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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의밥 Oct 13. 2023

할머니를 위한 장미

남자가 여자에게 장미를 바침

옆무덤의 할아버지와 나란히 모셔진 할머니의 무덤에 장미를 놓았다. 말린 장미다. 꽃집에서 받아온 꽃이 어쩌다보니 장미여서 비녀를 꽂으신 인자한 모습이 아른거리는 무덤앞에 장미를 놓았다.

할머니는 어렸을때부터 나의 최애 친구셨다. 한달에 두어번 큰집에 사시던 할머니가 우리집을 방문할때면 나는 설명할수 없는 생의 기쁨이 차오르며 무작정 좋았다. 열살도안되는 어린 손자를 예뻐해주시는게 느껴져서 였는지, 40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때의 환히웃으시던 인자하신 할머니얼굴이 기억에 아른거린다.

십대때 할머니와 독대를 한적있다. 명절무렵 큰집에 방문했을때인데 유교집안이었던 집안에 마침 여자가 할머니외엔 아무도 없어서 할머니가 차려주는 독상을 받았다. 반찬은 다소 간소했던것같고 기억이나지 않는다. 기억나는건 밥이다. 요새 식당에가면 주는 공기밥의 아마 세배정도 되는양을 그릇에 꾹꾹누르고 그위로 수북히 그릇높이만큼 더쌓아서 독상을 차려주셨다. 드걸보고 좀 당황해서 "할머니 이거 좀 많은것 같아요. 좀 덜을께요"  말씀드리자 할머니는 안된다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니, 장정이 그깟거 하나 못먹어?"

그깟거 하나... 꾸역꾸역 먹다가 할머니가 손자먹는걸 지켜보는 잠시 멈추고 다른걸 가지러가신사이 남긴밥을 밥솥에 넣어서 위기를 벗어낫다. 할아버지를 한번도 적이 없지만 힘이 꽤나 좋으신 분이셨던것 같다. 할머니는 이전에 할아버지께 차려주시던 대로 청년이 되어가는 손자에게 밥상을 차려준 것이었을테니.

시골 고모네를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방문한적이 있다. 허름한 산촌 시골집이었는데 그날 비가 몹시내리고 번개가 쳤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비녀를 푸신 모습을 보았다. 매반 쪽을하여 비녀를 꽂은모습만 봐와서였는지 그날 긴 장발의 할머니를 보며 할머니도  젊으실땐 무척 아름다우셨을 여자셨다는걸 깨달으며 느낌이 이상했다. 왜였는지 번개치는날 머리카락을 태우면 귀신을 쫓는다던가? 그런말과 함께 머리를 빗으시며 빠져나오는 머리카락을 태우시던 모습과 머리카락 타는 냄가 그날 치던 커다란천둥소리와 세찬 장대비보다 더 강열하게 인상에 남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해전쯤인가 한번은 할아버지 제삿날 엄격한 유교집안에서 여자는 들어올수 없었던 남자들만있던 제사방에 남자들의 절이 끝나자 할머니가 들어오셨던 기억이난다. 그런적은 한번도 못봤었는데 그날따라 할머니께서 할아버지 위패를 모셔놓은 제사상에 고운색시처럼 다소곳한 자세로 두손을 이마앞에 수평으로 모으시고 공손히 절을 올리셨다.

마지막 기억은 병원에 계실때였다. 어떤병인지는 몰랐지만 위중하시다는 얘기만 듣고 부친차를 타고 병문안을 갔는데 산소호흡기를 벗으시며 "왜 이렇게 안죽어지는지 모르겠다" "이거(산소호흡기) 하지마라"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얼핏난다. 얼마뒤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나도 선산에가서 뭔지모를 허전함을 느끼며 죽음이란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의문을 가져보며 절을 했던 기억이난다.

지금와서 보면 여장부셨다. 나보고 "장정이 그것도 하나.." 운운하셨던걸 보면 외모만 여성스러우셨지 성격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쿨하디 쿨한 여장부셨던 것이다.

할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장정이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어느사이엔가 되었다.(속으론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는걸 알지만-)이제서야 할머니의 시원하고 멋짐이 는것 같다.

무덤에 가서도 '뭐 그까짓..'하고 말씀하실것 같은 멋지고 멋진 그녀에게 이제나마 마른장미를 한송이 바친다. 할머니, 당신은 멋진여자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손자 장정(언젠가는 외모뿐 아니라 내면도러길 바라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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