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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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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Mar 04. 2024

[복직일기] 당신은 해고입니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뒤돌아보니 한 번도 고용인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내 첫 아르바이트 과외를 할 때고 그랬고, 빵집에서 일할 때도 그랬고, 텔레마케터를 할 때도 그랬다.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거쳐 결국 대기업이라는 곳에 취업을 했다. 이름 대면 알만한 곳의 정규직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파트타임과 똑같은 피고용자다. 사용자가  편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때로는 피고용자가 편하다는 사실을 시터이모님과 이별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시터이모님과의 이별은 아무리 좋은 말로 돌려 말해도 결국은 하나의 문구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해고입니다.'


 전형적인 피고용자의 삶답게 이런 말을 하게 될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오히려 듣는 편에 가까웠으므로.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말을 골라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주변에 묻고 물어 그럴싸한 핑계 하나를 만들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 아이 돌봄을 도와주게 되셨어요. 제가 너무 힘들어해서요. 오래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꽤 괜찮은 핑계다. 서로 상처를 가장 덜 입을 수 있는 이별의 방법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수십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 날 퇴근길은 유난히 길었던 걸로 기억된다. 내내 어떻게 말해야 가장 상처를 덜 주게 될지만 생각했다. 성실하게 돌봐주신 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를 몇 달간 돌봐주신 분이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라도 아이를 더 맡겨야 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나쁜 분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안 좋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현관문을 열기 전 목을 가다듬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아이는 그날도 저녁잠을 자고 있었다.


 "이모님, 드릴 말씀 있어요. 잠시만 앉아주시겠어요?"

 "무슨 말이요?"

 두 눈 동그레진 이모님을 향해 연습한 말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나의 연기는 괜찮았다. 그러나 이모님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정말 그 이유가 다예요? 다른 이야기 들은 건 아니고? 엄마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예상된 이야기의 전개가 아니었지만 대화를 이어나가야 했다. 문제 해결 때문에 덮어뒀던 나의 언짢은 마음이 튀어나왔다.

 "다 알고 계셨네요."

 아이가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피드백에 아무렇지도 않은 엄마는 없다. 다만 속상한 마음보다 새로운 시터 이모님을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해서 미뤄둔 것 뿐이었다.

 "엄마들 이야기...... 중요하죠. 그래도 제가 보고 판단하는대로 믿으려고 노력했어요. 다만 엄마들의 피드백 그리고 해이의 모습을 보니 이번엔 제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요."

 이모님은 발끈하셨다.

 "해이가 뭐가 어때서요?"

 "저녁이면 늘 해이는 집에 와서 자요. 씻지도 먹지도 않고. 엄마 오기만을 기다려요. 이모님이랑 노는 건 재미가 없대요. 해이가 저녁에 자는 중에 이모님이 가셔도 한 번도 해이가 이모님을 찾는 걸 본적이 없어요."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뒤의 이야기는 일사천리로 정리가 되었다. 당장 그만 두겠다고 하시는 이모님께 그래도 이틀만 더 봐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구원투수 친정엄마가 올 때까지만. 당장 그만 두시라고 큰 소리 치고 싶었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었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정도 자존심 구기는 일은 참을 수 있다. 며칠간 거실에 설치한 cctv를 계속 모니터링 하게 되겠지만 이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세상에 해고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이별은 존재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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