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은 새해 편지

아빠의 편지에 대한 답장

by Workingmom B

아빠에게 편지를 받을 수 있는 딸이 얼마나 될까. 고등학생 이후 집을 떠난 이후로 자주는 아니더라도 아빠는 내게 편지를 써주셨다. 글을 쓰는 엄마의 글보다 아빠의 글이 눈물 겨웠다. 그의 편지는 늘 '사랑하는 나의 딸'로 시작했지만 진부하지 않았다. 첫 줄만 보고도 눈물이 고이고야 마는 그런 편지다.


2025년은 부부갈등으로 힘든 한 해였고 부모님도 심각성을 눈치채셨다. 그래서 보내주신 아빠의 편지가 사무치게 아리다. 내 나이 마흔에도 아직 육아가 끝나지 않은 부모님을 뵈며 면목이 없어 답장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어제 새벽 결국 조금 늦은 답장을 썼다.





<2025년 마무리, 아빠의 편지>


사랑하는 나의 딸!

격랑의 을사년은 말도 많고 탈고 많았으나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자취를 감추게 되었구나. 한해를 보내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네가 부부 갈등으로 심신이 아파할 때였다. 아직도 완전히 해결된 상태는 아니고 미완에 머물러 있는 것 같구나.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는 일도 쉽지 않겠지만 힘내기 바란다.


너희 부부 관계가 쉽지 않아보이지만 일말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잘 해결하려면 박서방의 좋은 점을 많이 봐주고 이해해주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또 그동안 박서방의 행위들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싶어 그것에 대한 트라우마 분노가 쌓여 있다면 너 스스로 마음의 여백을 가져 보는 것이 좋겠구나. 용서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믿는다.


너희 부부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이 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너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한결같음을 늘 가슴에 새기기 바란다. 그 일은 너와 우리는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 자식간의 관계 때문이다.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일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작업이자 숙제가 아닌가 싶다.

커가는 아이를 보면 삶이 해법이 싹트고 아이의 재능에서 희망을 본다면 너희의 문제를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상처받지 않고 성장하게 도와주는 것에 이르려면 박서방의 절제와 결단이 필요해보인다. 아이가 온전하게 살아가야 할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 아리도록 고민해야 하는데. 원인 제공을 한 박서방의 심리적 안정과 현실 인식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궁금하고 아쉬울 따름이다.


다가오는 병오년에는 지혜로운 강물이 흘러서 너희 부부이 관계가 정상화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고 네 마음에 평화가 함께하길 바란다.


너의 삶을 함께하는 아버지가 새벽잠을 깨우며 너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본다





<2026년 시작, 딸의 답장>


결혼 생활에 대한 결정으로 힘든 순간 제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과연 내가 잘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였어요. 하나 더 추가하자면 내가 '아이와' 잘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였어요. 제 답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예요.

'주어진 상황에서 나와 아이가 가장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른다.'

부디 제 가족 카테고리에 그 사람도 포함이 되길 빌어보지만 제 결심이 섰던 부분이라 마음을 단기간에 돌리긴 쉽지 않아요. 좋은 기억을 다시 쌓을 시간이 필요해요.


가장 힘들 때는 더 본질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제가 바라는 삶과 방향에 대해 생각하자. 가정도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만 짊어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다행히 아직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가정으로 인해 조금 미뤄뒀던 회사일도 속상하고 힘들지만, 이럴 때일수록 상사의 마음을 사는 일이나 사내정치에 소모하기보다는 일에 더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내는 성과에 집중하면 그게 결국 더 오래 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제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제가 온전히 느낄 것이고, 제가 한 일에 대한 가치를 조직에 인식시킬 수 있는 위치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빠, 쉬운 삶은 없나봐요. 그래서 주어진 오늘에 감사할 수 있게 된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일이 가족들에게 상처가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아리지만 이 또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면 겪어내야겠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안고 지내려던 일들이 터져나온 순간이 2025년이었고, 2025년도 제 나름으로는 잘 지내왔다고, 잘 견뎠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싶어요.


2026년 제게 훨씬 나은 한 해가 되길 비는 소망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크게 나아질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비관적이어서가 아니라 삶은 연속적이고 살다보면 좋아지는 떄가 오는 것이지 그게 해가 바뀌었다고 달라지진 않으니까요. 나이 마흔에 느끼는 삶은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해 나갈거예요. 하고 싶은 일도 많이 해보려고 합니다. 종종 힘들 때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을때는 가족들이 내게 주는 무한한 지지를 힘 삼아 살아가겠습니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2026년 그래도 새해 복은 빌어봐야겠죠? 우리 가족에게 모두 평안이 가득하길 기원해봅니다.


깊은 밤 우리 가족들의 수면을 기원하며, 작은 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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