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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의밥 Apr 26. 2024

풍찬노숙

길에서 자던일

밖에서 자는걸 경험해보는건 주로 소수의 남자들일 것이다.

달 밝은 밤이면 문을 열어놓고 자기도 하는데 겨울엔 그래서 감기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문을 열어놓고 자면 20대때 여행가서 노숙하던 경험들이 떠올라 즐거워지곤 한다.


어제 일터에서 알게된 지인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그보다 훨씬더 어린 20대 여학생 두명이 함께있었다. 다들 어디론가 떠나는중이고 짐이있어서 시긴이 남는 내가 기차역 버스정류소까지 태워주며 얘기를 했다. 30대 여성지인은 그냥 어리게보였는데 20대 대학생들은 어리게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커다란 아기'들처럼 느껴졌다. 옛날어른들이 시집온 며느리를 '큰애기'라고 부른 이유를 나이가들면서 이제서야 이해할수 있었다.

나이듦의 장점인것 같다. 몸과 때론 심리나 정신도 약해져가지만 세상과 삶에 대해 이해를 해 간다는것은 얼마나 즐겁고 의미있는 일인가!

아무튼 내가 속마음은 여전히 철없고 어려서인지 20대학생들이 내 나이를 듣고 놀라워했지만 사실은 더이상 20대나 30대가 아닌 그들이 아기동물들처럼 귀여워보이는 어느덧 아저씨인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길에서 자는일은.. 거의 없는것 같다.

어느 지방의 객실에서 문을 열어놓고 자는일은 있어도 길에서자지는 않는것이다.


처음 길에서 잔건 고딩때였다. 1999년이었던것같다. 100여년만에 사자자리 유성우가 크게 떨어질걸로 예상되는 밤이었다. 그당시 학교공부엔 크게 신경을 안쓰던 고2때라 초겨울에 시골에사는 친척집으로 가서 홑이불을 하나 빌려서 주변에 인가가 최대한 없는 마을과 멀리떨어진 불빛없는 논 가운데쯤에서 이불에누워 밤을 샜다. 멀리서 마을 개가 어떤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 혼자 논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는지 무척 짖어대서, 그리고 초겨울 추위때문에, 그리고 예상보다 유성우가 안떨어지고 평범한 수준에 그쳐서 그당시 별로 낭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개도 이상하게 여길만한 그런 10대때의 내가 그날 몇개 보지못한 별똥별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10대때 이미 이렇게 노숙을 한 경험을 살려 20대때는 더 자신있게 길에서 자기 시작했다. 스위스를 여행했다하면 보통 부자거나 여유가 있는걸로 알지모르지만 그건 스위스 호텔같은데서 자는 경우겠고 나는 스위스 호수공원 벤치에서 잤다. 호수위로 붉게 노을이 지는걸 보며 전망대의 중간쯤 의자에 누워자고있는데 새벽에 인기척이 들려서 깼다.

술취한 남자가 벤치에서 혼자 호수야경을 보던 여에게 작업을 걸었고 당연히 두려움을 느낀 여자가 피하려하자 여자를 자빠트리는걸 보고 급하게 보고있는 사람이 있음을 알렸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그 밤중에 벤치에서 자다깨서 자기를 제지하는 남자를보고 놀라지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남자들끼리 대화하는사이 여자는 도망고 술취한 남자는 노숙하는 수상한? 외국인에게 좀더 자기변명을 하다가 떠나다.

..

10대나 20대초처럼 무모하게 길에서 자진 않고 그 뒤로는 그래도 텐트에서 잤다.

이십대 후반에는 텐트를 지고 그 유명한 히말라야산에 갔다. 한라산이나 지리산도 갔었지만 히말라야산은 한국의 산들보다 훨씬더 크고 높았다. 3일정도 올라가던날 길을 잃고 2천500m고지쯤에서 해가져서 급하게 텐트를 쳤다. 텐트가 있으니 1020때 길에서 자던것보다는 훨씬더 아늑하고 안전한 것이었다.

그런데 새벽에 주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깼다. 뭔가 큰동물이라는게 느껴져서 텐트 지퍼를 살짝열고 보았다. 어두운 밤인데 눈이 빛나는 커다란 동물 두마리가 저만치 떨어진데서 텐트를 경계하며 놀고있었다. 나도 살짝 경계심이 들기는 하였지만 그땐 정말 겁이 별로없었던 시기라 '자는데 방해되니 조용히좀 놀'의 뜻으로 헛기침을 몇번하고 다시 잤다. 소만한 고양이과 동물이거나 야생소였던것같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동물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사실 나도 경계했지만 그 동물들은 그렇게 산에 텐트같은걸 가지고와서 혼자서자는 인간이란 존재는 총을 가진 사냥꾼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자기들을 두려워하지 않을정도로 강한 경계해야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내가 호랑이였어도 어지간히 굶주리지않은이상 그냥 피해갔을것같다.


객실밖엔 달빛이 비고 초저녁엔 소쩍새가 울더니 자정무렵이되니 휘파람새 소리가 들린다.

도시가 밝고 집이 안전하고 아늑한것 같지만 도시의 불빛은 별빛과 여러 밤짐승들의 울음소리를 쫓아버리는 또다른 어둠이고 집이란 것도

육아나 짝짓기용도로 임시로 사용하는 것 외엔 자연과의 교감을 막는 방해물에 해당하는 것이다.

루소의 말이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물론 이건 원시상태나 문명이전의 선사시대로 돌아가란 뜻은 아니었을것이다. 하지만 인간정신의 자연성의 회복은 어느정도는 물리적 회귀를 통해 이루어질수 있다. 인간은 보고 듣고 만지고 몸으로 느껴지는 것에의해 영향을 받고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십억짜리 아파트라도 인류가 혈거시절부터 해온 모닥불을 못피운다. 서울사는 사람들중에 집앞에 흐르는 물에서 물고기가 놀고 흐르는 물에 발을 씻을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것이다. 그런건 물론 도시밖으로 나가거나 산에 놀러가서야 잠깐씩 경험할 정도일것이다. 소쩍새소리와 저승새라불리우는 휘파람새와 여름에 반짝이는 반딧불들, 밤에 정겹게우는 맹꽁이들 개구리들, 창공을 날며 우는 매나 수리류의 울음소리를 듣는 경우도 거의 없을것이다. 별똥별을 본일이나 은하수 사이로 박쥐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는일도 거의 없을것이다. 도시문명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이 많은것이다. 그로인해 정서도 메마르고 각박해진면이 있는것같아서 이런 기본적인 물리적환경의 회귀를 통해 정서의 회복도 어느정도는 가능할것 같다.


집을 임시로 적당히 비싸지않은걸로 구해놓고 자주자주 집을 비우고 객지로,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개일본은 빼고

놀러다녀야 하는 것이다.

오늘따라 글이 더 정리가안되는것같다. 자연이란게 원래 대략 밑도끝도없이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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