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은 엄연히 근무시간의 일부다.
아직도 관리자와 식사를 해야 하는 회사라, 말이 점심이지 마음은 늘 업무의 연장선에 머문다.
그런데 아주 가끔, 기적처럼 시간이 남는다.
운이 좋으면 20분, 많으면 30분.
어제는 그 드문 30분이 내게 주어졌다.
선배와 함께 회사 근처 카페로 향했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모금이 입안에서 퍼지는 순간,
몸이 스르르 풀렸다.
“아… 이게 행복이지.”
잠깐의 찰나가 너무 좋아서
시간이 멈춰주면 좋겠다는 아주 사치스러운 바람까지 들었다.
카푸치노 향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 대화는 어느 순간 ‘죽음’과 ‘치열함’이라는 무거운 화두로 흘러갔다.
선배는 얼마 전 여행 중 경험한 난기류 이야기를 꺼냈다.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뭐, 이 정도면 잘 살았다.”
하지만 함께 있던 친구는 공포에 질려 “죽으면 어떡해..”라며 불안해했단다.
똑같은 상황에서 왜 이렇게 다른 마음이 드는 걸까.
우리는 그 이유를 한참 이야기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사람은 모두 치열하게 살지만 치열하게 산다는 게 꼭 같은 의미의 치열함은 아니다. 바로 ‘무엇을 위해 치열한가’가 각자의 삶을 다르게 만든다.
그냥 바빠서 치열한 삶이 아니라,
정말 원하는 일에 몰입한 치열함.
그런 삶을 살 때에만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다.”는 마음이 찾아온다.
선배는 부모님 두 분을 모두 떠나보내며 인생의 허망함을 뼛속 깊이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매 순간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은 그저 막연히 두렵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그래. 지금 이 정도면 후회는 없겠다.”
아마도 지금의 내가 정말 원하는 일에 몸을 던지고 있어서일 것이다. 대단한 업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그게 내 하루를 단단히 채우고 있다.
그 경험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후회가 없다.
사람을 후회하게 만드는 건
무엇을 못 이뤘는지가 아니라
정작 원하는 삶을 시도하지 못한 시간들이다.
오늘 당신의 하루도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선택한 하루이기를.
그리고 그 하루가 쌓여
당신에게 후회 없는 시간을 만들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