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끊어야 되는데...
꽤 오래전 어느 스트리머가 환원이라는 공포 게임을 플레이한 걸 본 적 있다. 아마 중국인가 대만에서 개발된 게임으로 알고 있고 사이비 종교가 주된 게임인 만큼 해당 게임은 금세 제재를 받아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게임의 주체가 되는 아버지는 작가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게임 중간엔 담배와 재떨이가 잡히며 "작가와 담배는 떼놓을 수 없다."라는 자막이 나온다. 최근 갑자기 그 장면이 떠올랐다. 여느 때와 같이 담배를 피우던 중 이걸 끊어야 하나 싶다가도 수많은 예술 작품에 담배가 사용되는 걸 보고 이게 정말 나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몸에 나쁘다는 걸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다.
처음 피우게 된 계기는 호기심이었다. 사실 성인이 되었을 때 가장 큰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던 게 술과 담배였다. 사실 술이야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쩌다 한 번씩 마셔본 적 있었다. 덕분에 잘 마시진 못했을지언정 어떤 기대나 설렘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담배는 달랐다. 10대 시절엔 단 한 번도 입에 대본 적 없었던 터라 몸에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일탈 같은 경험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 입에 물어본 담배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너무 맵고, 목이 아프고 연기에 눈이 따가웠다. 그러다 보니 중독성이라는 것도 잘 몰랐다. 그저 이렇게 고통스러운 걸 내가 왜 피워야 하나 싶었다. 그렇게 넘어가는 줄 알았던 담배는 친구나 형들과 술을 마시며 하나씩 더 피워 나갔고 나를 힘들게 한 전 여자친구를 통해 확실하게 물게 되었다.
힘들다는 핑계로 찾았던 게 맞다. 군 전역 후 만났던 여자친구가 집착이 너무 심하다는 이유로, 연락이 안 되면 90 통이고 100 통이고 부재중을 남겨놓는 그녀가 나를 지치게 한다는 이유로, 그래서 이별을 통보했더니 집이고 성당이고 들이닥친다는 이유로 나는 담배를 물었다. 사실 연관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다만 힘들다는 이유로 고독과 고뇌에 갇혀 담배를 물고 있는 내 모습에 취했던 게 아닐까. 물론 실제로 담배는 심박수도 올려주고 뇌신경에도 영향을 주니 효과가 없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 사이 비율을 모르니 나이 잔뜩 먹고 온 중2병에 걸렸다는 게 올바른 답변이 아닐까 싶다.
그 뒤로는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계속 물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 학사지원팀에서 일할 때는 사실상 콜센터였기 때문에 감정 소모가 심했다. 학원 일을 할 때는 아이들과 학부모를 상대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심했고 그 뒤 인테리어와 제조업 회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핑계는 참으로 넉넉했다. 그 와중에 마음의 질병도 있다 보니 그걸 변명으로 더 많이 피우게 됐다. 진짜 심할 땐 의사도 금연을 조심스럽게 미루자고 하기도 하더라. 그래서 굳이 끊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무 데나 앉아 담배 한 대 피워
몸에 해로워? 나도 알지 물론
중독인데 아닌 척
사실은 그냥 멍 때릴 시간 좀 버는 거지
조용한 5분을 줘
E Sens - 비행
사실 내가 그동안 담배를 피웠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구체적으로 잘 쓴 게 저 가사인 것 같다. 지금의 내 자아들이 각자 너무 시끄러울 때 그들을 모두 조용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담배인 것 같다. 저런 가사가 나오는 걸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정지 버튼을 누르는 듯한 감정이 든다. 그 순간엔 몸과 마음에 평화가 주어진다. 그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예술 작품에서 담배를 많이 활용하니 괜히 거기에 취하는 기분도 든다. 빈지노는 "Smoking Dreams"를 포함해 많은 곡에서 담배를 활용하고, 얼마 전에 본 드라마 "자백의 대가"에서는 전도연이 김고은을 완전히 신뢰하는 순간을 담배를 건네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옛날 영화긴 하지만 "신세계"에서 담배가 빠지면 작품이 정말로 완성이 되겠는가. 그런 식으로 향유할 수 있는 것이 흡연 문화기 때문이기도 하기에 난 이런 부분에서도 심취한 듯하다.
하지만 사실 이는 다 내 변명이다. 방금 써 내려간 문단의 내용을 다르게 얘기하면 난 니코틴과 타르가 없으면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거기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초라하게 보는 것이 아닌 깊은 사색에 빠진 예술가라는 식의 착각을 크게 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동시에 갑자기 급하고 빨리 피우다 보면 머리가 핑하고 돌기도 한다. 심지어 금연자가 많아진 요즘 냄새가 난다며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발암물질과 중독물질의 노예라는 사실은 저 멀리 치워둔 채 피워도 될 법한 보기 좋은 이유들만 가져와 그럴듯하게 늘어놓고 있다.
"야, 너는 이런 거 하지 마라."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허세를 부릴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 하지만 저 말이 진심이 된다면 저 말 보다 더 사려 깊은 말이 있을까. 난 금연을 하려면 정말 큰 결심이 필요하지만 이 글을 보는 비흡연자인 누군가는 아니지 않은가. 어느 게임 장면이 떠오르며 시작된 변명이지만 이 글의 마지막까지 담배를 향한 찬양으로 끝나선 안될 것 같다. 독자들에게 고한다. 부디 나 같은 니코틴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앤디워홀의 다이어리, 1983년 9월 13일
바스키아가 찾아왔다.... 담배 한 갑을 사고 싶어서 자기 그림을 75센트에 팔았는데 일주일 뒤에 그의 갤러리에서 전화가 와서는 똑같은 그림을 자기네는 1000달러에 샀다고 말했다.
바스키아는 그게 웃긴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건 웃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