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같은 내 인생!
면접 제안이 왔다. 인사팀과 채용 관련 업무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했다. 별 의심은 없었다. 물론 정확한 업무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면접 중에 충분한 설명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는 이전까지 어떤 일을 하건 사람을 만나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관찰하는 일을 해야 했고, 덕분에 사람을 가리는 데 있어서는 자신 있었기에 얘기만 잘 통하면 여기서 일 할 의사도 충분히 있었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늦지 않게 잘 갔다.
면접 일정은 저녁 시간대였고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다소 당황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직원들이 오손도손 앉아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너무 바쁜 나머지 저녁을 먹지 못했다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럴 수 있지. 또한 나를 바로 면접실로 안내했기에 내 일정은 그대로 진행되는 것 같기도 했기에 이해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를 면접 볼 대표도 바로 들어왔다. 그런데 다른 직원이 들어오더니 대표님도 저녁을 드시라며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대표는 컵라면을 먹으러 나갔고 나는 면접실에 홀로 남았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찝찝하긴 했지만 이해하려 했다. 얼마나 바빴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첫 대면을 하는 면접자를 두고 밥을 먹으러 갈 정도로.
그 사이 40대 후반 정도로 되어 보이는 여직원이 들어왔다. 그리고 내게 해당 회사는 어떤 회사인지 열심히 설명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알아들을 수 없었을 뿐. 주어와 목적어가 숨바꼭질하며 말과 말 사이에 공백이 굉장히 긴 화법. 마치 내가 학원에서 가르쳤던 아이들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설명하려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저희... 회사는요... 어.... 그러니까.... 돈을... 굉장히 많이 벌고요... 열심히만 하면... 진짜.. 어... 아 그리고.. 헬스케어..라고 있는데... 아 혹시 상조... 들어보셨죠...?"
따라 하기도 힘들 정도로 느리고, 내용은 없고, 방향도 여기저기 헤매고 있는 들으며 리액션하기도 힘든 말들을 장황히 늘어놓았다. 사람의 촉이라는 게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때부터 촉이 곤두섰다. 빨리 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적당히 리액션하고 나가려는 찰나를 잡기 위해 맹수처럼 틈을 노려보고 있을 무렵 이 노력이 무력하게도 대표가 들어왔다. 처음엔 나보고 이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봤다. 학원 업계에 있었던 시간이 가장 길다고 했더니 잘됐다며 좋아했다. 그러더니 사람 만나고 영업하는 데 익숙할 것 같다고 하더라. 그 뒤에는 본인들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본인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얘기를 해줬다. 해주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짜깁기된 기사들을 보여주며 회사의 알 수 없는 명성도 늘어놓았다. 한 30분을 자기네들 자랑으로 가득 채웠다. 어느 순간부턴 대화에 있어서 상대방의 리액션은 관심도 없다는 듯 자신의 매뉴얼을 읊었다. 그러고선 본격적인 속내를 드러냈다. 오늘 함께하기로 하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를 해주면 꽤나 큰돈을 준단다. 그러면서 몇 번을 강조했다. 우리는 "합법"이고, "국가에 등록"되어 있으며, "다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해 보고 얘기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도망쳐 나왔다.
집에 오는 내내 화가 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내 이력서가 이렇게까지 만만하게 보였던 걸까. 살면서 이 정도로 시간이 아까웠던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7광구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봤을 때도 이렇게 시간이 아깝진 않았다. 나는 뭘 기대하고 이 면접에 신나서 달려왔는 지도 이해가 안 됐다. 애초에 뭘 제대로 설명해 준 적도 없는 회사였는데. 뭘 믿고 면접을 봤는가.
그러다 보니 결국 화살은 그쪽을 향했다. 아직도 다단계가 남아있구나. 누군가는 여전히 저런 술수에 속아 지인을 팔아넘기고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속이고 있겠구나. 돈이나 제대로 받으면서 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걸까. 왜 사람은 사람을 속이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왜 멍청한 인간들은 여전히 속아 넘어가는 걸까. 왜 병신같이 속아 넘어가서 나까지 이런 일에 엮이게 만드는 걸까. 사실 속은 사람보단 속인 사람이 더 나쁜 사람들이긴 한데 나도 결국 속은 사람들을 먼저 욕하는구나. 내가 그 사람들보단 낫다고 자위하는 걸까.
위와 같은 생각들이 도저히 정리가 안 됐다. 최근 들어 그저 철 지난 옛 사건이라고 여겼던 일들이 내게 직접적으로 벌어지는 게 굉장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임금체불도 모자라 다단계까지 여전히 숨이 붙어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안 그래도 노동청에 출석해 진술하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정기간을 약 2주 정도 줘야 하고 그 안에도 지급이 되지 않으면 민사로 넘어가야 한다고 하더라. 잘못한 이들의 사정을 이렇게 까지 봐주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을 대한민국의 사법체계를 욕해도 되는 걸까.
사실 최근에 참 화나는 일들이 많았는데 어디 털어놓기도 민망하여 여기다 토해냈다. 보기 좋은 꼴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나도 사람인데. 여기까지 읽은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도 대나무 숲이나 감정 쓰레기통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번 글은 어쩌면 내 초심과 닮아있을지 모르겠다. 감정의 배설. 이번 글은 정말 배설에 가깝다. 이왕 싸지른 김에 하나만 더 떠들고 마치겠다. 여기저기서 많이 쓰인 유명한 구절이 있다. 한 번 속은 건 속인 놈이 잘못한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부턴 당신 탓도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세 번째 벌어질 때부턴 당신의 모든 걸 쏟아부어 상대의 그 어떤 것도 남지 않게 하라. 오늘따라 이 문구가 참 와닿는다.
Fool me one time, shame on you
Fool me twice, can't put the blame on you
Fool me three times, fuck the peace sign
Load the chopper, let it rain on you
J.Cole - No Role Model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