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밤에 남은 사람들

같이 웃어본 후에야 보이기 시작하는 얼굴

by 버과장

관리팀의 A 과장은 안전관리 팀장이다.

팀장이라 해봐야 혼자 일하니 팀장인 것이다.


얼굴은 빵실하고 머리는 뽀글거린다.

미생의 장그래 선배 김대리를 닮았다. 성격은 순하고, 어딘지 허술해 보이기까지 한다. 나보다 다섯 살이 많지만 그리 늙어 보이지 않는 건, 아마도 그의 성격 덕일 것이다. 그는 스트레스를 주워 담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위험물 보관소를 짓는 과정에서 그와 함께 일하게 됐다.

건물을 짓는 일이었지만 소방서 허가가 필요해 안전팀이 끼게 된 것이다. 현장을 오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보다 그는 말이 많았고, 나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아마 A 과장은 나와 말이 잘 통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술자리를 두 번 거절하는 건 왠지 부담스러웠다.

가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크게 내키지도 않았다.


두 번째 권유는 관리팀 회식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이 분도 참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그 자리에 관리팀장, 인사팀장, 전산팀장 등 여러 사람이 있었다. 회식이라기보다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마시는 자리 같았다. 낯선 얼굴이 많아 소극적으로 앉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내 버릇이 나를 그 자리에 남게 했다.


소고기 집이었다. 이미 반쯤은 얼큰해져 있었다.

맥주에 소주를 타고, 예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서로를 놀렸다. 그들의 놀이 방식은 생각보다 순수했고, 처음 온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나쁘지 않았다.


2차에서 노래방 이야기가 나왔다.

아마 그중 누군가는 노래에 꽤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머뭇거리던 사람들도 결국 익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구경만 하려던 나에게 예약하라며 다그친다. 못 이기는 척, 해드뱅잉이 필요한 노래를 골랐다. 관리팀장 앞에서 머리를 흔들어대니 사람들이 좋아 죽었다.


어리둥절한 관리팀장은 내 호응에 맞춰 어깨를 들썩여 줬다.

그날 우리는 꽤 열심히 놀았다.

마칠 즈음엔 모두가 땀범벅이었다.


3차부터는 한풀이의 시간이다.

누가 차갑다느니, 누가 힘들다느니. 회사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누군가는 이런 자리를 싫어하겠지만, 나는 이런 순간이 흥미롭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에게서 진심이 흘러나오는 순간이 그렇다.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화제가 된다.

이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다면, 나도 이 그룹의 일원이 되는 셈이다.


인간은 때로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릴 걸 알면서도, 속에 든 말을 비워내고 싶어 하는 존재일까.

아침 8시 반에 일어나겠다는 사람들의 눈은, 오늘 하루 중 가장 반짝였다.


“안녕하세요.”

“왜 안 들어가세요, 팀장님.”


처음엔 고개만 숙이던 인사였는데,

이젠 미소를 얹어 건넨다.


관리팀장도 환하게 웃으며 나를 한 번 더 바라본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 사람 처음 웃었구나.


반가운 얼굴을 본 것처럼 느꼈고,

그 감정에 답하듯 인사를 건넸고,

밝은 반응이 돌아왔다.


구겨져 있던 마음이 억지로 펴진 느낌이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런 순간들을 의식적으로 채워 넣는 일이

내 직장 생활을, 나아가 내 삶을

조금은 덜 버티게 만드는 장치가 아닐까 싶었다.


다음 날 A 과장에게 문자가 왔다.

점심에 해장으로 육개장을 먹으러 가자는 내용이었다.


별것 아닌 말,

별것 아닌 행동.


어쩌면 내 삶은

그 별것 아닌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인생이

그렇게까지 특별한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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