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일기] 참을 수 없는 일의 가벼움

새로운 시터 이모님을 모시다

by Workingmom B

새로운 시터이모님을 모신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을 하러 가야 하니 도움의 손길 아예 없이는 시터이모님 채용이 힘들었다. 먼저 의성에 사시는 친정엄마를 잠깐 모셔야했다. 친정엄마는 이 김에 아이가 낮잠 자는 버릇을 고쳐줄 이모를 모셔야 한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하지만 잠트집이 심한 아이를 감당하실 분이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일단 부탁은 드려 볼 요량이었다. 엄마를 모신다고 해도 휴가도 얼마간 써야했다. 면접을 보고, 채용을 결정하고, 아이와 적응할 때까지 얼마간 인수인계가 필요했다.


사실 그런 일만큼 감정적으로 마음이 더 힘들었다. 주말부부,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받기 힘든 현실 속에서 시터이모님 없이 일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십수년간 해온 일인데도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말이었다. 새삼 나와 일의 연결고리가 얼마나 약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일을 무겁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일이 없는 삶이 참을 수 없이 더 가벼워 몸서리쳐졌다. 잘해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을 계속 하고 싶을 뿐인 삶도 내게는 허락되기 힘든 것인가하는 자괴감도 몰려왔다.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된 사람을 뽑을 때까지 천천히 뽑으라는 시어머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공감을 하지만 마냥 그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의 제도가 많이 좋아졌지만 나의 사정을 모두 봐주는 곳은 아니었고, 휴가도 한정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구해볼 요량으로 하나씩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시터이모님을 전문으로 채용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두 곳에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공고를 띄웠다. 전화는 거의 오지 않았다. 이제부터 손품을 팔 차례였다. 마음에 드시는 분께 일일이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돌렸다. 약 서른분께 연락을 드렸다. 그것도 돌아오는 연락은 열 분 남짓. 그 중에 조건이 맞는 분을 추리니 대여섯분이 남았다. 시간별로 면접 일정을 잡았다. 면접 시간이 곧인데 불참을 알리는 분도 있으셨고, 아예 연락두절이 되신 분도 있으셨다. 이모님은 너무 좋으신데 연세가 많아서 힘들어 보이시는 경우도 있었고, 까탈스러워 보이는 분도 계셨다.

그래도 다행히 걸어오시는 모습부터 마음에 드는 이모님이 한 분 계셨다. 현재 쌍둥이 아이들 픽업해주는 일을 하고 계시고 일전에 잠깐 아이를 봐주신 경험이 있으신 분이었다. 소위 말하는 베테랑은 아니셨지만 오래 아이들 픽업해주는 일을 하셔서 그런지 아이를 다루는 일에 대한 이해도도 있으셨고 말씀도 차분하게 하셔서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면접이라는 자리 특성상 본인의 경력을 부풀릴 법도 한데 오히려 경험이 많지 않다고 하시는 면이 인상적이었다. 이미 그 때부터 이 이모님을 점찍어서 그런지 다른 이모님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 분 더 뵈었지만 역시나 내 결정은 그 이모님이었다. 바로 전화를 드려 모시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 다음날 출근을 하시게 됐다


아이의 유치원 옆에는 놀이터가 있다. 바깥 놀이를 유독 좋아하는 아이는 꼭 놀이터에 들른다. 그래서 그곳에서 이모님께 뵙자고 말씀드렸다. 아이에게 한두마디 걸어보시고 천천히 다가가시는 모습이 오히려 좋았다. 그리고 말씀 중에 한 번 하기로 했으니 오래 하길 희망한다는 말에 더 가슴이 벅찼다. 시터이모님을 계속 바꿔서 아이를 이리저리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오래 하시고 싶으시다니 감사했다. 역시나 친정엄마는 시터이모님께 아이가 저녁잠을 자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를 하셨다. 딸의 고된 생활을 끝내주고 싶으셨던 친정엄마의 당부는 시터이모님께 부담이 되었을터였다. 약간의 신경을 쓰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더 놀려고 하는 아이를 데리고 억지로 집에 왔더니 그때부터 떼를 쓰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6시~7시 정도면 늘 잠 손님이 찾아와 예민한 아이였다. 그날따라 아이에게 유난한 잠 손님이 찾아왔는지 아이가 자지러졌다. 씻기는 내내 울고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를 엄마인 나도 달래질 못하고 쩔쩔 매며 겨우 씻겼다. 아이 머리털 나고 아이가 가장 많이 운 날이었다. 그 과정에서도 이모님의 얼굴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모님의 얼굴에서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아, 이렇게 이모님을 놓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모님, 오늘 아이가 많이 예민하네요. 저도 이렇게까지 우는 건 첨 봐서 좀 힘든데...... 음, 이게 최악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무슨 말이라도 해야했다. 이모님을 안심시킬 어떤 말이라도. 퇴근 하시는 길을 배웅하며 다시 채용공고를 뒤지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만두신다는 말 없이 다음날도 출근을 하셨다.

아이는 여전히 6~7시면 잠의 마의 구간을 건너야 했다. 이모님의 눈빛이 많이 흔들렸다. 그리고 엄마가 있으면 엄마를, 외할머니가 있으면 외할머니를 더 따랐다. 이모님은 본인의 역할을 해보려고 했지만 곁을 주지 않는 아이와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돌아서는 이모님께 연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나긴 카톡을 보냈다.


'이모님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제가 이모님꼐 제 아이를 부탁드린 이유는 낮잠을 안 잤으면 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관심어린 눈빛으로 봐주실 분이 필요해서예요.

아이가 너무 졸려하면 재우셔도 됩니다. 물론 안 자면 더 좋지만요.

아이와 천천히 친해지시고 예쁘게 봐주시면 저는 그걸로 족해요.

부담 안가지셨으면 해요.'


다행히 그리 짧지 않은 시간에 답장을 받았다.

'네 알겠습니다. 매일 나름대로 아이와의 시간을 계획하고 가는데 말도 제대로 못하고 긴시간을 함께 하는게 힘들었는데 외할머니 말씀대로 잘해주려고 애쓰지 말고 지켜보다가 원할 때 놀아주려고 합니다. 제가 아이를 큰 애 취급했구나 싶네요.

엄마가 원하시는 관점을 잘 알겠네요. 열심, 완벽 이런거 보다 제가 적응이 더 필요한 거 같아요.'


문자를 받고 크게 안도했다. 이모님 표정 하나에 울고 웃고, 문자 하나에 웃다가 눈물 짓게 될 줄이야. 이모님 문자 하나에 나의 일 생명이 달렸다 생각하니 너무 하찮다. 이렇게 하찮음을 확인할수록 나에게 일의 무게는 무거워진다. 오늘도 다시 후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내 일을 묵직하게 잡아본다. 힘듦에도 불구하고 놓치 않음으로서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 스스로 다독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