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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딥페이크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면?

N번방' 이후에도 되풀이되는 악순환

by 이드id


"우리 학교 애들도 있었나 봐요.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학기 초, 딸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인근 고등학교의 한 남학생이 졸업앨범과 SNS에서 여학생들 사진을 다운받아 딥페이크 음란물로 만들어 친구들과 공유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해당 학생은 정학 처분 후 다른 지역으로 전학 갔지만, 일파만파 퍼진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퍼진 충격은 고스란히 학교 전반으로 번졌고, 교사들 역시 그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서울의 한 학교에서 교사의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자가 만들어 유포한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눈들이 그냥 눈처럼 안 보이고, 나를 이렇게 쳐다보기만 해도 저 아이가 혹시 그 사진을 봤나, 나인지 확인하려고 저렇게 보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러니까 아이들 눈을 보면서 똑바로 수업을 못 하겠더라고요."


피해 교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더 이상 수업을 하기 힘들 정도로 삶이 무너졌다"라며 큰 고통과 괴로움을 토로했습니다.


교육부가 지난 연말 발표한 '학교 딥페이크 불법 영상물 관련 청소년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는 학교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발생으로 '불안감을 느꼈다'라고 답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 '내 주변 사람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공포'가 디지털 환경에서 새로운 불안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AI 기술이 청소년 사이에서 성범죄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그 피해는 교실 속 학생과 교사 심지어 이들의 가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는 청소년들


옆자리의 친구가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고, 제자가 가해자가 되는 현실. 이제는 이러한 무시무시한 사건들을 두고 특별하다거나 남 일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AI 기술을 손쉽게 익히는 청소년들이 성범죄의 가해자로 전락하고, 또 다른 청소년들은 피해자가 되어 고통받고 있습니다.


며칠 전, 범죄를 다루는 프로그램인 '용감한 형사들 4'에서 다룬 한 사건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프로그램에서는 자신을 '목사'라고 칭한 30대 남성(김녹완)이 약 6년 동안 텔레그램을 통해 수백 명을 성적으로 착취한 내용을 다뤘습니다. 피해자 234명 중 159명이 미성년자였다는 수사 결과를 접하면서 문득 '우리 아이들도 어쩌면 피해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미성년자 중에는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인 청소년도 있었습니다. 딥페이크 영상, 사진 등을 올린 가해 남학생들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발목을 잡혀, 김녹완에게 협박당하는 피해자가 되어버렸습니다. 피해 여학생의 경우, 김녹완이 딥페이크 사진과 신상정보가 유포됐다며 텔레그램 방으로 유인하는 과정에서 진짜 신상정보를 파악했고, 이를 악용해 성 착취를 시작하였습니다.


최근에는 '판도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 검거된 10대도 있었습니다.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텔레그램에서 당신의 딥페이크 영상이 유포되고 있는데, 유포자를 알려주겠다"라며 접근한 뒤 이들이 신체 사진이나 돈을 보내면 딥페이크 사진이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속였고, 이후 전달받은 개인정보 등으로 협박한 뒤 나체 사진 등을 전송받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5명을 낚아오면 해방해 주겠다'며 다른 피해자를 물색하거나 유인하도록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일부 청소년들이 성범죄에 이용당하는 경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떠들썩했던 'N번방' 사건, 되풀이되는 악순환


청소년의 성범죄가 어른의 미끼가 되기도 하고, 이는 또 다른 피해, 가해 청소년을 양산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온라인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최근에는 AI까지 가세해 다양한 종류의 범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청소년 사이에서 AI를 이용한 딥페이크 성범죄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1,202건의 피의자 682명을 검거한 결과, 10대가 548명으로 80.4%를 차지했습니다.


'딥페이크', '텔레그램', '10대'라는 키워드는 2020년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N번방' 사건이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가해자 조주빈이 징역 40년 이상을 선고받는 엄벌에 처해졌음에도, 서울대 N번방 사건이 벌어지는 등 디지털 성범죄는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상반기에 발표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추세와 동향 분석'에 따르면 성 착취물 등이 포함된 디지털 성범죄는 2019년 전체 유형 중 8.3%였는데, 2023년에는 24%로 늘었고, 같은 기간 성폭력과 성매매 범죄는 75.9%에서 62.7%로, 11.3%에서 9.2%로 비중이 각각 감소했습니다. 이는 성범죄가 점차 디지털화되고 있으며, 온라인 플랫폼이 새로운 범죄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성범죄 가해자 중 절반 이상은 최종심에서 집행유예 선고(56.1%), 벌금형(6.5%)을 선고받는 등 10명 중 6명꼴로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전반의 평균 형량은 고작 42.5개월입니다.


미국과 비교해 한국은 아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법적 인식과 제재 수준이 미흡한 편입니다. 양형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10대 가해자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감형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음란물을 제작할 경우 초범이어도 15년에서 30년 이하의 징역형, 재범은 25년 이상 50년 이하, 누범은 35년 이상 최대 종신형까지 선고될 수 있습니다.


청소년 교육 확대와 처벌 강화 필요


청소년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AI와 SNS는 그 수단이 되었고, 공감 능력과 윤리의식이 형성되기도 전에 아이들은 심각한 범죄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이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청소년 교육 확대와 처벌 강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딥페이크 사건 일어났을 때, 학교에서 무슨 교육 같은 거 받았어?"
"조회 시간에 조심하라고 몇 번 얘기하고, 텔레그램 깔지 말라고 했어요."


딥페이크 사건이 벌어졌을 때,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조회 시간에 조심하라고 몇 번 얘기했고, 중3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텔레그램을 깔지 말라고 당부한 게 다였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학교가 이렇지는 않겠지만, 현재까지도 아이들 학교에서는 이와 관련한 예방 교육 등을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복적인 교육이 없으면 아이들은 금세 심각성을 망각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과 딥페이크의 위험성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청소년들이 '이게 왜 문제인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는 AI 성범죄 예방 교육을 확대하고, 학부모도 관심을 가지고 자녀와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캠페인 등도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법적인 처벌 강화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나 촉법소년이니까 괜찮아!'라면서 미성년자가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리는 시대입니다. 낮은 처벌 규정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청소년 범죄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는 직접적인 가담자뿐만 아니라 유포자와 보유자까지 처벌을 강화해야 이와 같은 무분별한 사건이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자신이나 가족도 이 같은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입니다. 청소년들은 이를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일'로 인식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도덕적 감수성과 미디어 리터러시를 길러야 합니다.


끊임없이 증가하는 사이버 성범죄 예방을 위해 사회 전체가 지속적으로 큰 관심을 가지고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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