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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l 21. 2020

춤이 무지하게 고픈 어느 날

'코로나 19가 바꾼 취미 이야기'


징그러운 코로나 19가 일상을 제대로 뒤틀었다. 현대 사회는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뉜다고 할 만큼 변화는 상당하다. 술자리가 확실히 줄었고, 주말 외출도 제한적이 됐다. 사람들과 언택트 하고, 자연과의 콘택트가 이를 대신하는 지경이다.


어쩔 수 없는 사회생활을 제외한 시간에는 사람을 피한다. 퇴근하면 무작정 집에 간다.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니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더군다나 아빠라서 그리고 아픈 엄마를 지켜야 하니 부득이하지 않은 자리는 피한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외면할 수 없다.


환승할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퇴근길 귓속에 내리 꽂히는 댄스 음악이 유난히 고막을 자극했다. 갑자기 몸이 흔들렸다. 춤이 땡겼다. 춤추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 오해 금물. 춤 꾼은 아니다. 현란하게 잘 추지는 못한다. 춤좋아한다면 '부킹을 좋아한다는 거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편협한 사고방식에 자신을 가두지 말았으면 한다. 그저 춤을 즐길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즐기는 사람을 당할 자는 없다. 신나게 열심히 논다. 코로나 19가 가장 강력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앗아갔다. 힘이 빠진다.


"댄스라는 거이 참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드만."


영화 <스윙키즈>의 명대사다. 춤에 대한 마음을 이 정도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통 한 달에 한두 번은 춤을 추러 클럽 비스무리한 곳에 갔다. 내 또래 중 춤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운좋게 회사에서 춤 좋아하는 후배와 친하다. 우리는 나이에 걸맞게 90년대 노래가 터지는 곳을 찾아간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째진다. 춤을 추면 몸이 상쾌하다. 피곤한 줄 모른다. 신나게 춤 다음 날 아침에도 나에게 피곤함은 없다. 좋아하는 일에는 몸도 뇌도 기꺼이 에너지를 허락한다는 뇌과학자의 말이 맞다. 물론 아내의 취미 존중이라는 배려 덕에 즐길 수 있는 취미였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다. 작년 12월이 마지막이었던가?


마흔이 넘어 회사 댄스 동우회에 가입한 전력이 있다. 물론 나와 댄스를 즐기던 후배도 멤버다. 게다가 임원도 멤버였기에 나이 따위는 문제 되지 않았다. 연령 상위 top 3에 들긴 했지만, 꿀리지 않고 이 년간 이십 대 못지않게 즐겼다. 공연 때 센터도 차지했다. 회사 축제 경연에서 2위를 했다. 유종의미를 거두고 동우회는 해체 수순을 밟았다. 피곤에 찌든 직장인이 일과 후 두어 시간씩 춤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정도 즐겼으면 됐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2등 했으면 됐어. 때려치워!’가 멤버들 속마음이었다. 이로 인해 공식적으로 춤 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우리 가족은 춤을 참 좋아한다. 3대의 춤 사랑을 보면서 피는 못 속인 다는 걸 실감한다. 엄마 춤을 즐긴다. 댄스에 대한 열정은 환갑이 한참 지난 어느 날부터 스멀스멀 베어 나왔다. 동사무소에서 라인 댄스를 배우다 알아버렸다. 자신이 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엄마는 틈틈이 콜라텍에 다녔다. 입장료 몇 천 원이면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다며 행복해했다. 가족 단톡방에서 엄마와 춤 이야기를 나눴다. 모자는 서로 다른 댄스 문화를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내도 춤을 좋아한다. 대학시절 캠프장에서 알바하면서 만난 아내에게 율동을 배웠다. 캠프장을 찾은 아이들에게 율동을 가르쳐야 했기에. 율동이 진화해 춤이 되었다. 알바시절 인연으로 아내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까지 찾아와 춤을 가르쳤다. 학과 연합 MT 장기자랑에 지원하지 않아 과대표인 내가 출전하기로 했다. 구걸하듯 몇 명을 모았다. 아내를 초빙해 춤을 배웠다. 흥에 겨워 교복 상의를 집어던지며 공연을 마쳤다.(무대 의상이 교복이었다) 신나게 놀고 인기상을 받았다. 짜릿한 순간이었다.


엄마와 나 그리고 아내의 피는 딸에게로 갔다. 댄스학원이 문을 닫은 지 6개월이 지났다. 6학년 딸은 거실 전신 거울 앞에서 매일 춤춘다. 아이돌 신곡이 나오면 열심히 안무를 딴다. 작년까지는 댄스 공연도 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거울에게만 춤 실력을 뽐내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렇게 춤을 사랑하는 가족이 춤을 잃었다. 이젠 추억으로 되새길 뿐이다. 코로나 19 탓도 있지만 엄마는 몸이 아파 춤을 못 춘다. 나는 복합적인 이유로 춤과 멀어졌다. 이젠 코로나 19가 끝난다 해도 늙어서 글렀다. 구경이라도 갈 수 있을까. 아내 걷는 것만으로도 관절이 아프단다. 유일하게 제일 건강한 딸내미. 작년 댄스 공연 영상을 추억하며 다시 춤추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만 있다. '딸아, 아빠 대신 열심히 춤춰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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