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
백수로 돌아왔다. 난 다시 백수다. 월급으로 장난치는 회사에 노동력과 열정을 헌납할 만큼 내 그릇은 크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 임금 체불이라는 것은 사직하는 데 있어 굉장히 합당한 이유로 작용했다. 그래서 떳떳했다. 나는 도망친 게 아니라 내가 회사를 버린 거라며 내가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내 마음속 어딘가는 여전히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한 기분이 드는 걸까.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혼자 방구석에 누워있다. 환자도 아닌 게 누워서 눈만 끔뻑끔뻑하거나 현실이 아닌 다른 곳의 삶을 탐미하며 꿈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다 심심하면 쇼츠를 봤고 그러다 심심하면 영화를 봤고 그러다 심심하면 만화를 봤다. 그렇게 침대 위의 또 다른 이불이 되어 현실로부터 완벽하게 은신했다.
태양도 제시간에 출근해서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이행한 뒤 달에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퇴근했다. 그동안 나는 무얼 했는가. 일 할 때는 시간이 없어서 내 할 일을 못해냈다는 핑계를 댔는데 이젠 시간이 넘치는데도 그때 못했던 일들을 전혀 해내지 않았다. 운동을 하지도, 밀렸던 책을 읽지도, 글을 많이 쓰지도 않았다. 시간만 있다면 다 할 거라며. 거짓말이었구나. 이렇게 또 나는 스스로를 혐오할 만한 명분을 던졌다. 내가 내게 내린 낚시 바늘이며 내가 나를 낚기 위해 끼워놓은 미끼를 보기 좋게 물었다.
관련 기사를 본 적도 있고 나를 포함한 현실에서도 많이 봤던 현상이 있다. 대학은 졸업했는데 취업은 안되고 그렇게 집에 남은 청년들의 우울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이다. 흐릿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노력하기엔 너무 지쳤고, 이제까지 해왔던 것들이 무의미했던 것처럼 느껴지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학하게 되는 로직인 것이다. 그래서 밖에 나가 사람 구경이라도 하며 사람들이 얼마나 바쁘게 지내는 질 보며 에너지를 얻어 더 바쁘게 움직이라고 하던데. 어쩌면 지금의 나도 이 굴레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내가 이렇게 있는 핑계는 따로 있다. 난 이제 뭘 하고 싶은지 정말로 모르겠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걸 이뤄내고 싶은 지 고민하다 보면 와닿는 게 아무것도 없다.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냈던 학원가는 턱없이 적은 월급과 남성의 강사를 향한 암묵적인 경계심을 핑계로 도망쳐 나왔다. 그래서 돈이라도 많이 벌자는 생각에 인테리어 회사와 제조업 회사를 다녔다. 그런데 인테리어 회사의 대표는 접대와 친목, 스트레스를 핑계로 술과 유흥을 극단적으로 강요했다. 그럼 나는 밤새 술을 마신 채 약 두 시간 정도 자고 다시 차를 끌고 다니며 일을 해야 했다. 몸과 정신이 망가지고 있는 걸 실시간으로 느끼게 되어 도망쳤다. 그러다 새로 입사한 제조업 회사는 돈을 가지고 장난치는 걸 너무 뻔뻔하게 보여줬다. 거래처에 당연히 줘야 될 돈임에도 불구하고 싸가지가 없다는 이유로 결제를 미루고 있다니. 그리고 그 짓거리를 직원들에게도 하려 했다니. 더 남아 있다간 나에게도 의리와 정을 핑계로 돈을 제대로 주지 않을 거라는 게 너무 빤히 보여서 퇴사했다.
또 새로운 걸 찾아야 하나? 여기도 저기도 아니었으니 다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을까? 어디가 될지 모를 새로운 업계는 나를 받아줄까? 여기저기 간만 보던 나를 좋게 봐줄까? 그렇다고 같은 업계의 다른 회사라고 괜찮을까? 새로운 길이건 원래 갔던 길이건 내가 정말 하고 싶은가? 나도 이젠 한 회사에서 뿌리내려 오래 있고 싶은데. 그렇게 불태울 열정이 정말로 샘솟을까?
이제 서른의 초입이고 이 나이가 누군가는 한창이라며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군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아이 같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꿈을 정한 뒤 스스로를 불태워 새로운 자신을 탄생시키던데. 꿈은 어떻게 정하는 걸까. 어떻게 그렇게 확실한 목표를 찾아낸 걸까. 난 아직도 나를 모르겠는데 어떻게 그렇게 스스로를 잘 알게 된 걸까.
적어도 내일부턴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위해 움직여야 할 텐데 아직 무겁다. 내 이력서를 좋게 봐줬으면 좋겠고 면접이라도 간다면 내 여유 넘치는 연기에 속아줬으면 좋겠다. 그러다 좋은 조건에 입사라도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런데 그전에. 나를 좀 알고 싶다. 나 자신과의 대화가 어느 때보다 많이 필요한 시기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