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없는 사람은 결국, 남의 시나리오 속 엑스트라일 뿐이다.
"나는 이 일을 왜 시작했을까?"
3년 차 직장인 유진은 요즘 자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열심히 일했고, 팀에서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출근길은 갈수록 무겁고, 성취감은 점점 희미해졌다.
어느 날, 팀 회식 후 혼자 남은 유진은 술기운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그냥 이 회사에서 오래 다니면 팀장 되겠지.
근데... 이게 내가 원한 삶이 맞는지 모르겠어."
그 친구는 묻는다.
"그럼 넌 왜 여기 들어왔어?"
유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처음 입사하던 날 썼던 다이어리를 꺼내 읽었다.
"좋은 팀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획을 하고 싶다."
지금의 자신은 그 의도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날 이후 유진은 매일 아침, 출근 전 3분간 자신에게 되묻는다.
"오늘 나의 삶의 방향과 그 의도는 무엇인가?"
의도를 회복한 이후, 그녀는 작은 프로젝트에도 동기와 생기를 느끼기 시작했고,
타인의 칭찬보다 자신의 기준에 집중하게 되었다.
유진은 이제, 다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유진에게 준 '도휘'의 말 한마디가 있었다.
“남의 기준으로 목표를 세우면, 내 인생은 언제나 남의 평가에 흔들린다.”
“왜 사는가?” 없는 삶은 아무리 노력해도 방향이 없다.
그녀는 열심히 살고 있었다.
출근 전 새벽 러닝을 하고, 업무 일지와 성과표를 정리하며,
주말엔 자기계발서를 읽고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날,
불쑥 던져진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
무엇을 성취하든 허무했고,
매일 정해진 루틴대로 움직이지만
그 어디에도 ‘내가 선택한 삶’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녀는 ‘목표가 있는 삶’이 아니라,
‘목표를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열심히는 살되 방향 없이 움직이고 있다.
왜 그것을 하는지 모르면서도 계속하는 삶,
그것이 ‘정의’를 상실한 현대인의 초상이다.
의도 없이 행하는 모든 행동은 공허하다.
공자는 『대학』에서 “의(意)를 바르게 하라(正其意)”고 하였고,
『논어』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
여기서 '생각'은 단순한 사유가 아니라,
“왜 이것을 하는가”에 대한 내면의 정렬이다.
불교에서는 의도를
업(業)의 씨앗이 되는 중심 작용으로 보았다.
모든 업은 의도에서 비롯되며,
의도는 곧 다음 생과 현실을 결정짓는 힘이다.
서양의 스토아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삶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지며,
의도는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말했다.
또한 오늘날 코칭에서는 목적 기반 성찰(goal-based reflection)이
행동의 지속성과 감정적 납득을 높이는 핵심 기제로 알려져 있다.
전인륜학에서 정의(正意)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정의란, 존재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의도를
반복적으로 자각하고 정렬해 나가는 내면적 훈련이다."
정의는 목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왜’라는 질문을 통해
올바르게 존재적 의도를 되살리는 것이다.
‘의도’란 단순한 동기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에너지가 흘러가는 방향이고,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자 하는지를 증명하는 선언이다.
정의는 다음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 지금 이 말을 하는 내 의도는 무엇인가?
- 이 행동이 내 존재와 일치하는가?
- 무엇이 나를 이 일을 하도록 만들고 있는가?
정의는 자기 삶을 외주화 하지 않기 위한 정신적 중심축이다
존재의 방향성 : “나는 어떤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가”
의미의 내적 타당성 : “이 목표는 나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감정적 납득력 : “나는 이 의도에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가”
‘정의’는 이러한 세 요소가 의식적으로 설계된 상태이며,
이때부터 인간은 타인의 삶이 아닌 자신의 길을 걷게 된다.
정의(正意)란, “자기 존재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그 삶의 목적에 대해 감정적·의지적으로 납득한 채
지속 가능한 목표와 의미를 설계하는 내적 작용”을 뜻한다.
이는 단순한 목표 설정이 아니라,
의도(intent), 신념(belief), 동기(motivation), 의지(will), 존재(presence)를
한 방향으로 정렬하는 존재 기반의 실천 설계 행위이다.
『대학』 8조목에서 정의(正意)는 다음과 같은 사슬로 연결된다.
格物 → 致知 → 誠意 → 正心 → 修身 → 齊家 → 治國 → 平天下
여기서 ‘성의(誠意)’는 마음을 참되게 하는 것,
‘정의(正意)’는 그 참된 마음으로부터 바른 목적을 세우는 것이다.
공자는 “뜻을 바로잡지 않으면 마음이 방황한다”**고 하였다.
이는 의도를 바르게 하지 않으면,
삶 전체가 목적 없는 반복으로 빠지게 된다는 경고다.
→ 정의는 수신(修身)의 내적 선행 조건이자,
행동을 존재와 연결시키는 철학적 뿌리다.
불교의 ‘팔정도’ 중 하나인 정사(正思惟)는
‘바른 생각’ 즉 바른 의도를 품는 것을 의미한다.
유식학에서는 모든 업(業)은 의도(意)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의도는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미래의 삶을 구성하는 원인 작용이다.
특히 제7식 말라식과 제8식 아뢰야식은
의도와 업식(業識)을 저장하고 축적하며,
그 결과는 삶의 방향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 정의는 내면의 업을 설계하는 최초의 작용이며,
삶을 재구조화하기 위한 의식적 기획의 출발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목적을 추구하는 동물(teleological being)”이라 보았다.
그에게 있어 행복(eudaimonia)이란
이성(logos)을 통해 목적을 자각하고 실현하는 삶이다.
칸트는 “의지는 도덕법칙을 스스로 세우는 자율성의 힘”이라 정의하며,
의도(intent)를 도덕성의 핵심으로 보았다.
현대 코칭 심리학에서도 '의도 기반 목표(intentional goal)'는
단기 성과 목표보다 더 높은 자기 결정성(self-determination)과
정서적 지속성(emotional sustainability)을 제공한다고 본다.
→ 정의는 단순한 할 일 목록이 아니라,
삶 전체를 어떤 서사로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다.
전인륜학은 목표 설정을 단지 SMART 목표의 수단화로 보지 않는다.
정의는 존재, 감정, 가치, 신념이 일치된 목표를 말한다.
존재의 방향성 : “나는 어떤 존재로 살 것인가?”
감정적 몰입도 : “이 목표에 나는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가?”
가치적 내러티브 : “이 목표가 내 삶의 의미 구조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신념 정렬 : “이 목표는 내 신념과 일치하는가?”
실천 가능성 : “지속 가능한 루틴으로 녹일 수 있는가?”
→ 정의란 곧
“내가 누구인지에 근거하여 무엇을 향해, 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통합적 설계이자 삶의 자서전적 주제 문장이다.
의도가 없는 삶은 타인의 수단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의도가 없는 사람은 쉽게 조종된다.
그들은 ‘해야 하니까’ 움직이고, ‘남들도 하니까’ 따라간다.
기업은 그들을 마케팅 대상으로 삼고,
사회는 그들을 소비자로서만 존중하며,
가족은 그들을 대리 실현의 수단으로 삼는다.
정의가 사라진 삶은
언뜻 보기에 멀쩡해 보일지라도
자기 삶의 주인 자리를 비워둔 채 살아가는
위험한 공허 속을 부유한다.
하루를 의도로 여는 사람만이, 인생을 자기 손에 쥔다.
정의는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구축된다.
다음은 전인륜학에서 권하는 존재 중심 의도 설계 루틴이다.
아침 명상 질문
“오늘 나는 어떤 존재로 살 것인가?”
(3분간 조용히 질문에 머물며 스스로에게 답해본다)
의도 선언 일기
오늘의 행동 중 반드시 지켜야 할 단 1가지 행동을
“나는 왜 이것을 하는가?”라는 문장과 함께 작성한다.
예) “나는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의 외면 속에서도 나만의 중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저녁 피드백 일기
오늘 내 ‘의도’는 얼마나 지켜졌는가?
몇 번 흔들렸는가?
내가 ‘남의 목적’을 따라간 순간은 없었는가?
이 루틴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의도를 내면화하고 실천으로 전환하는 존재 정렬 도구이다.
6. 마무리 성찰
– 당신은 지금 누구의 의도대로 살고 있는가?
정의는 가장 조용한 선언이자, 가장 거대한 출발이다.
의도 없이 흘러가는 삶을
다시 붙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대한 계획이 아니다.
단 하나의 존재 선언문이다.
“나는 오늘 누구의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그 문장 하나가 삶 전체의 축을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正意)의 힘이다.
「현실을 똑바로 본다는 것의 용기」
“현실 직면은 자기연민을 넘어서는 가장 강력한 성장 기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