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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pr 18. 2024

수학 선행 안 시켜서 망했다던 고딩 딸의 반전

"점수보다는 아이의 도전과 노력을 마구 칭찬하고 응원합니다!"


학원에서 진행하는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 적 있습니다. 큰 애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입시에 관심을 갖다 보니 중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살벌함을 느낍니다. 공부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결론은 인 서울) 학원과 선생님들 협박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딸아이는 올해 고1이 되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고등학생의 가장 큰 적은 수학이라는 걸 새삼 실감합니다.


중학교 때와는 난이도 차이가 굉장하더라고요. 문제집을 보다가 공부 잘했던 친구에게 문제를 찍어 보내며 물었습니다.


"우리 때도 이런 문제가 있었어? 우리가 이런 걸 배웠다고?"

"보기만 해도 짜증 나네."


소싯적 반에서 1등을 하던 친구도 뒷걸음질 치는 요즘 수학. 공부를 제대로 안 한 학생은 어떨까요.


딸아는 중학교 때 늘 90점 이상의 수학 점수를 받았습니다. 압니다. 중학교 때 점수는 부모가 그저 믿고 싶은 신기루라는 걸요.


어떤 수학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중학교 때 100점을 맞지 못하는 건,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출제한 킬러 문제를 틀리는 거라고요. 그러니까 매우 잘한다고는 할 수 없다고.


'중학교 성적을 믿지 말아라', '중학교 때 90점 턱걸이는 고등학교 내신 4등급이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혹시'라고 여기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는 좀 다르지 않을까라고요.


시험 기간에만 간헐적으로 공부하던 딸은 중3 기말고사를 끝으로 공부에 손을 놓았습니다. 포기한 게 아니라 중학교 마지막 시험을 마친 홀가분함을 조금 오래 만끽했지요.


1월 중순에서야 고등학교 수학을 시작한 딸아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야 맙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몰라 수학 선생님이신 이모부께 SOS를 보냈죠. 며칠 뒤 이모부는 테스트용 시험지 한 장을 들고 친히 방문하셨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한 시간 내에 풀어 봐!"


이모부는 딸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헛)소문을 들었던 터라 '다 맞는 거 아니야?'라는 걱정까지 하셨습니다. 20여분이 지났을까. 딸아이가 당당하게 방문을 열고 나와 당당하게 말합니다.


"아차피 붙잡고 있어도 못 풀 것 같아서 그냥 나왔어요." (앞장만 끄적끄적)

"고등학교 선행이 하나도 안 됐네. 이 정도면 정말 모르는 건데. 큰일 났네."


이모부는 학원을 입시 전문 수학 학원으로 옮기라고 하셨습니다. (중학교 내내 아파트 단지 내 작은 학원에 다녔거든요) 그리고 기본 문제집 한 권을 추천해 주시곤 씁쓸한 표정으로 퇴장하셨습니다.


저는 딸아이가 동네 학원에서 수학 선행을 열심히 하는 줄 알았고, 딸내미는 다른 애들도 자기처럼 노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서로의 착각은 자유였습니다.


"난 애들이 선행하는 줄 몰랐어요. 나도 진작 좀 시키지." (사실 좀 놀라우면서도 아쉬웠습니다. 시켜볼 걸 그랬나?)

"억지로 시켰으면 했을까?"

"아, 그렇네요."


그동안 딸내미는 평일에만 동네 학원에 다니며 설렁설렁 공부했습니다. 신경을 덜 쓴 부모의 잘못이라면 잘못이죠. 하지만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도 없습니다. 앞으로가 중요하니까요.


이미 학생들은 학원마다 가득했습니다. 자리가 있는 학원도 없었습니다. 한 자리 남았다는 수학 학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등록했어요. 다른 학생들보다 진도가 많이 딸렸죠. 딸아이의 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풀어도 다 틀리니까 서러워서 눈물이 났어요."

"난 진짜 수학 못하나 봐요."

"이런 걸 왜 배워야 해요?"

"대학 안 가면 안 될까요?"


수학 학원에서 톡으로, 학원에 다녀와서는 육성으로 한 마디씩 괴로움을 쏟아냈습니다. 학교에 다녀와서는 "왜 나는 모르는 걸 애들은  알아?"라는 씁쓸한 말도 남겼죠.


"늦게 시작했으니까 앞으로 점점 나아지겠지"라는 말 외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조심스러워서요) 공부는 스스로 깨닫고 시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공부 좀 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도 한쪽 귀로 흘러나가는 걸 진작에 경험했으니까요.


"A 고등학교 작년 중간고사 시험 봤는데, 42점 받았어요."

"그래? 이제 오를 일만 남았네?"

(속마음: 설... 설마... 아... 아닐 거야. 아니잖아. 빨리 아니라고 말해!)


한 달 뒤,

"B 고등학교 작년 기출문제 시험 봤는데, 71점!"

"너무 오른 거 아니야? 자만하지 말길."


얼마 전에는 이모부의 중간 점검도 통과했습니다. 이모부에게 모르는 문제도 물어보며 배우는 모습이 흐뭇했습니다.


"많이 나아졌네?"


다시 얼마 뒤,

"C 학교 수학 83점 맞았어요."

 "이제 떨어질 일만 남은 건가?"


지난주,

"D 학교 중간고사 시험 86점!"

"수학 성적이 이렇게 빨리 오를 수가 있어?"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성적이 계속 올랐습니다. 물론 각 시험마다 난이도가 달랐겠지요. 하지만 틀림없는 동기부여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숨어있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딸은 그동안 학교가 끝나면 수학 학원에 2시간 먼저 가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뒤처진 진도도 따라잡고, 같은 내용을 반복하다 보니까 감이  다고. 여전히 수학이 좋지는 않지만, 버릴 수는 없다니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었는데도 주말마다 놀러 다녀서 못 마땅했는데, 나름 해야 할 것들을 찾아서 하면서 자유를 누려왔던 거였습니다. 결국은 모두가 알아서 살아야 하는 인생이란 걸 알면서도 자식 앞에서는 늘 초조한 게 부모 마음입니다.


다음 주면 실전 중간고사입니다. 내신에 들어가는 시험까지 잘 본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 노력한 과정만으로도 기특하고 대견하고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담 주는 기대보다는 그동안 딸도전과 노력을 칭찬하며 지난주까지의 여정만 글로 남기며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딸아이는 몇 개월의 고행을 통해 많이 배우고 깨달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훌륭하게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미소도 잃지 않고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매번 자식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집에서 공부좀 했으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본인이겠죠. 또 아이들이 알아서 하고 있다는 걸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부모는 잘 모를 수도 있고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 으니까요.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쓰면서 학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오늘도 수고했어!'라는 말을 매일 해주겠다는 아빠의 작은 다짐입니다. 가끔씩은 난데없는 용돈도 찔러 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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