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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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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Feb 26. 2024

[복직일기] 시터이모님 바꾸셔야겠어요

 평소와 다름 없는 아침이었다. 아침부터 바쁘긴 했지만 아이를 깨우고 씻겨 유치원 보낼 준비를 하는 건 일상이니 특별할 것 없는 하루 시작이었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불러둔 택시를 타려고 돌아서는데 누가 날 불러세웠다.

 "해이 엄마,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일면식도 없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네, 말씀하세요."

 "해이 시터 이모님 바꾸시는 거 어때요?"

 "네?"

 "제가 놀이터에서 쭉 해이 시터이모님 지켜봤는데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아서요. 시터이모님이 해이를 보지를 않고 핸드폰만 계속 하고 계세요......."

 이후로도 그녀는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갑자기 사람을 바꾸게 되면 어떻게 되는거지.....? 만약 시터이모님을 바꾸게 된다면 닥쳐올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터이모님은 바꾸게 되면 누구든 아이당분간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새로운 사람 고용을 위해 면접을 봐야한다는 사실 그리고 일정기간 손발을 맞추기 위해서는 나도 휴가를 며칠 써야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지금 시터이모님께 이별을 어떻게 고해야하는지 등등 연쇄적인 사고의 고리는 끝이 모르고 대화에 집중을 할수가 없었다.

 "저기 해이 엄마, 듣고 있죠? 해이를 돌보질 않는다구요. 저도 시터이모님 많이 써봤는데 진짜 보고 너무너무 아닌 거 같아서 말씀드려요."

 그녀의 말투는 너무 단호했다. 내가 시터이모님을 바꾸지 않으면 그녀가 당장 바꿀 기세였다.

 "놀이터에서 놀 때 아이가 위험할수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방치하고 핸드폰만 보고 있는 건 진짜 너무 아니라고 봐요."

 갑자기 각성이 되었다. 이번에는 시터이모님은 교체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각성. 사실 다정한 시터이모님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이가 시터이모님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특별히 까다롭고 요구조건이 높은 시터이모님은 아니었고 그저 시간이 필요하겠거니 하고 4개월 가량을 버텨온 터였다. 저녁마다 잠을 자버리거나 아니면 한껏 예민해져 있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안아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던 아이. 시터이모님이 계시는 시간에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 아이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터이모님을 고용하고 2개월 정도 지났을 즈음인가. 유치원 원감 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시터이모님에 대한 피드백을 주셨다.

 "엄마들이 놀이터에서 보시고 시터이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주세요. 좋지 않은 이야기라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을 좀 했는데요. 시터이모님이 너무 멀리에 계시고 해이를 살뜰히 보시지는 않는 거 같더라구요."

 "일단 전 좀 기다려보고 있거든요. 해이가 처음으로 할머니, 엄마 아닌 사람이랑 있는거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거 같기도 하고, 시터 이모님도 제게 해이가 본인에 대한 거부가 있다고 좀 난감해 하셨거든요. 조금 더 지켜보려고 합니다. 해이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일로 알았다. 하지만 결국 일면식도 없는 엄마에게서 시터이모님을 바꾸라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다니. 오늘 하루가 예사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기다리던 택시는 이미 떠났고 새로운 택시를 불러 기다리고 있자니 놀이터에서 오며가며 봤던 엄마들이 지나간다.

 "잠깐 뭐 좀 물어볼 수 있을까요? 해이 시터이모님 놀이터에서 보면 좀 어떠세요?"

 불러세운 엄마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차마 말은 못했는데...... 해이 엄마 일하는 거 아니까. 사람 바꾸는 거 힘들잖아요. 근데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별로예요. 바꾸라고 하고 싶어요."

 새로운 택시가 어김없이 왔고 이것마저 놓치면 지각을 면하기 힘들거 같아서 얼른 인사하고 돌아서서 택시를 탔다. 오늘 하루가 길겠다는 생각을 하며 택시 창문을 내렸다. 겨우 숨을 한 번 쉬었다. 더이상 시터 이모님 바꾸는 일은 미룰 수가 없는 일이 되었고 그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달리는 택시 타이어 바퀴만큼이나 머리가 빨리 굴러가기 시작했다. 휴가를 며칠간 써야 하는지, 휴가를 쓰려면 처리해야하는 일이 어떤 일이 있는지, 팀장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엄마에게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해이를 봐달라고 해야할지, 시터이모님 구인광고를 어떻게 낼지, 면접스케줄을 어떻게 짜야할지 등등 머릿속으로 하나씩 정리해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바쁜 일을 마치고 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내 사정을 다 아시는 팀장님은 많은 질문 없이 필요하면 휴가를 쓰라고 하셨다. 팀원들에게도 내가 자리를 비우는 며칠간 백업을 부탁했다. 감사하게도 흔쾌히 백업을 담당해주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 시터이모님을 이러한 사정으로 바꾸게 되었노라고 와서 며칠간 도와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시터이모님을 구하기 위한 어플 2가지를 깔고 구인광고 글을 올렸다.


   "다른 조건은 크게 필요 없습니다.

    아이를 사랑을 봐주실 분 구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숙제가 남았다. 지금 일하고 계신 시터이모님께 이별을 고해야하는 일. 어떻게 이야기 해야하는지 시뮬레이션을 수십번을 돌려봐도 아름다운 이별은 글렀다. 결국 조금 덜 섭섭한 이별을 하기 위한 말들을 고르고 골라보았다.


 "저희 시어머니께서 아이 돌봄을 도와주게 되셨어요.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요. 오래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기존 시터이모님과의 대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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