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푼이라도 남기를 통장에 부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밥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돈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 오늘 밤에도 월급이 통장을 스치운다.
10일은 신성한 월급날이다. 10일에 이상하리만치 적게 꽂힌 돈에 몹시 흥분해서 급여내역서를 살펴보니 13월의 벌금이 나온 날이다. 공포의 연말 정산. 정부는 절대 직장인의 세금을 잊지 않는다. 나의 유리지갑은 쉽게 털린다. 집을 위해 대출을 했다면 대출금도 어김없이 빠져나간다. 얆아진 통장에 몸서리 칠 때쯤 주식계좌도 같이 다이어트를 한다. 서슬퍼래진 주식 차트는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바닥인가 싶어 물타기를 하면 또 내려가는 것은 나만 그런걸까? 그리고 카드값, 아파트관리비, 통신비 등등 각종 비용이 다 빠져 나가고 나면 보릿고개를 지나야 한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다음 월급날까지.
돈벌이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돈 벌려고 회사 나오면 안팎으로, 아래위로 알뜰하게 치인다.
원래 적은 내부에 있다. 회사라는 곳은 원래 적의 집합체인데 가장 강력한 적은 팀장님이다. 아침에 아이 등원 준비를 하고 아슬아슬 출근을 하면 학생 주임처럼 날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잠깐 자리를 비운다 싶으면 날 찾는다. 이럴 때 정말 귀신 같다. 잠깐 수다 떤거라구요.
밖에서는, 1억이 넘는 연봉이 판을 친다는 뉴스는 심심찮게 들려온다. 재택근무 비용도 회사가 부담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동료가 나에게 알려준다. 저렇게 금융치료 받으면 나도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데 변명을 해본다. 통장을 들여다보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괴로워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러다가 대출 상환일이 가까워 왔다는 문자까지 받으면 더 비참해진다.
위로는, 상무님이 부른다. 작성했던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빨간 줄이 잔뜩 그어져 있는 보고서를 내게 건낸다. 그리고 한참이나 계속된 추궁. 나의 월급에 욕값이 포함이 되어 있다나 어쨌다나. 상사에게도 털리는 하루.
아래에서는, 후배가 회사 메신저로 나를 소환한다.
"지난 번에 메일로 드렸던 자료 확인 하셨어요?"
아! 휴가 때 왔던 메일이었던가. 메일이 쌓여있어 제대로 보지 못했나보다.
"아~ 쏘리. 그때 휴가라 제대로 못 봤었나봐."
"아.... 이거 오늘까지 제출해야 하는건데 이러심 어뜨케요."
"최대한 빨리 해서 줄게."
"아...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후배의 '제가 할게요.'라는 말은 '으이구! 월급 루팡아!'라는 말로 해석하면 된다.
이렇게 알뜰하게 치인 날은 내가 회사에서 받는 돈이 감정소모에 대한 댓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연봉 1억은 언제 벌 수 있을지 생각해보다가 그보다는 로또 당첨이 더 빠르겠다는 결론에 다다른다.