠금장치를 풀어주기를 기다렸는데 단순한 끈인줄 아시고 가위로 끊으려했지만 여자의 악력으로는 쉽게 끊을수 없어서 안잘렸다. 내가 그걸보고 도와드리겠다며 작은가위로 전선피복 아래의 여러겹 철사를 강제로 잘라서 끊었다. 부수는건 어렸을때부터 내 특기였던 것이다. 아무튼 철사줄을 끊자 삐익삐익하며 잠금장치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렸고 아주머니는 옆의 다른 카운터아주머니와 대화하셨다.

"이거 줄 끊었더니 소리가나네."

"뭐 이런게 다 있어"

잠시뒤 다른 남자직원분이 오더니 줄이끊긴 잠금장치를 보며 아뿔사하는 표정으로 장치를 가져가셨다. 나는 모른척 즐겁게 잠금장치의 죽음과 관련된 짧은 일련의 광경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뭐 그런게 다있을까요...^^'


주변 작은것들의 죽음을 보며 소회를 남기고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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