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실망시킨 물음들
이거야.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광고에 대한 내 마음은 뜨거워졌다. 신문사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번번이 미끄러지는 나 자신을 객관화하기도 했고, 크리에이티브가 뭔진 몰라도, 이게 더 내 옷 같았다.
그런데 말이다. 몇 가지 함정이 있었다. 내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그 시절이, 광고계의 황금기였다는 점. 심지어 황금기의 마지막 페이지였다는 점. 단순 비교는 말이 안 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 광고계를 바라보던 나 자신이, IMF 직전을 의식 없이 바라보던 소시민 같다.
또 하나의 함정. 그래 봤자 회사는 회사고, 광고는 광고일 텐데, 무어 그리 다를까. 똑같이 힘들고, 똑같이 괴롭고, 똑같이 버거운 그곳을, 나는 직시하지 못했다. 아니, 직시할 수 없었다.
본 거라곤 몇몇 실무자와 임원들의 모습이 전부였으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좋은 얘기만 나열했다. 광고인의 24시간 중 가장 아름다운, 최소한 덜 추한, 10여 분만을 보여줬다. 뭐, 그게 꼭 나쁘다곤 생각지 않는다.
다만, 광고가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버거운지에 대해선 끝까지 빈칸으로 남았다는 게, 여전히 아쉬운 점으로 남아있다.
또 하나의 함정. 이건 좀 날 선 이야기인데, 내가 그토록 감탄했던 필기시험에 관한, 조금 다른 이야기가 들려온 거다.
그 회사 임원 분의 인터뷰로 들은 얘기였는데, '신입사원을 뽑을 때 무엇을 보고 평가하는가'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한 그분의 답변이 좀 의아했다.
기억해보자면, "아무나 풀 수 없는 문제를 낸다", "무엇을 봤는지, 무엇을 들었는지, 무엇을 느끼고, 무엇에 감동했는지를 본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그다음, 문제가 문제였다.
대학시절 사회과학 시험 때 자주 보던 터미놀로지 테스트였다. 단어나 용어가 주어지고, 아는 바를 써 내려가는. 그런데 말이다. 예시가 이랬다. '병산서원', '줄리 런던'... 인터뷰 중, 어느 지원자는 줄리 런던을, '런던에 사는 줄리'라고 썼다는 언급도 있었다.
생각해보자. 병산서원이 문항이라면 이건, 무엇을 봤냐가 아닌, 병산서원을 봤냐는 문제다. 줄리 런던이 질문이라면 이건, 무엇을 들었냐가 아닌, 줄리 런던을 들었냐는 물음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병산서원에 세 번 정도 가봤다. 줄리 런던은 친구의 추천으로 올해 처음 들었다. 몇 해 전이었다면, 둘 중 하나는 답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좋은 질문이라 생각지 않는다. 비록 병산서원을 몰라도, 줄리 런던을 몰라도, 내가 만나고, 느끼고, 감동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면, 줄리 런던이 아닌, 줄리 테이머. 병산서원이 아닌, 스톰킹 아트센터. 당신은 아는가. 모르는가.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
오늘 아침 나는, '사람'과 '생각'을 생각한다. 역시나 세상에, 완벽한 인간도, 생각도 없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여행을, 짧게 또 길게, 행복하게 또 불행하게, 아름답게 또 추하게, 멀쩡하게 또 처절하게, 허우적거리며 살아낼 뿐. 그 속에서 나만의 경험을 하고, 나만의 취향을 갖고, 나만의 생각을 키워낼 뿐.
이 산만한 페이지의 결론은 뭘까?
네 생각, 네 생각.
내 생각, 내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