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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38% 학원비 부담, 아이들에게 말할까, 말까?

학원비로 소비쿠폰 소비한 아빠의 생색과 여유

by 이드id


월초가 되면 아이들 학원비를 각각의 학원 계좌로 보냅니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은 영어, 수학 학원과 복싱장에 다닙니다. 고등학교 2학년 딸은 국어, 영어 학원에 다니고 수학은 과외를 받습니다. 방학이 되면 특강비, 교재비까지 겹쳐 부담은 더욱 커집니다.


지난 7월 지출 내역을 계산해 보니, 교육비만 제 월급의 38%에 달했습니다. 방학 특강비를 제외하더라도 비율은 34.5%였습니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 원금과 이자, 관리비, 보험료 등을 내면 남는 월급은 거의 없습니다.


2025년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월 800만 원 이상인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7만 6천 원이라고 합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보니, 사교육을 받는 중학교 3학년 월평균 교육비는 65만 원, 고등학교 2학년은 74.4만 원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800만 원을 못 버는데 사교육비가 평균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남들도 다 한다는 이유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이만큼 지출하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교육비 얘기 꺼낼까, 말까?


더군다나 이번 여름방학에 고2 딸이 여드름 때문에 울면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게 안타까워 피부과를 찾았습니다. 예상보다 치료비가 어마어마했습니다. 부모로서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한편으로 "이 정도로 빠듯하면 이런 부담을 아이들에게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평소 아이들이 학원비가 아깝지 않은 성적을 받아왔기에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정도의 말만 했습니다. 교육비 지출은 최고조에 달했는데, 방학 기간에 별로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본전 생각이 났습니다.


"너희 교육비가 OO정도가 들어. 아빠가 열심히 벌어서 지원해 주는 만큼, 아빠도 너희도 후회 없게 조금만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


출근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점심을 함께한 20대 후반 후배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고등학생 때랑 재수할 때 부모님이 '너희한테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 줄 아냐. 열심히 해라'라는 얘기를 하실 때마다 싸웠어요. 특히, 동생은 부담스럽게 왜 그러냐며 더 질색했고요."


후배는 지금은 '아버지가 참 힘드셨겠다'라는 걸 알지만, 당시에는 부모님을 이해하는 마음보다 반발심이 더 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저녁 모임 자리에서도 30대 초반의 후배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이 학원비 많이 든다고 자꾸 얘기하셔서, 짜증 나서 학원 다 끊어버렸어요."


순간 깨달았습니다. '자식 마음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학교 다닐 때 부모님 노고를 이해한 적 있나?', '아이들이 잘하고 있는데, 괜한 생색 아닐까'라는 생각에 마음을 접고, 아이들에게 교육비, 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생색과 소통의 매개가 된 민생회복 소비쿠폰


그런데 마침 정부가 지급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떠올랐습니다. 애초에 아이들 학원비로 사용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소비쿠폰 중 자신의 몫을 요구한다는 여러 기사를 접했던 터라 나름의 전략을 세워 선수를 쳤습니다.


"여름방학 특강비까지 겹쳐서 학원비가 평소보다 많이 드는데, 소비쿠폰 60만 원 중 15만 원은 외식하고, 나머지 45만 원은 학원비에 보태는 게 어때? 가계에 큰 도움이 될 거 같은데."

"그걸로 학원비도 낼 수 있어요? 좋아요."


아이들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마 '외식'에 꽂혔을 겁니다. 중3 아들이 "아빠, 그럼 이번 달에는 좀 덜 힘들고, 다음 달부터는 특강 없으니까 다시 괜찮아지는 거예요?"라고 묻더군요.


"너희들 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학원비가 가장 많이 드니까, 아빠는 아껴 쓰고, 너희들은 공부 열심히 하면 모두가 해피하겠지?"


할 말이 더 많았지만, 내심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했기에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후배처럼 과거 부모의 고충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까요.


소비쿠폰은 단순한 지원금을 넘어, 아이들과 가계 살림을 공유할 수 있는 매개가 되었습니다. '돈 없다'라는 부정적 메시지가 아니라 '서로 돕자'라는 긍정적 경험으로 아이들이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40대 부모, 학원비에 소비쿠폰 가장 많이 써


여론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에서 제공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연령대별 사용처(1개월 기준)를 보면, 40대가 교육비/학원비(12.6%)에 소비쿠폰을 가장 많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비중입니다. 20,30대의 젊은 세대는 소비쿠폰을 취미활동이나 미용 목적으로 사용한 것과 대비됩니다.


"기타 학원이랑 복싱장 비 내니까 끝!"


한 친구도 소비쿠폰으로 중2 딸아이의 학원비를 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많은 부모가 일시적으로나마 교육비 부담을 덜었다는 의미입니다. 9월 말부터 2차 소비쿠폰 지급도 시행될 예정이고, 1,2차 소비쿠폰 사용기한이 11월 말까지니 교육비 사용 비율은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쿠폰은 잠깐의 숨통일 뿐, 대한민국 공교육과 입시제도 문제에서 비롯되는 사교육비 부담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 의존도 축소 없이는 부모들의 한숨이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사교육비는 아이들 미래에 대한 투자이지만, 부모가 한참을 버텨야 할 무게이기도 합니다. 내가 해준 만큼 아이가 노력하고 성과도 내길 바라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입니다. 항상 '다 해주고 싶다'라는 마음과 '버겁다'라는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부모에게는 참 어려운 요즘입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비쿠폰 덕분에 아이들은 교육적, 저는 경제적 도움을 받은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어깨가 무거운 세상 모든 부모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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