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넘어섬 21화

자의적 해부 전시회

솔직함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by wordsfromulsan

힙합을 떠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얼마 전 꽤나 심각한 문제작의 출생을 목격했을 것이다. 몇 달째 피로도가 한계에 달할 정도로 극한까지 진행된 프로모션. 그리고 발매된 저스디스(JUSTHIS)의 [LIT(Lost In Translation)]이다.

발매 이후 반응은 뜨거웠다. 아니 사실 뜨겁다기 보단 피가 낭자하는 혼돈에 가까웠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앨범에는 마약, 성, 낙태, 사회적 이중성 등 적어도 한국의 대중 예술가로서는 암묵적으로 언급하면 안 되는 주제들이 가득하게 담겨있었다. 발매 전 프로모션 때부터 이 앨범은 한국 문화계의 핵폭탄이 될 거라고 했고 나도 걱정반 기대반이었지만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수위를 보여줬다. 심지어 마지막 트랙에는 스티븐 유를 등장시켰다. 안 그래도 군 면제가 꼬리표로 달려있는 인물이 그를 데려오다니. 미친 건가 싶었다.

발매 이후 수많은 해석이 쏟아졌다. 16살의 이성을 만나 임신을 시킨 후 낙태 시켰다는 가사로 시작하는 "Don't Cross"와 같은 트랙은 누굴 저격한 것인 가부터 해서 저스디스라는 인물은 얼마나 많은 약을 한 것인가, 정말 스티븐 유의 죄는 본인에게 상관없다는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다. 이 반응을 먼저 보고 떠오른 내 견해는 한 발짝만 떨어져서 보면 너무 추상적이고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앨범이 얕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저격했다기엔 직접적인 힌트가 없기에 알 수가 없다. 마약과 관련된 이야기 또한 그가 외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인 적 없기에 상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 스티븐 유의 경우는... 사실 아직도 그 의도가 이해되진 않는다. 그러다 어떤 이들이 이 앨범의 시야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사실 이 앨범의 모든 가사와 비판이 향하는 시점은 제삼자가 아닌 저스디스 본인이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앨범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저스디스라는 사람의 커리어를 옛날부터 봐왔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힙합을 굉장히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음악뿐만 아니라 태도까지 중요시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 태도를 지키지 못한 이들이라면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 뜯기도 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도 결국 음악보다 돈을 선택하는 길을 걸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근 6~7년의 시간 동안 그는 쇼미 더머니부터 보이즈플래닛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가 하면, 발라드를 부르기도 했고, 유튜브 콘텐츠에 나가며 사람 좋은 척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그가 물어뜯었던 이들에겐 보기 좋은 약점으로 드러났고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앨범에서 스스로를 아주 저열하고 하찮으며 쓰레기 같은 인물로 표현하며 고해성사를 하는 것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앨범을 다시 보니 정말 무서웠다. 소름 돋게 불쾌하고 끔찍했다. 어떻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단어와 표현들로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을까? 힙합을 사랑했던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미성년자 낙태에 비유하며 그걸 자행한 사람이라는 본인이라는 사실을 입에 담는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걸까?

나는 내가 이곳에 쓰는 글을 그 어떤 지인에게도 보여준 적 없다. 아직 글이 일정 수준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나에 대해 쓰는 글인 만큼 솔직하지 못할까 봐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난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공간에 내 솔직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를 마난 누군가 이걸 본다고 생각하면 나에 대해 실망하거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할까 겁난다. 그래서 여기는 온전히 나만의 공간으로서 내 감정을 마음껏 싸지르기 위해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만큼 내게 솔직함이라는 건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내 글은 어떻게든 숨겼다. 하지만 저스디스는 달랐다. 그는 이 앨범을 발매하기 직전까지 본인의 명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이로 인해 그의 앨범은 그의 능력 안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기다렸고 듣고 싶어 하는 달콤한 이야기만을 담을 수 있었을 텐데 되려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다 긁어모은 치부를 가득히 담았다. 적어도 나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용기에 기반한 솔직함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내 치부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고? 난 겨우 우울증 얘기도 한참을 고민한 다음에 겨우 입에 담는데.

내 이전 글에 오직 육체적 관계만을 위해서 만난 이성들이 있다는 얘기를 쓴 적도 있는데 이것 또한 내 일말의 사회적 체면에 흠이 갈까 싶어 현실에선 꺼내지도 못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욕했던 인물이 사실 나와 다를 바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든 아주 작은 차이점이라도 찾아 그걸 최대한 크게 부풀려 그와 나는 다르다고 얘기하는 게 훨씬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저스디스는 이 모든 걸 거리낌 없이 뱉었다. 이 수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내가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저스디스는 이 앨범을 기점으로 다시 미디어를 배척하던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갈 것을 선언했다. 사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세상 어떤 PD가 이런 음악을 하는 이를 방송에 기용할 수 있을까. 이 앨범에 대한 글을 이렇게 썼다고 해서 솔직함을 기반으로 용기를 담았으니 무결한 명반이라는 뜻은 아니다. 요즘 말로 파묘할수록 이 앨범은 논란이 될 것이다. 다만 내게는 의미가 큰 앨범이다. 솔직함이라는 것의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줬기 때문이다. 이 앨범 덕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표현이 이 앨범처럼 거칠고 불쾌할 필요까진 없겠지만 나도 언젠가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아니 사실 솔직할수록 타인에겐 불편한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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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