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중독된 것처럼 쇼핑을 하던 때가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가격 비교 사이트에 새로 올라온 '핫'한 리스팅들을 한번 훑어보고, 회사에서 틈틈이 새로 나온 제품들의 후기를 보고, 외국 직구 사이트와 네이버 가격을 비교해가면서 어떻게 더 저렴하게 살까를 고민하던. 그렇게 많은 물건들을 들였다. 걸음걸이 수를 세어서 하루 소모 칼로리를 알려주는 스마트 밴드, 체지방률을 측정해주는 체중계, 로봇 청소기, 공기 청정기 등등 많은 물건들을 들였다.
물건을 사는 것이 즐거운 것은 구매 직후까지다. 어떤 물건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게 필요한 것 같은데), 인터넷에서 후기를 찾아보며 가슴설레고 (이런 기능도 있다니 대단한데?), 어떤 옵션과 색상으로 구매할지, 어디에서 사야 가장 저렴하고 빠르게 배송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주문 버튼을 누른 후 택배가 오기까지의 그 설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경비실에 맡겨놓았다는 택배 아저씨의 문자에 가슴설레어 퇴근하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택배를 열었을 때의 짜릿함이란.
하지만 그 짜릿함은 택배를 뜯고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사그라들어버리기 일쑤였다. 살 때는 그렇게도 유용해 보였던 내 구매 목록들은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고장터에 되팔리거나 창고에서 먼지만 쌓이는 운명을 맞이하곤 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처음 물건을 샀을 때의 행복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이렇게 설렘 - 택배 - 실망의 사이클을 수십 번쯤 돌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좋은 물건을 산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구나.
모든 새로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랜다. 돈 없는 학생 시절 보스(Bose) 이어폰에 꽂혔었다. 한 푼 두 푼 용돈을 모아서 가장 저렴한 (하지만 10만 원이 넘는) 이어폰을 처음 장만했을 때 정말 즐거워서 3일 내내 틈만 나면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었다.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겨서 보스 헤드폰 중에 가장 좋은 모델을 사서 쓰고 있다. 하지만 이 헤드폰을 샀을 때는 처음처럼 3일 내내 노래만 듣지는 않았다.
물건뿐 아니라 회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직도 카카오에 처음 출근했던 날이 기억이 난다. 등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뒷목이 아플 정도로 긴장했고 하는 일마다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2013년의 나는 새로운 회사가 너무 맘에 들어서 새 회사의 장점을 16가지나 일기장에 써 놓았다. 그 두 회사를 결국에는 떠나게 되었었으니 그 두근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던 것이 확실하다.
사람도 물건도 회사도, 설렘만으로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언젠가 없어질 감정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살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무언가에 설레는 마음보다 설렘이 사라진 빈자리를 시간과 노력, 애정과 헌신으로 메꾸는 방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새로운 뭔가를 만나는 것보다 지금 있는 걸 지켜야 할 일이 더 많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