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에 도둑맞은 두 편의 글을 되찾기까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이날이 저에게 남다른 이유는 잊지 못할 경험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제가 쓴 글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달고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제 문체, 제 경험, 제가 느낀 깨달음이 그대로 담긴 채로. 이때 처음으로 '저작권'이라는 용어를 검색했고, 이 일을 해결하면서 ‘저작권’은 저를 지키는 방패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우연히 정부기관의 홈페이지와 그 기관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제가 작성한 듯한 글 두 편이 게재돼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낯선 이의 이름이 달린 그 글은 제가 쓴 원본과 90% 이상 동일했습니다. 이는 제가 한 기업의 블로그에 연재했던 직장생활 노하우 관련 글로, 이후 개인 블로그에도 올린 콘텐츠였습니다.
제 글에 이름을 단 사람은 책을 수십 권 집필한 칼럼니스트이자 대학교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제 글을 도용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의아했고, 궁금했고, 화도 났습니다. '저작권' 관련 법안을 찾아보며 대응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우선 도용된 부분을 모두 캡처해 제 원본 글과 비교한 자료를 만들고, 저작권법 위반 사항을 꼼꼼하게 정리해 당사자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제목: 저작권 침해 및 저작권법에 위반 사항에 관한 건
저작권은 크게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나뉩니다. 제가 겪은 사례는 저작인격권(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과 저작재산권(복제권, 2차적 저작물작성권)을 모두 침해한 경우라고 판단했습니다.
귀하께서 OOOO년 O월 OO일에 OOO에 기고한 <중략> 내용이 개인 블로그 및 온라인사이트에 게재한 본인의 글을 무단 도용한 것으로 판단되어 확인 요청 메일 드립니다. <중략> 특히, 사례 부분은 회사에서 있었던 개인적 경험을 기반으로 하였는데, 마치 자신의 경험처럼 묘사하였고 <중략> 이는 어문저작물에 대한 저작인격권 및 저작재산권 침해로 저작권법에 위반 사항입니다. <중략> 귀하의 별도 의사표시가 없을 경우 저작권법 등 관련법령 및 관련 정부기관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법적인 후속 조치를 진행할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책을 만들어드리면 어떨지
3주가 조금 지났을 무렵 답장이 왔습니다. 당황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내용으로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프리랜서를 통해 자료 조사를 시키고, 필터 하지 않은 채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죄의 의미로 손해배상을 해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는데, 원고료 손해배상의 의미로 100만원을 드리려고 합니다. 물론 이 비용에 대해서도 의견 주세요. 회신 주시면 이 부분은 곧 입금하도록 하겠습니다."
답변을 바로 하지 않았습니다. 선처를 바란다는 두 번째 메일이 왔습니다. 그 메일에는 더더욱 자존심이 상하는 제안이 담겨 있었습니다.
"책을 만들어드리면 어떨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해봅니다. 기존 장한이 님의 블로그 칼럼을 모아 책으로, 단행본 형태로 제작해 드리는 일입니다."
당시 저는 제 이름 석자가 박힌 책 출간이라는 꿈을 키우던 중이었습니다. 때문에 더욱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던 일이었는데, ‘이렇게 책 출간이 쉬운 일이구나’라는 생각에 서글픔마저 밀려들었습니다.
연휴가 낀 주라 답장을 하지 않았더니, 세 번째 메일이 날아들었습니다. 프리랜서와 함께 직접 찾아와서 정식으로 사과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부담스러웠고, 오히려 제가 압박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글에 대한 아무런 평가도 없이 문제 해결 도구로 '책을 내주겠다'라는 건 본인의 과오 처리에만 급급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제 글이 모독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책을 수십 권 집필하신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이런 식으로 출간할 생각이 없습니다."
우선, 제 의사를 전하고, 무단 도용한 두 편의 글을 바로 삭제하던지 출처를 표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정부기관의 글이라 삭제는 불가능하다고 하여 임시방편으로 도용 글 하단에 출처를 표기했고, 며칠 뒤 글 내용이 전면 수정되었습니다.
해결에는 합의, 민사소송, 형사고소 등 다양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법무팀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친구는 저작물에 대한 침해 기간, 침해 부분(무단 도용), 수량 등을 고려해 저작물 사용료에 대해 합의하고 마무리 지으라고 조언했습니다.
저의 저작물에 대한 OOO님의 침해기간(566일/’OO.O.OO부터 ’OO.OO.OO일 기준), 침해 부분(무단 도용), 수량(3건/OOO 2건, OOO 블로그 1건) 등을 고려해 첨부한 문서와 같이 합의를 제안하며 <중략>
책을 서른 권 이상 출간한 사람이 한낱 블로거 글을 모사했다는 게 아이러니했습니다. 처음에는 '괘씸하네?'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메일을 보냈는데, 그분의 태도, 답변과 제안 내용 등을 보며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이와 비슷한 크고 작은 일이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벌어질 수 있겠구나’라는 현실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프리랜서를 고용해 원고를 작성하고, 자신은 이름만 올렸기 때문에 당사자는 정말 인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글에 자신의 이름을 달았다면 그 글은 죽을 때까지 본인이 책임져야 마땅합니다. 이분이 쏟아낸 많은 책과 칼럼, ‘과연 본인이 다 쓴 걸까?’라는 의심은 지금까지도 저를 따라다닙니다. 실수 한 번으로 자신의 모든 글을 부정당할 수도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기본값이 되어야 합니다.
개개인의 글에는 자신만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글은 나만이 쓸 수 있는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닙니다. 아무리 대단한 타인의 경험도 내가 직접 겪은 일보다 진정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글을 쓸 때 항상 '나 자신에게 떳떳한가?'를 항상 묻고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글을 쓰는 모두가 창작자입니다. 내 글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글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저작권은 법의 영역이기 이전에 서로의 노력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예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보호하는 정직한 이름입니다. 글을 쓰는 모두가 서로의 이름을 지킬 수 있을 때, 세상의 모든 글이 저마다의 색깔로 반짝반짝 빛날 수 있지 않을까요.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기념해, 창작자의 권리와 글 속에 깃든 저마다의 삶의 색채와 고유한 목소리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