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정리해보는 채용공고 작성 노하우
수십 번의 실패를 겪으며 스토리텔링 기반의 채용공고를 쓰는 노하우를 갖게 됐다. 강의도 몇 번 한 적이 있는데, 사실 강의까지는 필요 없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노하우라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누구나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쉬는 날 모처럼 집콕을 하게 되어 글을 쓴다. 채용공고를 쓸 땐 문단마다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하는지 정리했다. 채용 담당자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글을 읽으며 아래 자료를 함께 보면 더욱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자료>
https://careers.mildang.kr/intro_ontact
오후 3시, 이제 막 출근한 직원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난밤 학생들의 학습 진도를 체크하는 것입니다. 여러 개의 모니터와 영어 교재를 번갈아 보며 혹여 학생이 놓친 영단어는 없는지, 오늘 배울 문법에 더 좋은 예시가 있는지 찾아봅니다. 어떤 때는 학생이 직접 써서 보낸 감사의 편지를 읽으며 일의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밀당 오피스에서는 이들을 '온택트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자료는 온택트 선생님을 주제로 쓴 공고의 서두다. '선생님'만 해도 수백 가지의 직업이 있다.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운전학원 선생님, 요리 선생님 등. 게다가 온택트 선생님이란 직업은 회사에서 지은 이름이니 회사 직원 외에 이 직업을 아는 사람은 없다.
독자에겐 먼저 이 직업이 무엇인지 쉽게 알려주어야 했다. "이 직업은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어쩌구", "수업은 AI 기반의 어쩌구" 등 다짜고짜 회사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듣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게 뻔하다. 하고 싶은 말은 독자와 친해진 뒤에 해도 된다.
글의 서두에서는 중학생이 읽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단어를 쓰는 동시에 독자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도록 돕는 것에 집중해보자. 위의 글을 보면 직원이 하는 일을 자세히 써두었다. '오후 3시', '모니터와 영어 교재를 번갈아 보며', '감사의 편지를 읽으며' 등 쉽고 구체적인 표현을 쓸수록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본 적 없는 직원의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처럼 스토리텔링 기반의 채용공고에서는 작성자 머릿속에 있는 화면을 무사히 독자의 머릿속에 전달하는 데에 집중한다. 전체 직무 채용공고를 써야 한다면 서두에서는 옆집 사는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를 쉽게 소개한다. (*옆집은 아니지만 실제로 종종 쓰는 방법이다.) 쉽게 소개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쉽게 소개하면 글은 읽기 쉬워지고, 독자도 회사를 이해하기 쉬워진다.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은 쓰지 않도록 주의한다. 기업에서 실수하는 예를 들면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충분한 정보 공유를 통해 이뤄진다'와 같은 글이다. '대부분'이 몇 회인 건지, '충분한' 건 얼만큼인지 독자는 알 수 없다. 꼭 써야 한다면 '매주 월요일 오전 9시, 팀원 모두가 참여하는 얼라인먼트 회의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합니다.'와 같은 문장을 쓰는 것이 좋다.
예시1)
밀당에서는 사업 확장에 따라 대규모 신규 채용을 합니다. 지금부터 이 공고를 천천히 읽어보시고 함께 장벽을 부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밀당에 지원해주세요.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은 피플팀에 연락을 보내주시면 빠르게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밀당 피플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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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2)
지금은 마포역 바로 앞에 오피스를 두고 110여 명의 팀원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설명 없이 '문의: people@company.com'이라고만 쓰는 게 잘못은 아니다. 못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왕에 정보를 주는 거라면 직무 채용의 주체가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피플팀에 연락을 보내주시면', '피플팀 드림.'과 같은 짧은 문장으로 이 글을 쓴 팀이 어디인지, 어느 곳에 문의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플팀이 채용을 맡고 있구나'와 같은 정보도 전할 수 있다. 지원자가 이 정보를 인지하지 못하면 면접 보러 와서 회사 서비스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야기하듯 전하는 정보 전달 방식을 응용하면 회사의 위치도 아래와 같이 보다 스무스~하게 전할 수 있다.
오피스 뒤로는 숭례문이 보이고, 앞에는 근대 건축물인 옛 서울역도 보입니다. 고개를 들면 빌딩 숲도 끝없이 펼쳐집니다. 창밖을 볼 때마다 서울의 중심에 있다는 걸 느끼며, '우리도 우리의 분야에서 중심에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위치: 서울시 00구 00동 00번지 0층, 문의: people@company.com'와 같은 당연한 문장 한 줄도 회사의 개성에 맞게 바꾼다면 메시지 전달력은 높아진다. 공고 안에는 블루오션이 숨어 있다. 회사의 인원, 투자규모, 위치, 서비스 안내 등 짧은 정보에 스토리를 입혀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다.
학습 패턴부터 시험 기간, 지난 학기 성적 등 사소한 것을 선생님이 먼저 기억해 준다면, 데이터만으로는 원인을 찾기 어려울 만큼 학생의 성적이 크게 오를 수 있습니다.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면 그 과정을 함께 소개해 주세요. 지원한 분의 실력이 더욱 잘 드러날 것입니다.
취준생 시절, 여러 기업의 채용공고를 보며 '도대체 이 과제는 왜 하는 거지?' 싶을 때가 있었다. 속 시원하게 이유나 좀 알려주면 좋으련만 무작정 리포트를 써보라고 한다던가, 성장 경험을 써보라고 하는 등이었다. 그때마다 난 '회사에 들어가서 성장하고 싶은데 회사는 이미 성장한 사람만 받는구나ㅠㅠ'하며 좌절감만 맛봐야 했다.
당연히 회사는 지원자가 성장할 동력이 있는지, 위기 또는 보고 상황에서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논리를 정리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을 거다. 그 맥락을 지원자에게 공유해보는 건 어떨까. 숨길 필요는 없다. 혹시 모든 걸 공유하면 그에 맞춰 답변을 꾸밀까봐 걱정이 되는가. 괜찮다. 어차피 채용담당자의 눈에는 다 보인다.
사전 질문이나 과제가 있다면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맥락을 공유해보자. 동기부여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지원자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들을 수도 있다. 또한 지원자가 사전 질문, 과제에 대한 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직무에 대한 이해도 높아진다. (객관적인 증명이 필요하겠지만) 실제로 사전 질문, 과제, 직원 인터뷰 콘텐츠를 제공한 뒤로 면접 인터뷰에서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눴다는 피드백을 자주 들었다.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는 일대일 온택트 과외 서비스, 밀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AI가 추천한 커리큘럼을 따라 영어 단어와 문장을 암기하고, 온택트 선생님과는 메신저로 대화하며 학습을 이어갑니다.
이 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아마 '쉽게'가 아닐까. 연습을 해야겠지만, 분명한 건 채용공고는 IR자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의 예시는 "우리 회사는 AI를 활용한 에듀테크 스타트업입니다"라는 문장을 풀어낸 것이다. 어려운 문장은 채용공고에 필요 없다. 이유는 하나다. 지원자 입장에서 어렵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데이터 기반의 어쩌구 플랫폼, 패션 테크 플랫폼, 모빌리티 혁신 뭐시기 등이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 1위', '미래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기업'과 같은 문장은 지원자에게 아무 이득이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독자와 친해진 뒤에 해도 된다.
채용담당자는 회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 직무 대부분은 서비스 플로우나 조직 구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그 기업에 맞는 단어를 쓴다. 지금 쓴 그 문장이 지원자 입장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글인지, 더 쉬운 단어나 문장은 없는지 다시 읽어보자. 나 역시 글을 쓸 때면 어렵게 쓰는 것을 가장 잘하므로 쉽게 쓰려고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하기도 한다. (요즘은 UX writing이라고도 말하던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표현이 제일 어렵다.)
[직원 누구나 서비스에 대해 의견과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만든 제품 및 서비스의 의미와 수강생이 겪는 문제 상황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고객 접점을 만들어드립니다.]
- 직원 자녀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 시 교재 및 온라인 학습 최대 3년 지원(현재 미혼이거나, 자녀가 미취학 연령이라면 사촌 이내 1명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 직원 쿠폰(100,000원 할인) 무제한 지급: 주변의 모든 지인 및 중, 고등학생에게 선물할 수 있습니다.
만약 [ ~ ] 부분을 쓰지 않는다면 잠재 지원자에겐 '직원 자녀는 강의 공짜'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음.. 조직문화나 복지제도는 직원이 목표를 더 빠르게 이룰 수 있게 돕는 도구로 자리 잡아야지, '무조건 공짜!'로 인식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건강하지 않은 조직으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이다. 복지제도마다 왜 있는 건지, 왜 필요한 건지 써보자. 혹시나 다른 회사에서 하니까 우리 회사에서도 그냥 하는 것이라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다.
복지제도의 맥락을 정하려면...
1.회사의 복지제도를 모두 나열한다.
2.비슷한 것끼리 묶는다.
3.비슷한 것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한 줄 문장을 쓴다. 예를 들면 밀당의 복지제도는 제품 및 서비스 지원, 학습 및 아이데이션 지원, 몰입 방해 요소 제거 지원, 기념일 축하 지원, 당연한 지원과 같이 크게 다섯 가지로 이뤄져 있다. 채용담당자라면 회사의 복지제도마다 의미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므로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거다. (아웃바운드 나갈 때 뭐라도 말해야 하잖아요!)
다시 말하지만 위의 노하우로 소개한 것들은 쉽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더 멋진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열정에 자칫 기본을 지키기 어려운 때가 있는데, 이럴 때 회사와 독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회사가 하고 싶은 말만 하거나 반대로 너무 쉬운 글만 쓰는 것. 이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스토리텔링 기반의 채용공고를 쓰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 댓글 또는 메시지로 고민을 남겨주시면 해결은 못하더라도 방향 정도는 제시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도움이 되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