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빛빛빛 Mar 16. 2018

거기 그리고 언젠가

들어가며

모든 탐험의 목적은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
그리고 처음으로 그곳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 T.S.엘리엇, 「네 개의 4중주」 중에서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또 다른 세계 혹은 또 다른 시간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과거의 이야기를 먼저 해 보자. 어쩌면 SF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는 석기시대의 이야기다. 이 시기에도 섹스란 것이 존재했을까? 


당연히 존재했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의 우리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과학자들은 유인원과 비슷하게 생긴, 인간의 가장 가까운 조상의 경우만 해도 지금의 우리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성생활을 영위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한 당시의 섹스 방식에 따라 그들의 신체는 지금과 특징적인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으며 그러한 섹스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점차 지금 우리의 신체 모습으로 오랜 세월 간 진화를 거쳐 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1]


1만 년 전 인류의 성적 행동이 지금의 것과 이렇게 상이하다면, 무려 십만 년 후의 인류는 어떠한 성적 관계를 맺고 있을까. 그 때면 중력 우주 공간에서 유영하며 사랑을 나누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성애자의 섹스는 금지될지도 모르고 사이보그 애인을 만드는 것이 대유행할 수도 있다. 다른 행성과의 종족과 홀로그램을 통해 사랑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더 이상 생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성관계로 인하여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SF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라고? 

사실 그렇다(현재까지는). 그러하기에 미래의 섹슈얼리티를 들여다보기 위한 방법으로 SF를 빌어 글을 써 본다.


물론 SF(Science Fiction)란 단어 그대로 ‘픽션’이다. SF를 미래 학자가 쓴 보고서처럼 타당성을 따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무엇보다 그렇게 읽으면 재미가 없다). 하지만 르 귄이 “허구화된 미래란 그 자체가 곧 하나의 은유” 라고 자신의 작품 서문에 밝혔듯, 미래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비전을 제시한 SF를 통해 우리는 이 시대가 정의한 경계를 극명하게 느끼고 우리의 세계와 아직 영토화 되지 않은 또 다른 세계를 상징화시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SF 작품을 통해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읽어나가는 것은 여기, 지금을 모색함과 동시에 거기, 언젠가의 가능성을 탐색하게 해줄 것이다. 


SF에서 섹슈얼리티, 즉 생물학적인 성의 문제나 젠더의 문제를 작품 전반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또한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성에 관한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세계를 바라보는 SF에서 반드시 정의해야 할 ‘인간의 실존’이란 문제는 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 

[1] 제러드 다이아몬드, 『섹스의 진화』, 임지원 역, 사이언스북스

keywor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