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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Feb 14. 2023

팀장 멘붕 시대, 새 시대에 맞는 당연한 역할 변화

'특정 세대 눈치 보기가 아닌 새롭게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는 움직임'


2006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해 여러 차례 인사 고과를 받았다. A 세 번, B 한 번, 나머지는 모두 B+였다. 평범한 결과다. 단 한 번도 팀장에게 평가 점수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인정해서가 아니었다. 나름의 사연과 보이지 않는 룰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A는 대리, 과장, 차장 진급하는 해에 받은 점수이고, B는 과장 진급 다음 해에 받은 점수다. 이때는 팀장에게 인사 평가 피드백 대신 사과를 받았다. '잘했는데 미안하다. 진급 대상자에게 좋은 점수를 줘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사규나 룰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자연스럽게 그 시대에 고착화된 법칙을 따랐다.


점수 몰아주던 시절


평가 시즌이면 일명 점수 몰아주기 법칙이 수시로 등장했다. 진급 대상자가 있으면 나머지 직원들이 한두 번씩 양보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따르던 일은 아니었지만, 일종의 암묵적 합의나 마찬가지였다.


대리 진급에 떨어진 적 있다. 같은 부문에 한 번씩 누락된 선배 두 명이 줄 서 있었다. '내 차례는 다음이구나' 직감으로 알았다. 그 부문에서 유일한 진급 누락자가 되었다.


과장 시절, 직속 팀장이 술자리에서 괴로워했다. 인사 평가 피드백을 했는데, 대리 두 명이 울면서 자신의 점수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해서다. 팀장은 그때 차장 진급에 두 번 누락한 차석의 진급을 위해 점수를 몰아줬다. 다음 해에 진급 대상자가 되는 후배들이 피해를 입었다.


<출처 : pixabay>

이러한 방법이 팀원들을 평가하는데 수월할지는 몰라도 많은 이가 괴로운 상황에 직면하곤 했다. 애초에 잘못 끼운 첫 단추의 나비효과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평가 피드백 또한 두루뭉술하거나 구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전에는 상당수 직장인이 모로 가도 진급이 목표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진급 처방으로 일종의 불합리가 용인되기도 했다.


관리자 멘붕의 시대


십수 년이 지났다. 세대와 시대가 바뀌고 직장 세상도 달라졌다. MZ세대는 인사 평가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단 한 회사에 오래 눌러앉을 생각이 크게 없기 때문에 일하는 만큼만 적당히 평가받으면 된다고 여긴다.


"인사 평가는 사실 큰 의미가 없어요. 오래 다닐 것도 아니고 평가는 월급 수준이면 충분하고 큰 기대도 없고. 이직 생각도 있으니 좋은 점수 누적보다 그때그때 돈으로 보상해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대기업에 다니는 90년대생 직장인이 말하는 인사 평가에 대한 의견이다. 하는 만큼의 적당한 평가. 과연 가능할까.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람이 없듯이 모두가 인정하는 인사 평가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SK그룹에서 성과급에 불만을 품은 4년차 직원이 CEO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회사 전 임직원에게 보내 화제가 된 적 있다. 성과급이나 연봉 인상 등은 평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요즘 세대에게 대충이나 개인감정에 기반한 평가는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적당'을 넘어서는 '공정'을 기반으로 납득까지의 과정 인증이 필요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관리자 역할이 더욱더 세분화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평가 기준이 요구된다. 야근이 줄어드는 주 40시간 근무, 직장생활에 새 바람을 일으킨 코로나 팬데믹, 비대면 활성화, 사라지는 회식 그리고 젊은 세대와의 갈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복잡 난해한 요즘 시대를 '관리자 멘붕의 시대'라고도 한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과거의 팀장 역할에 연연하기보다는 새 시대에 편승해 자신만의 평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과정과 결과를 함께 담는 일 년의 평가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 30여 년을 직장에 몸담은 임원과 식사를 했다. 직원들 평가에 대한 고민을 꺼냈고, 그의 조언에 무릎을 탁 쳤다.


"결론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거든. 과정을 기억하려면 메모를 해야 해. 사소한 것들이라도 적어 놓으면 나중에 평가할 때 큰 도움이 되거든. 내가 하는 말에 근거도 되고. 안 그러면 무지 골치 아파."


회의 시간에 나온 내용을 꼼꼼하게 메모하는 것이 업무에 대한 관심이듯 팀원에 대해 기록하는 것도 관심의 시작이다. 관심을 가지고 팀원을 바라봐야 부족한 점, 넘치는 점 등 많은 부분을 챙길 수 있다. 벼락치기 공부가 힘에 부치듯 벼락치기 평가도 쉽지 않다. 시간을 두고 관심을 가져야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한 공정한 결과에 다다를 수 있다.


누구나 팀원에서 팀장이 된다. 대부분의 팀장은 갑자기 몰아치는 업무에 치여 팀원들에게 관심 가질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갓 팀장이 되었을 때 의식적으로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 효율적으로 팀을 이끌어 갈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임원은 엑셀에 직원들에 대해 기록할 만한 온갖 내용을 메모했다고 한다. 그의 팁을 듣고 머릿속에서 여러 개의 전구가 반짝였다. 결국은 관심이다. 회의 시간, 타 부서와의 협업, 업무 보고, 업무 지시 처리 상황, 프로젝트 진행 과정, 워크숍이나 발표(준비) 등을 통해 팀원을 좀 더 깊게 파악 수 있다. 이때 개개인의 성향을 비롯해 능력과 성과, 장단점 등이 매직아이처럼 드러난다.


특히 업무 성과와 업무에 임하는 자세, 조직 문화나 팀워크를 좌지우지할 만한 태도(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등 핵심 내용을 활용하면 오해를 줄인 팩트 기반의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이는 팀원 개개인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록하지 않으면 긴가민가한 자신의 감을 믿어야 할 때도 있고, 정확한 상황이 아닌 당시 느꼈던 감정으로 섣부르게 평가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기록은 잔소리 소재나 문제점을 쌓아뒀다가 한꺼번에 지적하거나 꼬투리 증거를 모으기 위함이 아니다. 공정한 평가 관리, 긍정적인 피드백을 위해 관심의 밀도를 높이는 과정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직장인의 세대는 자연스레 바뀌어 왔다. 가만히 있어도 흐르는 시간이 선사하는 세대교체에 기겁할 필요 없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세상의 변화를 인정하고 새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직장생활에서의 평가도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하고 있다. 일부 맥락 없던 고릿적 팀장들의 '유연한 평가'가 그 시대의 트렌드였다면 요즘 팀장들은 새 시대의 '공정성'이라는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


이는 특정 세대에 대한 눈치 보기가 아닌 새롭게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는 당연한 움직임이자, 새로운 시대에 맞서는 새로운 팀장의 당연한 역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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