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냐?

인종 차별은 절대 하나의 놀이가 아니다.

by wordsfromulsan

최근 <쇼미더머니 12>를 시청하고 있다. 화제성이 예전만 못하고 포맷도 익숙하지만, 힙합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매 시즌 챙겨보게 된다. 하지만 무대가 끝난 뒤 찾아본 댓글창은 음악에 대한 감상 대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혐오의 언어들로 가득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로얄 44'라는 참가자가 있다. 한국 국적이지만 중국 하얼빈 출생이라는 이유만으로, 2005년생인 이 어린 뮤지션은 감당하기 힘든 인종차별적 비난에 노출되어 있다.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원색적인 비난은 물론, 그의 출신을 조롱하는 가사를 밈(Meme)으로 만들어 댓글창을 도배한다. 실력이나 태도에 대한 비판이 아닌, 오직 "태생"이 공격의 이유가 된 것이다.


​나 역시 국가로서의 중국이 행하는 동북공정이나 정치적 행보, 일부 몰상식한 민폐 행위들에 대해서는 강한 반감을 느낀다. 이전에는 그런 행태를 풍자하는 미디어를 보며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느낀 감정은 통쾌함이 아닌 불쾌함이었다. 특정 국가가 싫다는 이유로,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하는 소년에게 그 원죄를 물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그의 성씨를 따서 만든 "동 훈 이 일 걸" 같은 조롱 섞인 댓글들은 그가 중국 출신이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된 명백한 언어폭력이다. 우리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동양인이 인종차별을 당하면 분노하며 '미개함'을 탓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 안의 소수자에게는 왜 그토록 잔인해지는가? 어릴 적부터 "남이 잘못한다고 너도 똑같이 하면 같은 사람이 된다"라고 배워왔던 우리는, 지금 눈을 찢으며 동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무엇이 다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흑인들의 영상 아래에는 교묘하게 검열을 피한 "니@가"라는 단어가 유희처럼 소비된다. 흑인들이 동양인을 차별하는 위선적인 집단이기에 우리의 차별도 정당하다는 논리는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다. 상대의 위선이 나의 혐오를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웃음을 위해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말살하는 행위는 '밈'이 아니라 '폭력'일뿐이다.


누군가는 "그저 웃자고 하는 소리에 왜 이렇게 진지하냐" 혹은 "깨끗한 척하지 마라"라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멈춰 서서 생각해야 한다. 대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내가 싫어하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 개인의 인격과 꿈을 짓밟는 것이 정말 정당한지 말이다. 중국이 싫고 특정 인종이 불편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이 타인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권력으로 치환되어서는 안 된다. 혐오가 문화가 되고 차별이 놀이가 된 지금, 우리는 이미 우리가 그토록 비난하던 '그들'과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