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스마트폰을 잘 절제하느냐가 입시 경쟁력
전국 각지의 대학교를 방문해 학생들 인터뷰를 하는 한 유튜버가 서울대 학생들에게 공부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었냐고 물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스마트폰이요."
인스타그램에 소개된 명문고 1등의 공부법 1단계가 스마트폰을 '스마트폰 감옥'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일명 금욕상자라고도 불리는 이 보관함은 타이머를 설정해 스마트폰을 넣어두고, 설정한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상자를 부수지 않고는 열 수 없습니다.
최근 딸아이가 스마트폰을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고2 딸이 고른 폰은 기능이 제한된 구형 아이폰6(16G)입니다.
"안 되는 게 많은데, 안 불편하겠어?"
"공부해야죠. 전화, 카톡, 음악만 있으면 돼요."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를 맞은 딸은 "이제 입시가 정말 얼마 안 남았는데, 스마트폰에 시간을 너무 뺏겨요"라고 말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지만, 인스타를 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서 해야 할 공부나 숙제를 못한 적이 많다며 통제하기 어렵다는 괴로움을 토로했습니다.
저 또한 웬만하면 인스타 릴스나 유튜브 숏츠를 안 보려고 노력하는데, 한번 빠지면 순식간에 한두 시간은 그냥 사라져 버립니다. 지난주 금요일 밤 12시에 자려고 누워 숏츠를 잠깐 보다가 정신을 차리니 새벽 2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아, 미쳤네. 미쳤어' 혼잣말을 하며 그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어른들도 이런데, 학생들은 오죽할까요. 수험생의 적, 스마트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폰 걷었는데, 고등학교 가니까 안 걷더라고. 그런데 아들 친구네 반은 걷는 거야. 담임한테 얘기하려고 했는데, 아들이 말려서 못했어."
고등학생 자녀를 둔 친구의 말입니다. 학교마다 규정이 다르고, 선생님 성향도 다르기 때문에 이처럼 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제도적 일관성이 부족하면 학생도, 학부모도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청소년 스마트폰 사용 문제가 지속되자 이번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최근 국회 본회의에서 초·중·고등학생들의 수업 중 휴대전화와 스마트기기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바로 시행하지 왜 내년부터 한대요?"
딸아이는 수업 시간에 교과서로 가리고 스마트폰을 보는 친구도 많고, 자기도 자꾸 보게 된다며 빨리 학교에서 걷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청소년 스마트폰 사용 제한 법안' 관련 기사의 댓글에는 '즉시 시행하지, 아쉽다'라는 반응도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청소년 스마트폰 사용 제한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청소년 스마트폰 사용 제한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크지만, 이 제도로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만큼 사용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안심이 된다는 생각이죠.
학교 안에서의 사용 제한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방과 후입니다.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곁에 늘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조차 스스로 스마트폰 사용을 절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딸아이는 시험기간이라도 학원에 갈 때, 스마트폰 가지고 가지 않기, 스터디카페에서 스마트폰 끄고, 밖에 두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곁에 있으면 신경이 쓰이고, 마음가짐부터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청소년, 성인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은 '집중력 도둑' 1순위로 꼽힙니다. 공부할 때 스마트폰 화면이 보이지 않도록 엎어 두거나 무음으로 설정해 두는 경우가 많지만, 모두 헛수고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 택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연구진은 성인 520명을 대상으로 여러 상황에서 스마트폰이 집중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습니다. 상황별 집중력을 테스트한 결과,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놓았을 때 집중력이 가장 낮았고, 주머니나 가방에 넣었을 때는 그보다 조금 나았으며, 아예 다른 방에 두었을 때 집중력이 가장 높았습니다. 스마트폰 전원을 꺼두더라도 눈에 보이는 곳에 있으면 집중력 저하가 나타났습니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 집중력 총량이 정해져 있는데, 눈에 보이는 스마트폰이 자꾸 총량을 깎아 먹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집중력이 누수되는 현상을 '두뇌 유출(brain drain)'이라고 하는데,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스마트폰은 울리지 않았고, 참가자들이 화면을 확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스마트폰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뇌 유출'이 발생할 수 있음을 확인한 사례입니다.
외국에서도 교내 청소년 스마트폰 사용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입니다.
프랑스는 2018년에 학교에서 스마트폰 및 기타 전자통신 단말장치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이 금지령은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의 대선 공약이었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미 2010년 교육법 개정으로 '수업 시간'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2018년부터 학교 내 전면 사용 금지 조치를 내린 이유는 '학생들에게 교육 활동, 이해 및 암기에 필요한 주의력, 집중력, 성찰력을 함양하는 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플로리다, 인디애나, 오하이오, 사우스캐롤라이나, 루이지애나 등의 주에서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현재 수십 개 주의 학군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수업 시작 전 스마트폰 전원을 끄고 휴대전화 파우치에 넣어 잠그는 방식입니다.
유네스코가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데이터를 분석해 2023년 발표한 적 있습니다. 이때 모바일 기기가 수업 중 학생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사생활 침해 및 사이버 괴롭힘을 유발한다는 부정적 사례를 제시하며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이에 많은 나라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온 제2의 두뇌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통제하지 못하면 집중력을 갉아먹고, 학업 성취를 떨어뜨리는 무서운 칼이 됩니다. 청소년 시기에 큰 경쟁력 중 하나는 '누가 더 스마트폰을 잘 절제할 수 있는가'가 아닐까요.
청소년 스마트폰 문제는 단순히 정부와 학교의 규제만으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학교에서의 일관성 있는 운영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개인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자제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스마트폰 자제가 어려워 구형폰을 사용하는 딸아이 사례에서 보듯, 문제를 인지하고 어려움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은 당사자일 것입니다. 청소년 시기는 뇌 발달과 습관이 형성되는 중요한 때입니다. 스마트폰 사용 습관 역시 이 시기에 고착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바꾸기 어렵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의 작은 불편과 노력이 장기적으로 더 큰 미래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문명의 '혜택'에서 문명의 '어택'이 된 스마트폰, 정부의 정책, 학교의 일관된 운영, 청소년 자신의 노력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요. 스마트폰은 무조건 청소년의 적이 아니라, 스스로 통제할 때 비로소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