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반쯤 감은 눈으로 집을 나섰다. 출퇴근 길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살던 적이 있다. 이제는 가방에서 책 꺼내는 것도 귀찮다. 이어폰을 꽂고 폰으로 뉴스를 대충 훑어본다. 정신은 반쯤 나가 있는데, 몸이 알아서 환승하더니 벌써 회사다. 동료들과 어색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기계적인 하루가 또 시작됐다."
첫 출근길이 기억난다. 꿈에 그리던 합격, 입사라는 믿을 수 없는 축복. 부푼 꿈과 희망, 열정을 장착하고 첫 출근길에 올랐다. 복사나 잔심부름, Ctrl + C, Ctrl + V 무한 반복 업무도 만족스러웠다. 조만간 큰 프로젝트에 합류돼 잘 나가는 직장인 대열에 합류할 거라고 여겼다. 드라마에서처럼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며 승승장구하는 해피엔딩을 상상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꿈을 깨는 시간이.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시달리면서 좀비가 되어 갔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직장인 직무만족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직장인 약 50%가 현재 직무에 만족하지 못했다. 만족도가 가장 낮은 직급은 사원과 대리였다. 이유는 '잦은 야근 등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와 '직무의 비전이 불투명해서'였다.
만족스럽지 않은 업무에서 보람을 찾기는 힘들다. 보람은 고사하고 학창 시절과 다른 상명하달식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바쁘다. 시시각각 변하는 예측 불가한 분위기가 불편하다. 고통스럽다. 반복되는 일상에 찌들어 간다는 걸 자각한다.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증폭된다. '지금 뭘 하고 있지?' 자기혐오에 빠져 일도 하기 싫고, 동료들이 싫어지는 증상을 겪기도 한다. 그대로 방치하면 우울증과 불면증, 과다 수면이 나타나고 폭식 등 식이조절 장애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인생은 끊임없는 반복이다.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
잊히지 않는 드라마 <미생>에 나온 대사다. 직장생활은 무한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승패가 달라지는 게임이다. 남보다 더 버티고 조금이라도 늦게 쓰러져야 웃는 순간도 온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권태로움에 빠졌다는 걸 자각했다면 주변에서 부정적인 기운을 느끼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남들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 잡지사에서 십 년 넘게 일하며 반복되는 생활의 무료함에 제대로 적응했다. 일상에서, 직장에서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한다. 시시 때대로 터지는 터무니없는 공상만이 유일한 탈출구다. 그러던 어느 날 구조조정이라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는다. 월터는 위기 탈출을 위해 위험한 모험을 시작한다. 일상에서 벗어난 월터는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며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다. 영화는 도전과 실천이 인생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대학 합격, 자격증 취득, 취업 등 사회가 들이미는 잣대에 따라 삶에 등급이 부여됐다. 떠밀려 살다가 문득 깨달았다. 오롯이 혼자 결정하고 실천한 작은 일에서 더 큰 성취감을 느꼈다는 걸. 직장생활도 그렇다. 내가 결정한 선택이다. 가치는 스스로 만드는 거다. 노력에 따라 의미를 찾을 수도 있고, 무의미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고 지긋지긋할 때,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필요한 건 짜증과 포기가 아닌 오기와 도전이다. 누구나 겪는 인생은 롤러코스터다. 혼자만의 시련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좌절과 절망, 피폐함과 괴로움 극복은 우리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 월터처럼 다급한 순간을 기다리면 너무 늦는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끊임없는 눈치와 노력, 실천만이 살길이다. 징그러운 지금을 지독하게 극복하느냐, 강 건너 불 보듯 방관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직장생활과 삶의 빛깔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