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 My Today Jun 29. 2020

십 분의 소중함

짧지만 길다

예전엔 3당 4락인가 고3들에게 3시간 자면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요새도 그런지 모르겠다.


요즘 나의 하루는 진짜 고3들이 듣는 다면 화낼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내가 고3이었던 시절의 나 보다는 정말 배로 바쁜 것 같다.

문제집과 학원 대신에 빨래 설거지 청소 요리의 무한 반복. 그래도 고3 때는 수능이라는 데드라인과 대입이라는 목표점을 두고 D-x를 표시하며 몇 등급을 향해 노력했는데 지금은 그냥 하염없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육아가 집안일이 그렇다. 데드라인이 없고 퇴근이 없고 성적이 없고 평가와 보상이 없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등원하자마자 집 정리하고 빨래 돌리고 이유식 만들어서 소분하고 살림살이 주문하고 쉬지 않고 일한 것 같은 데 아직도 건조기에는 정리를 기다리는 옷가지가 가득하고 놀이 매트에는 머리카락이며 먼지가 계속 눈에 띄고 냉장고에는 처리하지 못한 음식류와 재료가 유통기한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렇게 등원시켜놓고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하원 시간이다. 보통 2시 50분에 집을 나서는데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정확히 3시다.

요새는 대충 집안일을 끝내고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면 늘 칼같이 2시 40분이다. 주어진 여유 시간은 10분. 뭘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십 분간 휘휘 넘겨봤었고 손톱 정리도 해봤는 데 10분의 간절함에 비해 만족도가 낮았다.


그래서 요즘은 그 10분에 뭘 하느냐.

두 가지 중에 하나다. 몰래 숨겨 놓은 과자를 10분간 정말 열심히 집중해서 먹는다. 뭔가를 보면서 주전부리로 때우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씩 빠르게 하지만 음미하며 먹는다. 과자가 주는 보상은 즉각 퍼지는 단 맛과 입 안에서 바삭 부서뜨리는 데서 오는 작은 희열이다.

나를 위해 마련한 10분 간의 소풍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다 먹으면 바로 로봇처럼 튀어나가야 하지만 지금 이 10분은 온전히 내 것으로 소풍 온 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바사삭바사삭.


두 번째는 소파의 긴 부분에 누워서 창 밖의 나무를 보는 거다. 비가 오면 나뭇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걸 보고 바람이 불면 하늘하늘 가지가 움직이는 걸 보고 있다. 휴직하고 아기를 돌보면서 삼십 년 넘게 경험한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새삼 깊이 느끼고 있다. 유모차를 밀고 아기와 산책 나가서 벚꽃 꽃망울이 올라온 것부터 만개하고 떨어진 다음에 연둣빛 싹들이 여름 태양 아래서 초록잎으로 바뀌어 무성해지고 담장에는 빨간 장미가 흐드러진 것까지 매일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혼자만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아기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다 보니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고 느끼게 되고 또 놀라게 된다.


별거 아닌 이 10분으로 오늘의 나머지 시간을 집중해서 보낼 에너지를 얻는다.

신나게 놀아주고 맛있게 만들어서 먹이고 깨끗하게 씻길 에너지.

앉았다 서면서 무릎이 후들거리고 젖병 닦고 당근 다지다가 손목이 저릿할 때면 이 10분을 떠올린다.

일단 지금 고비를 넘기고 오늘 밤을 보내고 아침이 오면 다시 그 10분이 올 거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오늘음 그렇게 얻은 에너지가 모처럼 자정에 가까워질 때까지 남은 김에 이렇게 글도 남겨본다.

 나중에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안 들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오면 이 10분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고 일단 10분간만 내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라면서.
작가의 이전글 닮고 싶은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