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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Nov 27. 2020

친절이 가식이 되지 않길

'과한 친절 - 불필요한 스트레스'


과한 친절이 사람을 괴롭힌다.


그다지 친분 없는 A팀 팀장, 팀원인 20대 신입사원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평소 자상함으로 똘똘 뭉친 팀장은 신입 자랑을 입이 닳도록 하며 후배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싹싹하고 일도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배와는 처음 마주하는 자리였다. 갓 결혼한 신혼이었다. 친분이 없어 결혼식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즉석에서 축하를 건네며 친분을 다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후배와 내 표정은 굳어갔다. 팀장의 과한 상함이 불쾌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상사가 생각하는 친분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후배의 표정에서 난처함이 흘러넘쳤, 내 얼굴에서는 민망함이 배어 나왔다.


후배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 홀로 친척 집에서 오랜 시간 살았다는 이야기는 굳이 꺼낼 필요 없었다. 부모님 없이 결혼 준비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통감한다는 안타까움도 진심으로 와 닿지 않았다. 후배의 밝은 표정 이면에 분명 슬픔이 자리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도 불편했다.


굳이 처음 마주한 후배와 내가 공유할 필요 없는, 궁금하지도 않은 이었다. 그저 자신이 얼마나 자상한지, 자신이 팀원과 사적 영역을 얼마만큼 공유하고 있는지 자랑하고 있을 뿐이었다. 상대를 괴롭히는 과한 친절이었다. 민망함은 나머지 사람들 몫이었다.


"연차를 낼 때 내가 왜 연차를 쓰는지 어디까지 오픈해야 하는 걸까요? 남자 친구 유무 및 주말 행선지, 휴가 때 뭐 했는지를 집요하게 물을 때, 회사 사람에게 어디까지 정직해야 하는 걸까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이런 게 가족 같은 회사라는 건지 회의감이 들어요."


한 직장인이 예전에 올린 글에 남긴 댓글 일부다. 직장 상사, 동료의 과한 친절이 만든 불편함 아니었을까. 쇼핑을 갔을 때도 과잉 친절은 오히려 하다. 처음 보는 사람의 과잉 친절은 의심을 유발할 뿐이다. 가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과한 친절이 독으로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가장 큰 실수는 능력 이상으로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영국의 문예비평가 윌터 배젓의 말이다. 친절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과한 친절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친절을 남발할 필요 없다. 모든 사람이 과한 친절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개개인의 능력껏 친절을 발휘하면 되 않을까. 뭐든 과유불급이 맞다. 너무 냉랭하게도 너무 과하게도 사람을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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