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Aug 03. 2020

수백수천 가지 가면 뒤 나다운 나

'나는 내가 싫다. 하지만 내가 되고 싶다'


나다움이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저 하루하루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쓰고 버티는 게 결국 나다움이었다. 치열한 삶에, 각박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여기저기서 어쩔 수 없이 페르소나를 쓰고 산다는 이들의 탄식이 넘다. 유아기 동물적 본능 만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각양각색의 가면을 쓰는 과정을 거쳐 사람은 완성된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이름만 불러도 얼굴이 벌게졌다. 다수 앞에 나서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소수의 절친들에게는 나댄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사람을 철저하게 기 때문이다. 마음을 활짝 열어제끼면 새삼 활발한 사람으로 돌변한. 반면 상대에 대한 의심이 가득하면 가면을 쓰고 극도로 조용한 사람 된다.


어릴 때부터 가면 효과를 알았던 걸까. 학교에서는 얌전한 학생이었고, 밖에서는 여자애들과도 신나게 떠들며 노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성인이 되었다. 여전했다. 친한 친구들과의 신나는 술자리에 낯선 인물이 등장하면 입을 다물었다. 낯가림이라는 본능이 자동으로 고개를 들었다.


낯가림이라는 가면은 군대에서 반쯤 벗겨졌다. 군대는 어쩔 수 없이 모두가 가면을 벗고 서로를 대하는 곳이었다. 고참이 춤추라면 몸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라면 창했다. 축구를 하라면 했고, 못한다고 욕도 실컷 먹었다. 때에 따라서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군대에서의 반복되는 망신스러움은 사춘기 성장통처럼 나를 관통했다. 반쯤 벗겨진 가면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


사회에 나왔다. 또 다른 신천지. 군대에서 벗겨져 반만 남은 가면보다 훨씬 더 크고 두꺼운 가면이 필요했다. 남의 돈을 구걸하며 생존하는 세상은 뾰족하고 거칠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면의 용도는 달라졌다. 분노, 화, 노여움, 역겨움, 어이없음에 자동 반응하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서 필요했다.


이 거친 세상에서 부끄러움 가득했던 소심한 내가 버티고 있다. 분노한 마음을 가득 머금고 퇴근하는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놀랐다.  


'너 어떻게 지금까지 여기에 남아 있니?'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그랬다. "페르소나(가면)는 자아가 다른 사람에게 투사된 성격, 외면적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자기 모습, 사회적 자아로서 사회적 역할에 따라 변하는 인간의 가장 외적인 인격이다. 페르소나가 있기 때문에 개인은 생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영고,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맺는다. 또한 자신의 고유한 심리구조와 사회적 요구 간의 타협점에 도달다. 때문에 페르소나는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적응하도록 돕는"라.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77.6%가 회사에서 가면을 쓴다고 답했다. 이유는 '회사에서 요구·기대하는 모습에 맞추기 위해', '개인적이고 일만하는 조직문화·분위기 때문에', '회사 동료들에게 평소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등으로 다양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사회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융의 말처럼 나는 어쩌면 잘 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 궁금했다. 그래서 묻는다. 나에게. '너다운 건 대체 무엇이냐?'라고. '진짜 너는 누구냐?'라고. 욱하는 남편. 엄마에게 화내던 아들. 할머니한테 못되게 굴던 손자, 누나에게 친구에게 욕하고 독설을 퍼붓던 나도 나다. 직장에서 착한 척하는 나도, 상사의 헛소리에 두들겨 패고 싶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나도 나다. 고상한 척 책을 쓰면서 동료를 맹렬하게 헐뜯는 사람도 역시 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정말 되고 싶은 내가 있다는 사실이다. 야누스 같은 나를 서서히 잠재우는 글 쓰는 내가 되고 싶다. 글을 쓸 때 평온한 마음을 마음껏 누리는 내가 나였으면 한다.


나는 내가 싫다. 하지만 나는 내가 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진정한 나다움 따위는 없다 결론 내렸다. 그저 순간순간 주어지는 세상에, 환경에 적응하고자 발버둥 치는 내가 있을 뿐이다. 나를 나답게 하는 건 나를 지금껏 버티게 하는 고마운 가면이다. 여전히 그리고 평생 나를 따라다닐 두툼한 가면. 수백수천 가지 가면 덕에 내가 살아 있음을, 나의 나다움을 새삼 느끼는 오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그렇게 떳떳해?" 동료가 물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