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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딸 플레이리스트에 아빠의 최애 발라드가?

평생을 함께한 노래, 세대를 관통하는 힐링의 언어입니다

by 이드id


"음악은 국가가 허가한 유일한 마약이다"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공감하는 말 아닐까요. 출근길,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현실과 단절된 나만의 세상이 시작됩니다. 평소에는 좋아하는 대중가요를 모아 놓은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는 (교회는 안 다니지만) CCM이나 캐논의 변주곡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플레이리스트 하나가 더 있습니다. 고등학생 딸이 직접 선곡해 놓은 이 폴더에는 놀랍게도 8090년대 가수들 이름이 가득합니다. YB, 변진섭, 이승환, 이문세, 성시경, 패닉, 유재하, 푸른하늘…. 딸 친구들이 "부모님 플레이리스트 아니야?"라고 할 정도랍니다. 딸아이는 SNS에서 우연히 옛날 노래들을 듣고, 90년대 발라드를 찾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딸아이의 플레이리스트에서 특히나 반가운 노래 제목 하나가 보였습니다. 푸른하늘의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둔 채'(1993년)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곡입니다. 1993년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앞에 나가 이 노래를 부른 적도 있습니다. 테이프가 늘어날까 봐, 혹시 너무 들어서 질리게 될까 봐, 아껴 듣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친구가 노래방에서 열창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멜로디 때문만은 아닙니다. '만남과 이별'이라는 익숙한 주제를 이렇게 따뜻하고 희망적인 선율로 풀어낸 노래는 처음이었거든요. 괴로움 속에서도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위로가 느껴졌고, 청춘의 그리움과 아쉬움이 서정적인 선율로 흐르며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긴 세월을 거치며 수많은 진짜 이별을 경험하면서 삶의 굴곡마다 다시 꺼내 듣게 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고등학생 시절의 기분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자율학습 시간에 듣고, 노래방에서 열창하고, 녹음까지 해와서 듣고 또 듣던 노래. 저만의 학창 시절의 추억이 담긴 노래를 고등학생 딸이 좋아한다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전혀 다른 두 세대가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좋은 기분을 느낀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음악의 힘,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딸은 현재를 살아가면서, 아빠는 머나먼 과거를 회상하면서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 부녀가 '이 노래 좋다'라고 말하며 공감하는 순간이 참 행복합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직장인으로서, 부모로서, 중년으로서의 나를 돌아보니, 그 모든 삶의 순간에 이 노래가 흘렀습니다.


발라드, 시대와 세대를 잇는 위로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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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저를 이어준 한 곡의 발라드처럼, 요즘 사람들도 저마다의 발라드로 하루를 위로 받고 있는 듯합니다. 세대가 달라도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는 변하지 않는 걸까요. 요즘 다시 발라드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발라드가 다시 대세라는 신호들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발라드 오디션 프로그램인 SBS <우리들의 발라드>가 '8090년대 발라드의 부활'을 알리며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도 발라드는 단지 '과거'의 장르가 아니라, 자신들의 감정과 스토리를 담는 새로운 언어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들의 발라드>에는 평균 나이 18.2세의 참가자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과학고 출신의 한 참가자는 학창 시절 모두가 경쟁자라는 생각에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없었고, 015B의 '텅빈 거리에서'(1990년)가 자신의 심경을 위로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제주에서 올라온 19살의 한 소녀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임재범의 '너를 위해'(2000년)를 열창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청춘들이 다시 들려주는 추억 속 노래들은 단순한 옛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세대를 관통하는 감정의 언어, 힐링의 노래이자 신선한 위안으로 다가왔습니다. 젊은 친구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세대가 달라도, 세상이 바뀌어도,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듯합니다.


음악 업계 관계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의 발라드 열풍은 복고가 아니라 피로한 감정을 회복하려는 욕구의 반영"이라며 "사람들이 자신의 속도와 감정에 맞는 노래를 찾고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역시 음악은 단순한 감상의 수단만이 아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휴식과 위로를 주는 힐링의 언어가 맞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강렬하고 빠른 곡에 마음이 끌렸다면 이제는 인생의 무게처럼 잔잔하면서도 공감되는 노래가 끌립니다. 중년으로서 삶이 각박해지고, 나이를 먹는 속도감이 강해질수록, 가끔은 '느리게 흐르는 감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같은 노래, 같은 감정 함께 웃을 수 있는 행복


딸아이 플레이리스트에는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1987년), 변진섭의 '숙녀에게'(1989년), 이승환의 '화려하지 않은 고백'(1993년),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1994년), 패닉의 '달팽이'(1995년) 등 많은 명곡이 담겨 있습니다.


미국 건강 전문 매체 베리웰 헬스(VeryWell Health, 2023)에 따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음악이 뇌의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기분을 개선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아침마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 음악으로 마음을 달래는 아빠도, 곧 고3이 되는 딸아이도 입시 스트레스로 힘든 순간을 음악이라는 포근함을 통해 위로받고 있습니다.


음악은 세대를 넘어서는, 시간을 넘나드는 감성의 언어입니다. 딸과 아빠가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감정으로 웃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큰 감동 아닐까요. 가을이 깊어지는 요즘, 음악을 듣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죠. 여러분도 이어폰을 꽂고 조용히 한 곡의 발라드에 마음을 맡겨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최애 발라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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