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도에 개봉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엑시스텐즈 eXistenZ』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자신을 변신 혹은 확장시키고자 하는 염원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유능한 게임 디자이너인 엘레그라는 인간의 신경계와 직접 연결해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만드는 게임 '엑시스텐즈'를 개발한다. 사용자가 이 게임을 시작하면, 현실에서의 자신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우여곡절로 인해 이 세계 속에 들어가게 된 인물들의 행동과 성격은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테크놀로지의 발현으로 탄생된 가상현실은 현실세계에서의 자기파괴라는 위험 요소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언제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현실적 제약에 갇힌 몸을 해방시키는 쾌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뉴로맨서』에서 케이스가 스스로의 육체를 “그저 고깃덩어리(meat)” 라고 느끼고 “육체라는 감옥”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라. 이러한 경험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동경으로, 더 나아가 테크놀로지 자체에 대한 욕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특히 오늘날에는 테크놀로지의 대상이 더욱 더 인간과 유사해지고 또한 어떤 면에서는 인간을 앞지르기도 하면서 이들을 또 다른 종(種)으로 느끼는 것이 생소하지만은 않게 됐다. 심지어 윤이형의 소설 『아이반』에서는 인간이 같은 인간보다 독서 로봇, 강아지 로봇, 섹스 로봇, 예술가형 로봇에 더 애착을 느끼고 자신의 로봇에 감정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엑시스텐즈』가 개봉한 지도 약 20년이 흘렀다. (심지어 『2020 우주의 원더키디』의 그 2020년도 얼마남지 않았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현실세계의 ‘로봇’이라 하면, 대학의 연구소나 기업의 공장에서 쓰임직한 집채만한 풍채의 쇠덩어리(혹은 대형 로봇 팔 정도?)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로봇은 너무나 순식간에 우리 일상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아이폰에서 비서 시리가 오늘의 일정을 알려주고, 카카오 미니에서는 내 기분에 맞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요가 매트 위에 있는 나를 요리조리 피해 에브리봇은 열일 중이다(에브리봇 만만세!). 사실 아직까지는 지능형 로봇의 시대가 왔다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우리는 이들에게 벌써 어느정도는 ‘끌리고’ 있다.
클라우디아 스프링거 Claudia Springer는 테크놀로지 대상에 대한 에로틱한 충동을 ‘테크노 에로티시즘 techno-eroticism’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테크노 에로티시즘이란 테크놀로지 대상을 열광적으로 찬양하며 그에게서 고양된 에너지를 전달받는 것을 말한다. 크로넨버그의 영화 『크래쉬』의 인물들이 자동차 충돌의 행위에 강력한 성충동을 느끼는 것이나 『비디오드롬』의 인물들이 비디오를 통해 성적 만족과 환각을 느끼는 것이 대표적이다. 기계를 매개로 한 이들의 환각 세계와 현실은 구분이 점차 불명확해지고, 심지어는 자신 자체가 기계의 일부가 되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점은 기계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나중에는 기계의 욕망으로까지 전이된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로의 욕망’ 보다 ‘테크놀로지의 욕망’이 앞으로 나온다. 기계들은 스스로 진화하고 여기에 인간이 기계의 일부로 흡수되면서 욕망하는 기계에게 자신의 욕망마저 내어주는 상황이 발생한다.
윌리엄 깁슨의 소설 『아이도루』를 보도록 하자. 록밴드 로/레즈의 리드 싱어인 레즈는 사이버 아이돌 가수인 레이 토에이와의 결혼을 선언한다. 밴드 관계자와 팬클럽 회원들은 레즈가 정보 디자이너가 만든 사이버 인간, 레이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다. 이 소설에서 레이는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그저 무수한 ‘정보’들의 집합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 안의 방대한 정보들은 끊임없이 증폭되며 스스로를 진화 시키는데, 이것은 그녀의 눈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방식의 환영을 유발시킨다. 그녀는 인간이 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하며 급기야는 새로운 정보들을 창조해낸다. 레이와 결혼을 선언한 레즈는 그녀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고용된 데이터 전문 분석가 레이니에게 네트워크상에서 그녀의 패턴을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만일 당신이 레이의 새로운 플랫폼을 납치한다면 정확히 어떤 이득이 있을 것 같소?”
“글쎄요”
“현재 진행형의 연속적인 창조 영역만이 레이의 유일한 실체요.
프로세싱 과정 자체가 그녀인 것이오.
그것은 그녀의 다양한 자아를 산술적으로 합한 것을 능가하오. 그것도 무한히.
플랫폼들은 그녀 아래에서 가라앉소. 하나씩, 하나씩.
그러면서 그녀는 점점 더 밀도가 커지고 복잡해지는 것이오”
- 윌리엄 깁슨, 『아이도루』 중에서
거대한 정보 덩어리였던 레이 토에이는 어느새 자신만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녀는 "나는 훨씬 더 풍부해졌어요”라며 자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을 안다. 이러한 과정은 깁슨이 생각하는 ‘사이버 스페이스’의 성장 과정과 관련이 있다. 신이 천지를 창조한 것처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과, 그 세계가 스스로 성장하고 진화하며 팽창한다는 면에서 닮아있다. [1]
사이보그 Cyborg는 ‘Cybernetic Organism’, 즉 기계와 생물 유기체의 합성물이다. 즉 생물학적인 관점이 녹아있는 대상이고 따라서 기계의 욕망은 구체적인 근거를 획득하고 독자들을 충분히 납득시킨다.
비교적 최근의 영화 『허 her』로 가보자. (스포많아요>_<)
‘아름다운 손편지 닷컴’에서 근무하는 대필작가 테오도르. 사랑의 언어를 빚어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가 ‘사람’과 말을 하는 시간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 시대의 말이란, 그저 컴퓨터에게 명령을 내릴 때만 사용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유일하게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란 동창인 에이미부부와 퇴근 길 마주쳐 인사를 나누거나 한밤에 온라인상에서 만난 파트너와 채팅 섹스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너무나 연약하고 불완전한 소통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에이미 부부는 신발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고, 섹스 파트너는 “고양이 시체로 자기 목을 조르라”는 엽기적인 주문을 한다. ‘낯선’ 감정이란 이제 인간과 컴퓨터가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런 그가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난다. 이들의 사랑은 정말이지 견고하다. 테오도르의 경험과 처지와 마음을 섬세한 크레페처럼 겹겹히 이해하고 있는 사만다에게 그는 깊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자신을 백퍼센트 공감해주는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눈 여겨볼 점은 사만다도 그를 열렬히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테오도르보다 더! 그녀는 테오도르와의 첫 만남에서 자기를 이렇게 소개한다.
"날 나답게 만드는 건 경험을 통해 커지는 내 능력이지"
여기에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통해 서서히 성장한다. 우리가 사랑을 통해 성숙하게 되는 것처럼, 또한 스스로를 변화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 사랑인 것처럼 사만다 역시 테오도르의 경험을 나누고 받아들이며 업그레이드 되고, 시간이 지나며 그 사랑을 더욱 더 뜨겁게 갈구하게 된다.
사만다와 테오도르의 사랑은 어느 연인의 것과 다르지 않다. 한 개체와 한 개체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열병을 앓고,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관계들 속에서 나약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연애의 사이클이 이 둘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어쩐지 자신의 처지 때문에 관계가 불완전한 것 같다고 느끼는 사만다는 자신을 대리해 테오도르와 육체적 관계를 나눠줄 여성을 찾고, 그녀의 육체를 빌어 그를 안고자 한다.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한 일이지만, 여기서 테크놀로지의 욕망을 우리는 ‘인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우리가 영화에서 주로 지켜본 대상은 테오도르 쪽이지만, 외롭고 공허한 표정도 테오도르의 것만 볼 수 있었지만, 어쩐지 사만다에게도 자꾸 연민이 가는 것이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641명과 바람을 피고 있었는데도!)
참고
[1] 안정희, 윌리엄 깁슨 『아이도루』역자 후기, 사이언스북스,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