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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시난테의주 Apr 18. 2024

변화의 시기 중간기록

벚꽃이 지고 이름모를 꽃들이 피고 나무들의 잎이 무성해지고 있다. 작년 가을즈음 옮겨심은 아기소나무는 겨우내 시름시름앓았지만 다행이 살아서 새순을 내었다.

계절과 자연의 변화와 함께 나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몇해전 키우던 개도 떠나고 며칠전 새도 죽은걸 보면서 모든생명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이 와닿게된것 이외에도 이승만의 100만-민간인 학살, 이스라엘의 무고한 팔레스타인 양민학살, 그에대한 강대국들의 동조와 묵인, 그리고 미국이 건국된 배경인 인디언학살, 2차세계대전 전범국인 일본의 계속되는 지구에대한 테러, 그중하나인 후쿠시마원전방사능오염수 해양투기, 세월호참사와 흡사한 이태원참사, 2찍막장정부가 나라를 망쳐가는 상황 등을 최근에 한꺼번에 접하면서 인간이란 종과 인간사회에 대해 어릴적 학교교육을 통해 형성되어 사회를 보는 기본시각으로 남아있던 인류사회의 선함과 상식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비정한 생태계논리로 사회를 재조명해야한다는 사회관의 변화에 직면해있다.


30대때도 여전히 20대마냥 순진했던 나는 여기저기서 돈을 뜯겼다. 가령 지인들이 생활이 어렵다며 백단위의 돈을 빌려간뒤 다시 돌아온 경우는 다섯에 한두명 정도였다. 십여년간 알았던 여성지인중엔 아이를 키우는데 사업이 안풀려 생활이 어렵다며 사정을 토로하길래 나중에 부자되면 달라고 오백(아이와 같이지내는데 필요한비용)을 준적도 있지만 얼마뒤 내가 독설로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려 싸우고 틀어지자 잠적해버린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돈에 욕심을 내는 경우가 많았고 호의를 받았으면 최소 그만큼은 가능한한 빨리 돌려준다는, 그래서 상대도 으례 그럴거라 믿었던 순진했던 나와는 다른경우가 많았다.(현실부적응자의 토로)


최근에 달러환율이 1400원대로 올라갔는데 어느정도 예고된 일이었다. 총선전에 국정에 실패했다는걸 감추려고 환율방어기금으로 이미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있어서 총선이 끝나면 고유가, 고물가, 고환율 등은 예상된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전에 난 가지고있던 달러를 별다른 수익없이 전부 처분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학살을 돕는걸 보면서 미국과 달러에대한 만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피묻은 돈을 만지고 싶지않았다. 미국은 인디언 학살을 통해 건국된 나라이고 일본과 더불어 한반도 분단의 원인인데다가 지금도 여전히 전쟁을 통해 유지되는 나라란 점이 떠오른뒤로 달러를 처분하기까지 그다지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튼 난 순진했고 돈이 주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적응자거나 먹잇감 정도였다고 이제와 생각한다. 나와같은 유전자가 아직도 살아남았다는건 삶의 신비중 하나인듯하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치타나 표범이 사냥을 했는데 상대가 너무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소나 어린가젤인 경우 안먹고 그냥 다시 놔주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이 냉정한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소소한 성공을 하여 살아남은 것도 대략 그와같은 경우인것 같다.

물론 그렇게 비정한 사회속에서도 선의와 미덕을 잃지않고 살아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도 내가 새가 죽었다고 무척 슬퍼하고 의욕없어하는걸 읽고 힘내라고 위로해주신 천사같은 작가님도 있다. 위로말은 안해줬지만 작가들의 경우 차가운 현실속에서도 이상과 온기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분들이 여럿 있으시다고 본다. 나같은 어리숙하고 현실부적응중인 사람이 그나마 숨이 트이는 지점이다.


그렇건만 꽃이지고 나무에 새잎이돋아 무성해져가듯,

나같이 바보같은사람을 찾기어려울만치 정리안되고 뒤죽박죽, 순진한 믿음을 가졌던 나도 이미 벌써 변화하고 있다.

예전엔 쥐통으로 쥐를 잡으면 얼마간 떨어진곳에 풀어줬다. 쥐가 귀소본능이 있어서 다시 살던곳으로 돌아온 일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새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밝혀보면서 '인간에게 살던구멍이 막혀 스트레스받은 쥐가 보복행위로 아직 어두운 새벽에 새를 건드려서 놀라게했고 놀란 새가 날아오르며 새장어딘가 머리를 부딪쳐 죽음' 으로 결론을 내리게되자 쥐통이 아닌 쥐덫을 열개정도 배치한뒤 쥐를 잡았다. 몇대 때리고 다음날 풀어줄 작정을 하고 너도 한번 놀라봐라하면서 들냥이밥 앞에 통에 가둬놨더니 아침에 일어나보니 죽어있었다. 사인은 피할곳없이 갇혀서 들냥이를 마주보고 심장마비인것 같았다. 쥐가 별다른 이유없이 갇힌지 하루만에 죽을정도로 약하지 않기에 그렇게 추정했다. 혹시나하고 남은 쥐덫들을 그대로뒀더니 곧이어 새끼쥐들이 두마리 잡히고 한마리는 도망갔거나 숨었다. 올빼미나 매처럼 쥐를 먹는걸 가르쳐주진않더라도 최소한 쥐를 보고 너무 놀라지않게 교육용으로 쓰려고 가둬놨다. 어느새 나도 착하거나 순진함을 넘어 영악해져가고 있는것이다.


섬나라 개일본의 엔화나 학살동조국인 미국의 달러나 야만인들이나 하는 부동산투기를 하진 않더라도 뭔가 MBC나 오뚜기같은 괜찮은 기업들을 찾아 개미로서 자본주의 사회에 동참하는 활동을 시작할것 같다. 올해가 지날무렵이면 아마도 약간의 사회성이 생길것 같다.


이러한 변화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삶에 있어 발전일지 아니면 퇴보일지 아직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너무 이것저것 고민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내가 그동안 가져왔던 기대와는 다른 부조리한 난류같은 세상의 흐름에서 뭔가 휩쓸려가지않고 주도적으로 삶을 항해할수 있도록 변화를 하기로 생각한것 뿐이다.

생각과 행동의 간극은 얼마나 될까. 오늘 기록을 이만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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