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넘어섬 22화

숨바꼭질

취미를 찾아 숨바꼭질, 현실을 찾아 숨바꼭질.

by wordsfromulsan

요즘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다. 내가 어렸을 적 여행을 가면 부모님께서 나를 찍어주던 카메라를 찾았고,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그 녀석을 다시 살렸다. 큰 의미를 갖고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평소 잘 들어가지도 않던 당근마켓을 접속했고 누군가 필름 카메라를 팔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서 "우리 집에도 하나 있지 않았나? 버렸나?" 싶은 마음에 집 구석구석 뒤졌고 그렇게 서랍 깊숙이 박혀있던 이 녀석을 찾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이 녀석은 호기심을 자극했고 무작정 찍어보자 싶었다. 다만 너무 오래 잠들어 있던 녀석이라 다시 숨을 쉴 수 있을지 걱정되긴 했다.

그래서 그다음엔 구글을 뒤졌다. 이 녀석의 건강 검진을 해주고 아픈 곳이 있다면 치료해 주실 의사 선생님이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내 동네엔 없었고 차로 약 한 시간 반 거리에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숨어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남포동까지 밟았고 그렇게 도착해 만난 의사 선생님은 꽤나 유쾌하시고 친절하신 분이었다. 내가 데려간 환자의 고향과 이름은 캐논의 오토보이3이었고 선생님께선 오래간만에 봐서 반갑다는 듯 인사했다. 다행히 이 녀석은 버튼 하나만 고치면 고장이 나지 않는 녀석이라며 수술 한 번이면 어떤 문제도 없이 쓸 수 있다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그렇게 나는 동의서를 작성했고 녀석은 수술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얼마 걸리지 않아 버튼 하나와 약을 갈아주셨고 그 과정 동안 굉장히 신나신 것만 같은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어쩌면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을 것만 같은 녀석은 다시 살아났다.

그러고 나서 이제 새로 찾아야 할 것은 필름이었다. 이건 사실 찾는다기 보단 고르는 게 문제였다. 종류가 너무 많았고 생각보다 비쌌다. 공급은 한정되어 있는데 마니아층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가격대가 상승한 걸로 보였다. 거기서 처음 든 생각은 "아 자주 찍진 못하겠다."긴 했다. 여하튼 가격대를 생각하니 종류에 대한 선택지는 확 줄었다. 일단 쿠팡에서 제일 싼 걸로 골랐다. 어차피 처음 찍기 시작하면 잘 찍지도 못할 텐데 소모품으로 활용될 것들이 비싸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렇게 군인이 전쟁에 총알을 챙겨가듯 나도 총알을 받아 장전했다.

사진을 찍는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사실 이전에는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다녔다 보니 사진 자체가 두 눈에 확 들어왔다. 내 눈에 어떻게 찍히는지 실시간으로 보였고 찍고 나서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는 달랐다. 코딱지만 한 뷰파인더는 한쪽 눈으로 겨우 바라볼 수 있기에 찍기 전부터 어디를 어떻게 찍을 지에 대한 고민을 거쳐야 한다. 또한 한 장이라도 찍은 뒤엔 절대 카메라를 열어선 안된다. 뷰파인더를 통해 들어온 빛이 필름에 닿아 사진으로 남게 되는데 문제는 이 필름이라는 녀석은 너무 민감해서 뚜껑을 한 번이라도 열었다간 사진이 전부 날아가 버린다. 어떻게 찍었는지 알고 싶다면 필름을 모두 소비한 뒤 인화를 해야 알 수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은 답답하다.

또한 스마트폰 사진은 언제 어디서 찍든 있는 그대로 찍힌다. 야외에서 찍던, 방구석에서 찍던, 밤에 찍던 상관이 없고 시공간에 따라 찍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은 전혀 못한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는 다르다. 해가 쨍쨍한 낮에 야외에서 찍어야 한다. 당연히 형광등보다 태양빛이 밝긴 하겠지만 그렇게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진 못했는데 카메라는 알았다.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이 녀석은 햇빛이 아니면 무조건 플래시를 터뜨리는데 그 결과물의 대부분이 생각처럼 나와주지 않는다. 물론 요샌 감성으로 일부러 플래시를 터뜨려 찍기도 한다지만 이게 카메라가 좋아하는 환경은 아니다. 심지어 해가 중천일 때 대숲의 그늘에서 찍었을 때도 플래시를 터뜨리더라. 참 예민한 녀석이다.

이렇게 불편한 필름 카메라에서 왜 흥미를 느끼는 걸까.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불편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뭐든 빠르고 직접적인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는 시대에서 오히려 역행하는 아날로그에서 오는 재미가 아닐까. 전문적인 사진을 찍는 게 아닌 이상 나만의 현실을 카메라에 구속시켜 소소하게 즐기는 놀이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오는 기다림이 오히려 설렘으로 다가오게 된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느림의 설렘은 오래간만에 찾은 여유처럼 다가왔다.

두 번째는 관종이기 때문이다. 내 카메라를 살려준 의사 선생님께 여쭤본 말이 있다.

"앞으로 한 10년은 더 하실 거죠?"

"글쎄요. 10년 뒤에도 이런 카메라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긴. 요새는 다 스마트폰으로 찍으니까요."

"필름 카메라를 찍는 사람들은 관종이잖아요. 이 관종들이 오래 살아남아야 저도 계속하겠죠? 허허"

그렇게 생각해 보니 필름 카메라를 찍는 사람은 정말 관종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말 단순히 사진만을 찍고 싶다면 모두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될 것이다. 심지어 해상도도 그것이 훨씬 높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굳이 과거의 것으로 찍는다는 것은 "난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사람이야."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난 이 지점 또한 재밌게 다가왔다. 남들과 다르고 뻔하지 않은 미학을 추구한다는 자아도취가 괜히 나를 문화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 즐겁다.

취미부자라는 단어가 있다. 이들은 홀로 있는 시간에 할 것이 많아 언제든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무력해진 나 같은 시기에도 너무 깊은 우울에 빠져있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나도 지금은 재취업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그 사이에 숨 쉴 틈이 있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새로운 흥미를 불어넣어 줬다. 참 아이러니하다. 엄마는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카메라를 샀을 텐데. 엄마가 재미와 기록으로 쓰기 위해 샀던 카메라가 아들의 우울을 덜어주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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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