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내 집 같은 이유. 그가 내게 베풀어준 것들.
어렸을 땐 이해가 안 되었던 것들 중 하나가 바다나 산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뻔한데 뭐 하러 굳이 보러 가야 될까 싶었다. 거기서 풍경이 좋다고 사진을 찍는 것이, 뻔히 아는 나무와 파도를 보며 감탄하는 것이, 그래서 오길 잘했다고 만족하는 것이 모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나도 변하더라. 물론 여전히 등산은 이해할 수 없지만 바다는 내게 안정감과 평화를 전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어쩌면 어렸을 적부터 바다를 끼고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바다에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배산임수의 위치에서 자랐음에도 바다에서의 추억이 훨씬 많다. 그때의 감정이 지금 내게 평안을 가져다주나 보다. 한동안 그걸 잊고 있던 내가 지금은 카페를 가도 바다가 보이면 만족감이 훨씬 커지고 여행을 가도 근처에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난 바다가 좋다.
난 아이디도 그렇듯 울산에서 자랐다. 심지어 울산 중에서도 바다와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있다. 걸어서 약 15분 정도면 바다에 도착하게 되는데 거기엔 추억이 많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놀던 곳이었고, 성인이 되었을 땐 술을 먹기 위해 모였던 곳이었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는 게 그렇게 싫었으면 서도 술만 먹으면 거기 퍼질러 앉아 캔맥주를 마시곤 했다. 파도 소리가 들리면 둘이건 셋이건 말이 없어도 좋았다. 가끔은 컵라면에 소주로 병나발을 불기도 했는데 이땐 이거대로 어른의 일탈을 하는 듯해 기분이 좋았다. 거기서 했던 진지한 얘기들, 혹은 말도 안 되는 개똥철학들, 숨 넘어가게 웃었던 농담들이 내겐 모두 추억이 되었다.
그 시절의 친구들 중 일부는 아직도 만나고 있고 일부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게 됐는데 이건 이제 와서 보니 참 아쉬운 일이 되었다. 물론 연락하지 않게 된 이유는 있었지만 이 중엔 오해가 쌓인 부분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폭력배나 건달도 그들의 친구들에겐 좋은 사람들이라던데 그때는 못됐다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각자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바다를 보면 그런 생각도 떠올라 아련해지기도 한다.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이고 어차피 지나간 일이라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잊히진 않는다. 이것에 대한 사색에 잠기는 게 즐겁다기 보단 씁쓸하지만 이 또한 바다가 내 마음을 달래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일도 떠오른다. 몇 살 때였는진 모르겠지만 굉장히 어렸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평일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아빠와 나만 집에 있었다. 그러다 아빠가 전화를 받더니 바닷가에 놀러 갈 생각 있냐고 물었다. 나는 어차피 집에서 심심했던 터라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딘지 알 수 없는 바닷가에 도착했고 나는 혼자 어린아이들이 놀 법한 풀장에 놓였다. 그때 까진 혼자 노는 방법을 잘 몰랐기도 했고 거기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나보단 덩치도 작고 어렸어서 다소 뻘쭘했다. 그래서 물장구나 치고 있었는데 아마 아빠 친구들은 그게 신경이 쓰였나 보다. 그중 한 분이 내게 다가왔고 구명조끼를 입혀주셨다. 그렇게 나는 바다로 들어갔고 그분의 손을 잡고 수영이 가능한 구간을 나누는 부표까지 따라갔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까지 멀리 간 게 처음이라 무섭기도 했지만 그만큼 재밌었다. 혼자는 가지 못했을 곳까지 가는 동안 출렁이는 파도가 주는 리듬감도 너무 신났고, 입으론 짠 바닷물이 계속 들어왔지만 그것조차 즐거웠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는 너무 좋았다며 아빠한테 재잘댔다.
이게 기억에 남은 이유는 아마 그렇게 멀리 간 게 신기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빠와의 추억이 많지 않다는 게 더욱 큰 것 같다. 사실 우리 아빠도 그 시절 아빠들과 다르지 않았다. 평일엔 일하느라 바쁘고, 주말엔 그게 힘들어 쓰러지듯 잠에 빠져있었다. 심지어 일주일에 한 번씩 교대 근무를 하며 시간대가 매번 바뀌었기에 아마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말엔 휴식과 회복이 반드시 필요했겠지만 나는 그걸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그래서 그땐 아빠가 그저 놀아주지 않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사춘기를 맞이했을 땐 이미 감정적으로 교류가 많이 없었기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던 것 같다. 물론 몰랐으니까 그랬겠지. 그렇게 빨리 갈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서 후회가 많이 된다. 이제는 다 이해되는데 그땐 왜 그랬을까 싶다. 말이라도 더 잘 들을 걸. 그러다 보니 이런 추억이 더 강하게 남게 된다. 몇 안 되는 추억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이 추억 또한 바다와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바다가 곁에 있어줬기에, 나를 삼키지 않고 품어줬기에 더욱 완벽한 추억이 될 수 있었다. 그저 밥만 먹고 왔다면 이렇게 기억에 남지 않았을 테니까.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하나는 필요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게 집이라고 말할 테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헤매게 되었고 그렇게 찾은 곳이 바다다. 어쩌면 찾았다기 보단 다시 돌아왔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겠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그걸 잊고 있었다. 그러다 지치고 만신창이가 된 나와 다시 마주했을 때 그는 말없이 그저 안아주었다. 노랗게 하얀 윤슬이 반짝일 때도, 먹구름 아래 거칠게 암초들을 집어삼킬 때도, 노을이 그의 얼굴빛을 바꿀 때도 언제나 아름다운 바다는 내 마음의 휴식처가 되었다. 지금도 바다를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다. 여전히 평화롭게 나를 바라봐주는 바다에 너무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