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에도학원에서 계속되는 공부로 잠이 부족한 학생들이 수업 시간을 체력 보충의 시간으로 생각한 지 오래되었다고.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끝내서 학교 수업이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학생도 많다고 합니다. 입시제도와 치열한 대입 경쟁이 만든 악영향이겠지만, 선택은 학생의 몫이 아닐까요.
"넌 수업 시간에 안 자?"
"가끔 딴생각은 해도 안 자요. 오늘 국어 선생님이 저만 보고 수업했어요."
"오, 과외했네? 잘했어."
현재 딸내미 자리는 맨 앞입니다. 제비 뽑기로 자리를 정하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두 번이나 맨 뒷자리에 당첨되었다가 지난주에 자리를 앞으로 옮겼습니다.
중학교 때와 달리 앞자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일단 시력이 나빠서이고, 두 번 째는 선생님과 교감하며 수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또 학원에서는 주로 심화학습을 하는데, 학교 수업에서는 기초부터 설명해 줘서 놓쳤던 부분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맨 앞에 앉으면 선생님 질문에 작게 대답해도 되고, 선생님이 계속 말 시켜서 안 졸려요."
"뒤에 앉으면 대답 안 해?"
"손 들어야 하는데, 다 쳐다보니까싫어요. 저는 조용히 살고 싶거든요."
딸아이 말에 공감했습니다.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딸아이지만, 수업 시간에 아무도 대답을 안 하면 나서서 대답하는 학생이기도 합니다. 중학교 때는 지각도 자주 하고 선생님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때와는 사뭇 다르게 아이가 훌쩍 성장해 있었습니다.
저도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존 적은 있지만, 대놓고잔 적은 없습니다. 또 어디에서도 잘 나서지않는데,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나서는 성격입니다. 회사에서도 강의나 교육을 들을 때 앞자리를 선호합니다. 또 강사의 질문에 무응답 일 때는 제가 나서 답을 하곤 합니다. 딸한테 가르친 적 없는데, 저를 빼닮아 신기했습니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나 봅니다.
역사 시간에는 아무도 대답 안 하는 와중에 답을 맞혀선생님이랑 친해지고, 국어 시간에는 잠을 안 자서 선생님이랑 친해졌다는 딸아이가 한없이 기특했습니다.
"그래. OO이가 선생님들 다 사로잡아 버려."
"이미 몇 명 넘어오셨어요."
아이들을 향한 기우에 걱정이 마를 날 없는 아빠입니다. 학기 초 딸아이가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 못해 겉도는 거 같아 걱정했는데, 자연스럽게 더군다나 긍정적으로 학교에 녹아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어느새 훌쩍 커 선생님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습이 참 든든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자는 애들 다 이기고 싶어요"라는 당찬 발언에 딸아이와의 대화 막바지까지 기분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