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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pr 25. 2024

이십 명이 엎드려 자는 씁쓸한 교실 풍경

"집에서 시험 공부하고 학교 와서 자는 거야?"


감사하게도 고1 딸내미는 학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멘 채로 제 방으로 향합니다. 소파에 널브러져 양말을 벗으며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합니다.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면 한 시간 이상 대화가 이어지기도 하죠.


저는 수다쟁이 아빠거든요. 딸이랑 얘기하다 보면 취침 시간이 늦어져도 피곤하지 않더라고요. 딸아이에게 학교, 학원,  친구, 선생님 얘기를 들으면 학창 시절이 떠올라 푹 빠져들곤 합니다.


딸아이의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 이틀 전이었습니다. 학원에 다녀온 딸아이가 제 방에 들어와 늘 그렇듯 널브러졌습니다.


"아직 진도 다 못 끝냈는데 큰일 났어요."

"천천히 . 어제 스카 가서 피곤하잖아."

"시험이 내일 모랜대요?"

"그러네? 나머진 찍어야겠네? "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던 중 딸내미가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오늘 국어 시간에 5명 빼고 다 엎드려서 잤어요. 내가 선생님이면 나가고 싶을 거 같아요. 어떻게 대놓고  그래요?"

"그래? 집에서 시험 공부하고 학교 와서 자는 거야?"

"그런가 봐요."


특히 수학은 평소 학원에서나 과외로 선행을 하니까  많은 학생이 수학 시간에 잔다고 합니다. 이번 국어 시간에는 수업 내용이 시험 범위가 아니라 아이들이 휴식을 택한 거고요.


한 온라인 사이트에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 깨웠다고 민원 받았습니다>라는 한 선생님의 글이 올라온 걸 봤습니다. 학생의 부모님이 이의를 제기해 교장실에 불려 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잔다고 깨우면 "학원에서 다 배웠다"며 대놓고 자는 고등학생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있습니다.  


방과 후에도 학원에서 계속되는 공부로 잠이 부족한 학생들이 수업 시간을 체력 보충의 시간으로 생각한 지 오래되었다고.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끝내서 학교 수업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학생도 많다고 합니다. 입시제도와 치열한 대입 경쟁이 만든 악영향이겠지만, 선택은 학생의 몫이 아닐까요.


"넌 수업 시간에 안 자?"

"가끔 딴생각은 해도 안 자요. 오늘 국어 선생님이 저만 보고 수업했어요."

"오, 과외했네? 잘했어."


현재 딸내미 자리는 맨 앞입니다. 제비 뽑기로 자리를 정하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두 번이나 맨 자리에 당첨되었다가 지난주에 자리를 앞으로 옮겼습니다.


중학교 때와 달리 앞자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일단 시력이 나빠서이고, 두 번 째는 선생님과 교감하며 수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 학원에서는 주로 심화학습을 하는데, 학교 수업에서는 기초부터 설명해 줘서 놓쳤던 부분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맨 앞에 앉으면 선생님 질문에 작게 대답해도 되고, 선생님이 계속 말 시켜서 안 졸려요."

"뒤에 앉으면 대답 안 해?"

"손 들어야 하는데, 다 쳐다보니까 싫어요. 저는 조용히 살고 싶거든요."


딸아이 말에 공감했습니다.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딸아이지만, 수업 시간에 아무도 대답을 안 하면 나서서 대답하는 학생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때는 지각도 자주 하고 선생님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때와는 사뭇 다르게 아이가 훌쩍 성장해 있었습니다.


저도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존 적은 있지만, 대놓고 잔 적은 없습니다. 또 어디에서도 잘 나서지 않는데,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나서는 성격입니다. 회사에서도 강의나 교육을 들을 때 앞자리를 선호합니다. 또 강사의 질문에 무응답 일 때는 제가 나서 답을 하곤 합니다. 딸한테 가르친 적 없는데, 저를 빼닮아 신기했습니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나 봅니다.  


역사 시간에는 아무도 대답 안 하는 와중에 답을 맞혀 선생님이랑 친해지고, 국어 시간에는 잠을 안 자서 선생님이랑 친해졌다는 딸아이가 한없이 기특했습니다.


"그래. OO이가 선생님들 다 사로잡아 버려."

"이미 몇 명 넘어오셨어요."


아이들을 향한 기우에 걱정이 마를 날 없는 아빠입니다. 학기 초 딸아이가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 못해 겉도는 거 같아 걱정했는데, 자연스럽게 더군다나 긍정적으로 학교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어느새 훌쩍 커 선생님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습이 든든했니다.


"수업 시간에 자는 애들 다 이기고 싶어요"라는 당찬 발언에 딸아이와의 대화 막바지까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애들 다 안 이겨도 돼. 딸은 이미 너 자신을 이겨 내는 거 같으니까. 아빠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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