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넘어섬 24화

평행선

부담스러운 관심과 사라지지 않는 걱정

by wordsfromulsan

어제는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아버님께서 합천을 가자고 하셨다. 이유는 잘 몰랐다. 그저 가보면 안다기에, 평소에도 많이 베풀어주셨던 분이기에, 그저 믿고 두 시간을 운전했다. 갔더니 오래된 시골집 한 채와 포클레인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돌아가신 친구의 외할머니 집이 오랫동안 비어있었는데 이걸 수리해 별장으로 쓴다는 것이었고 나는 그 과정에서 일손을 돕기 위해 착출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삽질과 폐기물을 정리하며 새로워질 집에 보탬이 되는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 난 친구의 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집으로 향했다. 두 시간의 운행동안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고 그중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에 대한 대화가 인상 깊었다.

나는 현재 엄마와 둘이 한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내게 참 궁금한 게 많다. 어디를 가는지, 밥은 먹었는지, 몸은 괜찮은지 등등 참 많이도 묻는다. 물론 이 모든 건 걱정과 관심이라는 데서 비롯한 질문이라는 걸 알고는 있다. 하지만 내게는 부담이 된다. 행동 하나하나 발걸음 하나하나에 명분이 있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가끔 밥이 먹기 싫어도, 가끔 그저 잠만 자고 싶어도 이유가 없으면 안 될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명분과 구실을 만들어야 하고, 엄마는 내가 내민 그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취조를 해댄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 그 자체인 대치 상황이 집이 되었다.

친구의 어머님은 그런 기분이 어떤 건지 어느 정도 이해하시는 듯했다. 본인은 스스로의 기준에서도 과할 정도로 자녀에게 연락을 자주 하고 귀찮을 정도로 많이 묻는다고 하셨다. 막상 전화하면 잘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정도의 일상적이고 뻔한 것들만 묻는데도 자주 전화를 하게 된다고 하시더라. 사실 이 집안도 나와 비슷하다. 첫째인 딸은 나와 같이 서른이 넘었고, 둘째인 아들은 벌써 결혼도 해 내년 즈음엔 그의 아내가 출산도 할 예정이다. 이렇게 장성한 자녀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궁금한 게 많고 걱정이 되나 보다.

나와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본가가 아닌 각자 자취를 하며 떠나서 산다는 것이다. 사실 집에서 멀어지면 그나마 관심이 덜하다고 한다. 전화로만 소통을 해야 하니 혹여 바쁜데 전화로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그 바쁜 일로 쉬고 있는데 괜히 전화로 쉬지도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상대적으로 연락하고 질문하는 횟수가 감소한다. 하지만 집에 함께 있으면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라도 동선과 일정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게 된다. 그러다 보니 밥은 제 때 먹었는지 회사에서 쉬는 시간일 텐데 오늘 일은 할 만 한지, 이따 집에는 제 때 오는지 등의 궁금증들이 폭발하게 된다. 그렇게 증가하는 전화 횟수가 일상의 범위까지 침범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의 자녀들인 만큼 술에 관해선 어떠한가. 친구들과 만나게 되면 술을 한 잔 하게 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늦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친구의 어머님도 사회 초년생 시절엔 직장 동료들과 술 먹느라 늦은 적도 많고 그러다 보면 담을 넘어 집에 들어갔던 적도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술 먹고 늦게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같은 시기를 지났기에 그런 것일 뿐 부모로서의 마음은 다르다고 한다. 혹여라도 시간이 늦었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술 먹었으면 제정신도 아닌데 어디 가서 사고 치는 건 아닌가. 어디라도 다치면 어떡하나. 등등의 걱정들이 너무 많아지는 마음에 일찍 들어오라거나 몇 시 까지는 들어오라는 제한을 걸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솔직히 여기가 미국도 아닌데 술 먹고 늦게 들어간다 한들 총을 맞거나 갱단의 습격을 당할 일은 굉장히 드물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야간에 안타까운 사건들이 벌어지긴 하지만 굉장히 드물고 아직 나는 이렇다 할 법한 일들을 겪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부모 마음은 장성한 아들들이 물가에 내놓은 애기들처럼 보이나 보다. 그래서 자꾸 술 먹고 있다는 데도 뭐 하냐고, 언제 들어오냐고, 취한 건 아니냐고 묻나 보다.

참 조금만 거리를 둬 줘도 좋을 텐데. 걱정을 조금만 내려놓아도 내가 훨씬 편해질 텐데.라고만 생각했지 반대의 경우는 잘 몰랐다. 어쩌면 몰랐던 게 아니라 알면서 애써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아니었지만 반대 측의 의견을 듣다 보니 어느 정도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어쩌면 평행선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있는 타이밍은 결코 맞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린 이 선 위에서 각자 걸어가는 동안 서로를 바라볼 순 있다. 앞을 보고 가며 내 미래를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내 옆의 선에서 먼저 걸어가고 있는 부모님에게 눈길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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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