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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journey Oct 31. 2021

정성과 눈물의 할로윈

HR은 Hell과 Rage의 사이 그 어딘가

최근 읽었던 직원경험 덕분에 조직문화를 설계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나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회사 안에서 팀원과 팀원 사이, 팀과 팀 사이에 정보가 흐를 수 있는 판(playground)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곧 고생을 사서 하는 나비효과로 번졌다. 바로 할로윈 행사를 하겠다고 다짐했기 때문.



옛 동료이자 지금은 친구가 된 gee의 반려견, 소복이. 경의선 숲길에서 함께 산책한 날, 소복이는 하필 오징어 게임 456번 코스튬을 입고 나왔다. 소복이를 보자마자 할로윈 행사를 향한 열정지수는 상한가를 치고야 말았다. (11월의 나: 아.. 안 돼...!!)



바로 다음 날, 라운지를 꾸밀 소품을 사러 팀원 한 명과 함께 명동 다이소에 갔다. HR러의 성지나 다름없는 이곳엔 정말 없는 게 없다. (급한 게 필요할 때마다 이곳을 찾으면 뭐든 다 득템할 수 있음.) 하지만 이놈의 시국 때문에 할로윈 분위기가 영 안 났는지 올해엔 할로윈 용품이 매대 두 칸만 차지하고 있었다. 건물만 이렇게 크면 뭐해,, 참 덩칫값 못한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구글링을 했고, 남대문시장에서 할로윈 용품을 판매한다는 걸 우연히 봤다. 택시 기사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차를 돌려 남대문시장으로 향했는데 여기 안 왔으면 천추의 한이 될 뻔했다. 그야말로 찾던 모든 소품들이 다 있었다.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건 다 쓸어 담았다. 주인아저씨는 처음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있다가 큰 손 냄새를 맡았는지 계산을 마치고 나설 때까지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 뭐 쿠팡이 좋긴 하지만, 물건은 역시 이것저것 직접 보고 사야 제맛이다.


 

이 봉투 진짜 엄청 큰데 사진으로는 그 크기가 실감이 나지 않아 아쉽다.



시장에서 산 물건 펼쳐보는 중



"팀장님 이건 왜 샀어요?"

"나도 몰라요..."

"???"



음 꾸미긴 했는데 뭔가 맛이 안 난다. 유튜브에서 스크린세이버 영상을 찾아봤다.


 

이거 좋겠군.



좋아 좋아! 



만 원에 업어온 두 명의 유령 알바.



삼천 원에 업어온 해골 알바



분장이나 코스튬을 하지 않더라도 가면 쓰고 찍을 수 있게 여러 가지 준비했다. 



팀원이랑 이것저것 써보면서 놀기. 



대표님과 디자이너분의 도움으로 재미있는(=상금 빵빵한)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디자인 포스터도 만들어  공지했다. 그 후에 다른 팀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피드백을 받았는데, "할로윈 행사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는 재택근무 직원도 신경 써주면 더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지점근무자, 재택근무자, 휴가자, 백신접종자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행사나 프로그램, 제도, 정책을 기획하는 것. 나는 요걸 앞으로 'inclusive design for employee experience'라고 부르기로 했다. 동료분의 피드백이 아니었다면 정말 부족한 행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곧바로 재택근무하는 팀원을 위한 액션을 시작했다. 



다시 남대문시장에 갔다. 대도종합상가 D동 지하엔 없는 게 없는데, 진짜 여기 있는 물건들만 모아도 나라 하나 세울 수 있을 거 같다. 사탕과 과자를 주로 판매하는 대신상회도 구글링으로 찾았다. 구글 없으면 어떻게 살지?



구매한 모든 사탕을 큰 봉투에 다 쏟고 김장 버무리듯 섞었다. (가영님: 으이구! 김장 안 해봤죠?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



역시나 남대문시장에서 산 와인과 선물상자. 와인은 뽁뽁이 한 바퀴 빙 돌려 싸서 깨지지 않게 포장한다. 



난장판이 되어가는 중



봉투마다 섞은 사탕을 잔뜩 넣고 편지와 함께 포장했다. 



기자 생활을 하다 조직문화 콘텐츠 담당으로 합류한 이분은... 이런 일을 할 거라 예상이나 했을까. 고생만 시키는 것 같지만.. 일단 얼른 배송부터 보내기로 한다. (이후 할로윈 박스를 받은 재택근무 팀원들은 감사하다며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한편 오피스에서는...



할로윈 행사 때 나눠줄 막대사탕을 꾸렸다. 원판 돌리기 5등은 츄파춥스인데 같은 팀 가영님은 사탕 하나 달랑 주는 게 영~ 보기가 그렇다며 캔디 페이퍼를 구매하자고 아이디어를 줬다. 쿠팡에서 12개에 1,800원이길래 가격도 괜찮겠다 바로 구매했다.



뭐 일은 좀 많아졌지만 하고 나니 SO CUTE



사탕이 워낙 많아 업무 다 마치고 저녁에도 틈틈이 포장했다.


 

옛날 카라멜만 잔뜩 넣은 장난도 쳐보고



쿠팡에서 만이천 원에 샀다. 



앗 이럴 경우엔 5등일까 1등일까. 팀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5등인 걸로 땅땅)



사진 찍기 불편할까 봐 셀프 포토존도 만들었다. 



여기를 보세요~



그리고 행사 당일.



모든 조명을 다 켰다.



빔 프로젝터로 쏘는 스크린세이버 진짜 예쁘다ㅎㅎ 미러볼 살까도 고민했는데 안 사길 잘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스카웃한 할로윈 알바1: 해골보이(팔 아플 때 말해~)



남대문시장에서 스카웃한 할로윈 알바2: 손님인 척하는 곰돌이



남대문시장에서 스카웃한 할로윈 알바3: 보랏빛 해골



누군가 내가 키우는 아보카도, 아봉이 뒤에 해골을 갖다 두었다. 



자, 두 분 유령 선생님들도 스탠바이 하세요~ 이따 끝나고 국밥 한 그릇씩 하자고~



라운지 조명은 정말 할로윈에 잘 어울린다. 마치 사다 놓은 소품 같다!



포토존에 한번 앉아볼까?



일하다가 앞 건물 사람이랑 눈 마주칠까 봐 조마조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 사진을 찍고 정확하게 10초 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는데... 





건물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오피스 전체가 폐쇄됐다. 행사 시작 12분 전, 애써 침착한 척하며 행사를 취소했다. 양손 가득 코스튬 하려고 바리바리 무언가를 싸온 직원들은 1층에서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아무도 안 할 것 같더니 다들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어 ㅠㅠ)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아쉽기만 했다.


내년을 기약하며 올해 준비했던 과정을 기록으로나마 남기고 싶었다. 고생 많이 했지만 이렇게라도 즐겼으니 됐다. 기다려라, 크리스마스.. 라운지를 노르웨이로 만들어 줄게.. 


ps.이 글에서 언급한 inclusive design for employee experience에 관한 활동들을 앞으로도 기록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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